
‘동그란송형준’
정다나: 세상에는 수많은 도형이 있다. 그중 CRAVITY 형준이 고른 것은 동그라미다. 유튜브 채널의 이름을 왜 ‘동그란송형준’으로 지었느냐는 질문에 형준은 “완전 동그란데? 눈, 코, 입 다 동그랗잖아요!”라고 답한다. 그런데 영상을 몇 편 보다 보면, 그 이름에 담긴 동그라미가 조금씩 커지는 듯하다. 본격적인 첫 영상 ‘고분고분한 막내 송형준’의 목적지는 고향 통영이다. 가족들을 만나 사투리로 대화를 나누는 형준은 자신에게 익숙한 장소와 사람들 사이로 시청자를 초대한다. 같은 통영 출신인 허경환에게 “통영에선 이제 나다”라고 농담하고, 기상캐스터로 출연해서도 고향의 주말 날씨를 전하며 “통영에 꼭 놀러 오시고요”라고 덧붙였던 그다. 자주 입에 올리던 고향에서 가족들과 웃는 모습에는 그동안의 말들이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남의 집에서 1박 2일’에서는 제주도로 가 함께 일했던 전 매니저와 ‘직원 누나’의 고모 집을 찾는다. 그곳에서 제주 사투리의 뜻을 묻고 몇 번씩 따라 하며 직접 써보려 한다. 가족들과 주고받는 익숙한 말도, 다른 이의 집에서 배워보는 낯선 말도 영상 속 한때를 채운다.
‘한글날, 서울 한복판에서 문장 수집’에서 형준은 수첩을 들고 청계천 책방거리로 나선다. 그는 서점 주인과 시민들에게 좋아하는 문장을 적어달라고 부탁하고, 무엇을 써야 할지 망설이는 사람에게는 “짧아도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문장이 담긴 영상의 마지막에 형준도 자신이 직접 쓴 시 ‘동글’을 보탠다. “내가 있는 지구는 동글 / 지나가는 바퀴도 동글 / 째깍째깍 시계도 동글 / 거울 보니 내 얼굴도 동글”. 주변 풍경에서 자신의 얼굴로 이어지는 구절은 채널 이름을 설명하던 천진한 목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다 “세상이 모질어질수록 나는 더 둥글어지기로 했다”는 구절에 이르면, 눈에 보이는 모양을 이야기하던 형준이 이제 자신이 살아가고 싶은 모양을 말한다. 앞서 서점에서 도장을 찍어 여섯 글자를 만드는 ‘미지의 종이’에 형준이 ‘동그란송형준’ 다음으로 남긴 말은 ‘세상은넓어요’였다. 채널 헤더에 적힌 ‘각박한 세상 동글게 살아가자’는 글귀와 함께 읽으면, 자신에게도 “모난 구석 하나 없을 수 없”지만, “모난 것에 똑같은 모양으로 답하지 않고 / 그 모서리가 남에게 향하지 않”기를 바라는 형준의 마음이 전해진다. 그래서 영상에 나오는 “동글하세요”라는 인사는 보는 이에게 건네는 동시에 자신에게도 들려주는 말처럼 들린다. ‘동그란송형준’은 그렇게 자신의 얼굴을 닮은 이름에, 닮아가고 싶은 마음을 더해 간다.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
남선우(‘씨네21’ 기자):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박효선 감독이 10년에 걸쳐 만든 다큐멘터리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는 배우 메릴 스트립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제작 초기에는 제목에 충실한 형태였을지 몰라도 완성본만큼은 그 틀을 묘하게 벗어났다. 이건 한 여자가 다른 여자(들)에게서 얻은 에너지로 삶을 재건하는 이야기다.
직접 카메라를 들고 자신을 찍은 박효선 감독은 메릴에게 애정을 쏟아온 역사부터 밝힌다.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를 보며 시네필로 성장한 그는 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를 또렷하게 발화하는 스타에게서 동지애를 느꼈고, 트위터(현 X)에서 팬 계정을 운영해왔다. 언젠가 영화인 대 영화인으로, 페미니스트 대 페미니스트로 메릴과 대면하기를 소원하면서.
그 꿈을 함께 꿔주는 친구가 늘어나면서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에 탄력이 붙는다. 다만 빛나는 별을 향해 쏘아 올린 신호는 자꾸만 어긋난다. 동경의 대상, 영감의 출처, 희망의 전령과도 같은 존재에게 다가가려 했을 뿐인데, 어째서 환멸이 쌓이는 걸까. 영화는 감독이 하늘 위 별이 아닌 거울 속 자신을, 주변의 동료들을 새로이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끝난다. “이제부터 내 이야기를 쓸게요.”
누군가를 좋아하다 보면 이렇게 먼 길을 돌아오게 된다. 방점은 ‘먼 길’이 아닌 ‘돌아옴’에 찍고 싶다. 내 마음에 충실하다 보니 이 여정을 떠날 수 있었고, 당신에게서 나로 사는 법을 배운 채 복귀한 것이니까. 그러니 메릴 스트립을 만나겠다는, 박효선 감독의 무모하리만치 순수한 도전에 ‘실패’라는 딱지를 붙이기는 아직 이르다.

우지원 - ‘여기가 집이라는 믿음’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어디 엉덩이 붙이고 사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져요. 늘 어딜 가든 마음이 붕 떠 있고, 꿈인지 현실인지 잘 적응하기가 어렵습니다. 때로는 누군가를 붙잡고 내 집이 되어달라고 애원하기도 했어요.” 우지원이 내게 자신의 두 번째 정규 앨범 ‘여기가 집이라는 믿음’을 소개하며 붙인 말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물었다. “도헌 님은 지금 집을 찾았나요?”
음악을 듣다가 잠시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내가 앉아 있는 방을 둘러봤다.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재킷, 읽다 만 책 몇 권, 채 내놓지 못한 쓰레기봉투… 서울에서의 몇 번째 공간이던가. 내 집 마련은 꿈같고 발 디딜 땅도 없다. 가끔 들르는 고향에서도 낯선 풍경 속 희미한 기억의 흔적을 더듬으며 소속감을 확인하려 안간힘을 쓸 뿐이다.
‘여기가 집이라는 믿음’은 익숙한 일상 속 스산한 소리로 공허한 틈을 마구 벌려 보인다. 앨범의 모든 곡은 ‘~에서’로 끝나는 제목을 가졌다. 무작정 달려간 마트 채소 판매대에서는 적적한 마음을 채소에 털어놓는다. 지하철에서 사연 있게 휘파람 부는 저 남자는 불현듯 사라져 버렸다. 평범한 공간에 스며든 불안과 고독은 내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인 양 숨통을 조여 온다. 가녀리고 위태로운 목소리와 현실의 풍경, 초현실적인 연주가 낯익은 것을 낯설게 만든다.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이 도시를 떠나고 싶다. 앨범을 닫는 ‘감밭에서’, 서울을 떠난 우지원은 친구와 함께 산청 시골에서 감을 따다 울어 버린다. 아무 맛도 향도 없는 감을 한입 베어 물며 초라한 나의 마음을 꺼내 본다. “나의 슬픔, 나의 실망, 나의 믿음, 나의 배신, 나의 무딤, 나의 무지”. 그리고 마이크와 악기에서 입을 떼고,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른다. “나의 아무것도 없음”. 우리는 얼마나 흔들려야 마음 둘 곳을 찾을 수 있다고 믿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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