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석처럼 멈출 수 없는 마음을 직선적으로 고백하는 짝사랑부터 자신을 되찾겠다는 과감한 선언까지. 아일릿의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이 되어온 이로하는 이제 자신의 마음에도 하나씩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것들을 잊지 않으려 적어 내려간 그 손끝에서, ‘나’라는 답도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다.
‘알유넥스트(R U Next?)’의 참가자였던 이로하 씨가 어느덧 이제 데뷔 3년 차를 맞아 ‘WORLD SCOUT: THE FINAL PIECE’에서 참가자들의 무대를 지켜보는 입장이 되었네요.
이로하: 다른 분들이 평가를 받는 장면을 보니 예전 생각이 났어요. 준비 시간도 짧았을 텐데 얼마나 긴장했을지, 무대를 잘하지 못하면 얼마나 아쉽고, 잘됐을 때는 얼마나 기쁠지 잘 아니까 저도 같이 기쁘고 슬프게 느껴졌어요.
연습생 때 만났던 왁씨 선생님과 재회하기도 했는데, 여러모로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이로하: 일단 선생님께서 저를 기억해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어요. 왜냐하면 그때 연습생이 정말 많기도 했고 오래 뵈었던 건 아니라서 기억해주셨다는 사실이 놀라웠거든요. 이렇게 데뷔하고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기뻤고요. 프리스타일을 보여드렸는데, 스스로 프리스타일을 잘 못한다고 생각해 부끄럽기도 했지만 또 오랜만에 레슨을 받을 수 있어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ICONIC BY MISTAKE’ 무대도 인상적이었어요. 평소 아일릿과는 다른 콘셉트이기도 하고, 르세라핌, KATSEYE와 함께했다는 점에서 특별했을 것 같은데요.
이로하: 연습할 때부터 재미있었어요. 안무가 마음에 들어 ‘여기는 포인트를 주고, 여기는 좀 즐기다가, 여기서는 이런 표정을 지어야겠다.’ 하고 생각하는 것도 즐거웠어요. 특히 동작을 크게 하려고 했어요. 마지막 후렴에서는 제가 맨 오른쪽에 있었는데, 누군가는 ‘이렇게까지 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로 춰야 잘 보이고 존재감도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골반을 뺄 때도 진짜 분리될 정도로 빼려고 했어요. 함께 연습하면서 보니 르세라핌 언니들의 바이브가 더 크게 느껴졌고, KATSEYE분들은 여유가 있어 너무 멋있었어요. ‘우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하고 느꼈어요.(웃음)
무대에서도 그렇지만, 일상에서도 여전히 배우는 게 많을 것 같아요. 후쿠오카에서 한국어로 소원을 빌 정도로 한국 생활에 익숙해졌는데도 새롭게 배우는 것들이 있나요?
이로하: 진짜 많은 것 같아요. ‘Super in Love’ 가사를 처음 봤을 때도 되게 신기했어요. ‘Pop’의 “금사빠”라는 단어는 알고 있었는데 “양치기”는 몰라서 찾아봤는데, 찾아봐도 이해를 못해 녹음할 때 PD님한테 여쭤보고 알았어요. ‘푸른 하늘 은하수’처럼 한국 분들은 다 아는 동요나 어릴 때 유행하는 놀이는 제가 평소에 잘 접하지 못했던 거라서, 가끔 언니들이 동요를 부를 때 ‘아, 그 노래 또 부르는구나.’ 하면서 몰랐던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외국 영화도 보통 한국어 자막으로 보다 보니 ‘이게 무슨 뜻이지?’ 싶으면 멤버들에게 물어보기도 해요.
최근 영화 ‘오디세이’도 한국어 자막으로 관람했다고 들었어요.
이로하: 3시간짜리 영화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서 되게 놀랐어요. 그런데 조금 어려웠어요.(웃음) 솔직히 거의 다 이해는 됐는데 ‘중간에 나온 그 사람이 누구였지?’ 하고 약간 이해가 안 된 장면이 있어 아쉬웠어요. 다음에는 일본어로 또 보고 싶어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일상을 보내는 것 같아요. 요즘에도 쉬는 날이면 빈티지 쇼핑을 하나요?
이로하: 네, 어제도 혼자 빈티지 숍을 둘러보며 옷을 샀어요.(웃음) 처음에는 옷을 살 때 어떤 걸 봐야 할지 몰랐는데, 제 취향을 확실하게 하고 싶어 평소에 좋아하는 옷 스타일을 모아두는 폴더를 만들어 놓고 비슷한 옷이나 좋아하는 무늬를 찾아 직접 입어보고 핏도 확인한 다음에 사요. 제가 예전부터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워 보이는 걸 좋아했어요. 블랙, 버건디, 보라색 같은 컬러를 좋아하고 음악도 분위기 있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요즘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제 취향을 잊고 싶지 않아서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왜 취향을 기억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나요?
이로하: 제가 저를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에는 무엇이든 크게 상관없어 하는 성격이에요. 좋아하는 음식도 잘 모르고, 색깔도 다 좋아하고, 날씨도 비가 와도 상관없고, 음악도 다 좋아서 확실하게 제일 좋아하는 것이 없었어요. 그런데 첫 번째로 좋아하는 게 없다 보니, 그래도 제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를 알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좋아하는 것들의 리스트를 써보고 열심히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마라’는 좋지만 ‘와사비’는 싫다고 했던 것처럼, 이로하 씨의 음식 취향도 점점 더 분명해지는 것 같은데요. 이번 타이틀 곡 ‘체포하겠어’의 “그때 아이스티는 내 맛 최애였잖아”에서 나오는 이로하 씨의 ‘최애’ 아이스티는 무슨 맛인지 궁금해요.(웃음)
이로하: ‘최애’ 맛 아이스티요?(웃음) 저는 아이스티는 보통 복숭아 맛을 좋아하는데요. 그런데 복숭아 얼그레이 티는 별로 안 좋아해요. 얼그레이 티는 그대로를 좋아해서.(웃음)
이로하 씨가 스스로의 취향을 점점 찾는 것처럼, 아일릿의 음악도 점점 더 분명한 표현으로 나아가고 있잖아요. 무대에서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경험이 ‘나를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에도 영향을 줬을까요?
이로하: 영향을 주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아일릿이 콘셉트에 따라 짝사랑을 하다가, 내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가, 고양이가 됐다가, 더 이상 나는 귀엽지 않다고 하기도 하잖아요.(웃음) 거기에 열심히 몰입하다 보니까 아일릿 음악의 주인공처럼 저도 제가 좋아하는 게 뭔지 더 찾게 됐던 것 같아요. 무대에서 어떤 걸 표현하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생각하듯이, 표현하기 전에 일단 원래 제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생각하게 됐어요.
이번 타이틀 곡 ‘체포하겠어’에서는 짜증을 담은 시선 처리를 보여주거나 ‘BURNING’ 콘셉트 필름에서 망치를 들고 벽을 부수는 것처럼 평소 이로하 씨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이전에 위버스 라이브에서 윤아 씨가 이로하 씨에 대해 “그런 표현력은 N에서밖에 나올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표현할 때 상상력을 동원하는 편인가요?
이로하: 세세하게 이야기를 만든다기보다는, 제 파트의 가사에 맞게 ‘내가 진짜 그 소녀가 됐다. 진짜 내 상황이다.’라고 생각하면서 표현하는 편이에요. 사실 저는 평소에 화를 많이 내지 않아 이번 콘셉트가 조금 어려웠어요. 저를 짜증나게 하는 상황도 별로 없어서, 열심히 스토리를 짜고 이런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해야 하나 싶기도 했어요. 그래서 그 짜증을 표현하려고 이전에 제가 이해할 수 없었던 상황이나 말들을 찾아봤어요. 사실 그런 것들을 봐도 분노가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표현할 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체포하겠어’의 퍼포먼스도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도전이었을 거예요.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멤버들끼리 동작이 정확히 맞아야 하고요.
이로하: 이번 안무는 되게 빨리 잘 소화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맞춰야 할 디테일이 많아 생각보다 좀 어려웠어요. 동작들은 체력적으로 힘든 안무는 아니라서 괜찮은데, 각도를 맞추거나 손을 앞으로 내밀지 않고 계속 뒤로 뻗어야 하는 부분도 있다 보니 근육통도 왔어요. 그래도 민주 언니랑 페어 안무를 할 때 프리큐어나 세일러문처럼 같은 편이 돼 함께 싸우는 느낌이 들어요. 항상 그런 마음으로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어요.
‘It’s Me’ 무대 대기 중에 ‘진짜, 그냥, 이렇게’ 포즈를 취할 때 머리를 만졌다가 다시 처음부터 정확한 포즈를 잡는 모습을 보면서, 본인만이 아는 한 끗 차이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느꼈어요.
이로하: 사실 완벽주의자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제가 스스로 생각했을 때는 아직 부족하거든요. 춤추기 전이나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는 마음가짐이 완벽해야 무대도 할 수 있어요. 자세도 진짜 마음에 드는 자세로 하고, 포즈도 제대로 맞췄는데 ‘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거나 옷 소매가 거슬리면 무조건 정리해야 해요. ‘진짜 멋지게 해야 돼.’ 하면서 춤추기 전에 제 마음을 완벽하게 만들어야만 무대를 편하게 할 수 있더라고요. 저는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듣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려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리듬을 타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 연습이 힘들지 않고, 계속 연습실에 있고 싶어요. 요즘도 새벽에는 아일릿 연습도 하지만 다른 코레오그래피를 따고 연습하면서 영상을 찍거든요. 모니터링하면서 ‘이런 부분이 아쉬웠다.’ 하면 늦게 퇴근하더라도 그날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해야 마음이 편해요.
예전에 녹음이 잘 풀리지 않아 보컬 연습실에서 4시간 동안 연습한 이로하 씨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이로하: 저는 연습을 안 하면 오히려 더 불안하고, 나중에 ‘연습할 걸.’ 하고 후회할까 봐 계속 연습했어요. 그런데 연습을 많이 할수록 제 자신에 대한 기대도 자연스럽게 높아지다 보니 녹음실에서 생각한 만큼 잘되지 않을 때 아쉬움이 크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래서 요즘은 할 수 있는 만큼 충분히 준비하고, 녹음실에서는 배우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여유가 생기니까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전보다 여유가 생긴 거네요. 그런데 주변에 대해서는 여전히 굉장히 세심하게 살피는 편인가 봐요. 콘텐츠를 보면 놓고 간 쓰레기를 챙기거나 카메라를 가리는 물건을 빠르게 치워주는 모습처럼 항상 여러 가지를 살피고 있더라고요.
이로하: 그냥 보이는 것 같아요. 보이면 그걸 무시하느냐, 행동하느냐의 차이인데 저는 그냥 하려고 해요. 오히려 제가 놓치면 더 미안할 것 같아 차라리 보이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누군가 제 쓰레기를 대신 버려준다면 ‘내 건 내가 치웠어야 했는데 먼저 행동하게 해버렸네.’ 싶어 더 미안할 것 같아요. 다만 상대방이 아직 하지 않은 일이 있어도 ‘나중에 잘 챙길 것 같다.’라는 판단이 되면 그냥 둬요.(웃음)
이전보다 스스로에 대한 융통성이 생긴 셈인데, 아일릿 멤버들과 함께한 영향일까요? 최근 ‘슈퍼 아일릿’에서도 종종 능청스러운 모습을 보일 만큼 훨씬 편안해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이로하: 편안해졌어요. 멤버들 덕분에 모든 점에서 조금 더 보여줘도 된다는 걸 요즘 느낀 것 같아요. 원래는 작은 게임을 하더라도 잘하는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때마다 언니들이 많이 도와주면서 촬영이 더 편해졌어요. 재미있을 땐 더 웃게 되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편하게 표현해도 된다는 걸 느꼈어요.
아일릿이라는 팀의 끈끈함은 풍부한 소통에서 나오나 봐요.
이로하: 저희는 다 같이 모여서 갑자기 이야기가 시작될 때가 있어요. 얼마 전에도 모카 언니 보러 가서 다 같이 모이니까 저희 음악이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어요. ‘앞으로 이렇게 해보자.’ 하는 마음이나 이 직업에 대한 마음가짐 같은 것도 진지하게 이야기하게 돼요. 원래는 혼자 생각해서 혼자 해결하는 게 너무 습관이 되어 있어 질문을 많이 안 해봤었어요. 처음 만난 분들에게 바로 마음을 열기 쉽지 않은 타입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언니들이 그런 걸 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조금씩 상대방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았어요. 감정은 말을 안 하면 서로 모르는 거잖아요. ‘나는 이럴 때 무섭고, 이럴 때 재미있고, 이럴 때는 조금 슬퍼.’ 하고 조금이라도 말로 표현하면 감정이 섞인 풍부한 소통을 하게 돼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됐던 것 같아요.
스스로를 ‘겁이 나도 계속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계속해서 다른 모습으로 점점 나아가고 있네요.
이로하: 원래는 모든 일에 겁부터 났고, 아직도 겁은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조금 없어진 것 같기는 해요. ‘메자마시’ TV 촬영 때도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책임감을 갖고 있었어요. 이로하로 불러주시는 자리다 보니 그만큼 아일릿을 업고 나온 자리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너무 감사한 일이니까 재미있게 잘해야겠다 싶었어요. 요즘은 제가 게임 캐릭터가 됐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어요.(웃음) 게임에서는 궁금한 게 있을 때 ‘질문하기’를 누르면 바로 질문을 하잖아요. 그렇게 게임 캐릭터처럼 조금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이렇게 하면 좀 그런가? 갑자기 이러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고민을 줄이고, ‘아, 궁금하다.’ 하면 질문하고, ‘오늘은 이렇게 해야겠다.’ 싶으면 그렇게 하려고 해요.
그리고 이로하 씨가 그렇게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보다 글릿일 것 같아요.
이로하: 너무 감사한 존재예요.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응원해주시는 분도 있고, 해외 공연을 보러 와주시는 분도 있고, 새벽 사전 녹화에 일찍 와주시는 분도 있어요. 글이나 편지를 써주시는 걸 보면 아직도 신기하고 마음이 너무 좋고 기뻐요. 제가 어떤 음악을 하든 제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드렸을 때 같이 좋아해주시고, 제 웃음을 보며 같이 행복해해주시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제가사랑받고 있다는 걸 많이 느끼고 행복해져요. 또 제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글릿도 함께 행복해해주시고요. 서로를 아끼는 이 관계가 저는 너무 좋은 것 같아요.
- 민주 “나도 좀 예쁜 짓을 많이 해야겠다”2026.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