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 없던 탐정’, JTBC 드라마 ‘구경이’의 부제는 흥미롭다. 뛰어난 수사력을 지녔으나 개인적인 문제로 일선에서 떠났던 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다시 사건에 뛰어드는 이야기는 세상에 많다. 그가 추적하는 상대가 사이코패스 살인마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탐정도 여성, 범인도 여성, 그들을 조종하고 싶어 하는 흑막도 여성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심지어 몇 날 며칠 씻지도 않고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 게임만 하는 알코올중독자 탐정 구경이를 연기하는 배우가 ‘산소 같은 여자’라는 광고 시리즈와 드라마 ‘대장금’ 등으로 단아한 아름다움의 상징이 된 이영애라면, 그건 정말 예상하지 못한 캐릭터일 수밖에 없다.
파격적인 설정과 캐스팅 그러나 ‘구경이’의 성취는 그런 의외성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발판 삼아 주제를 선명하게 펼쳐나가는 데에서 나온다. ‘죽어 마땅한’ 사람을 골라 계획적으로 살해하는 대학생 케이(김혜준)는 언제나 자신의 선택을 확신하기에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다. 의심이라는 재능 덕분에 유능한 수사관일 수 있었지만, 그 때문에 자신이 남편을 죽게 했을지 모른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구경이는 무엇도 누구도 믿지 못해 매 순간 흔들린다. 다만 허무와 고통 속에서도 그가 믿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물 학대, 성폭력, 직장 내 괴롭힘, 엄청난 규모의 디지털 성범죄 등 동시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들을 다루면서도 ‘구경이’는 이른바 ‘사이다’라 불리는 징벌 서사에 그치지 않고 시청자를 딜레마로 끌어들여 함께 고민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이해관계에 의해 악인이 목숨을 빼앗긴다면 그것은 사회에 도움되는 일일까? 악을 처단하는 모든 행위는 선이나 정의일까?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린 악인들을 버튼 하나로 없애버릴 수 있다면 어떨까? 나라면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할까?
범죄를 다루되 여성을 선정적인 희생양으로 전시하지 않고, 성소수자를 등장시키되 그들의 성 정체성을 불필요하게 강조하지 않으며, 여성이 상황을 주도하고 남성이 조력하는 구도를 당연하게 제시했다는 면에서 ‘구경이’는 섬세하게 과감한 드라마다. 시대의 변화를 흡수하고, 스스로 변화를 이끈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케이의 유혹적인 속삭임과 ‘팀 구경이’의 갈등 및 성장이 팽팽하게 밀고 당기는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은 어느 한 사람 빼놓을 것 없이 믿음직한 배우들의 연기다. ‘구경이’의 작가 팀 ‘성초이’는 최근 ‘엘르’와의 인터뷰에서 “성별과 생물학적 나이를 떠나 ‘스스로 젊은’ 분들이 재미있게 봐줬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2021년의 마지막을 장식한 드라마가 새로운 세대를 위한 거라면, 그보다 더 멋진 이야기는 별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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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 때리는 그녀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21.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