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 긴 기다림 끝에 아델의 새 앨범 ‘30’가 나왔다. 이전 작들처럼 앨범을 만들던 당시 그의 나이가 앨범명이 되는 규칙을 따랐다. 규칙처럼 균일하게 청자의 기대를 충족시키면서도, 커진 나이의 숫자만큼 변해 있다. 지금까지 그는 ‘19’, ‘21’, ‘25’, 그리고 ‘30’까지 총 4장의 앨범을 냈다. 새 앨범을 지난 앨범들과 하나씩 비교해보며 그때의 무엇이 여전한지, 또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생각해본다.
아델의 첫 앨범 ‘19’은 2008년에 발매되었다. 말 그대로 열아홉 살, 어린 나이였다. 당시 영국은 소울 같은 20세기 음악에 - 거칠고 솔직한 감성을 드러내는 가사,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인기였다. 2006년에 나온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앨범 ‘Back to Black’이 이 유행의 시작이자 정점에 있었다. 브릿 공연예술 학교를 나오기는 했지만 가수보다는 A&R 쪽을 생각하고 있던 아델은 어느 날 친구가 마이스페이스(당시 유행하던 SNS)에 올린 자신의 노래로 별안간 레이블에 발탁되어 가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 블루스나 소울에 영향을 받은 노스탤직한 미국식 음악에 중후한 목소리, 털털한 성격과 허심탄회한 가사. 특히 깊은 감성을 가진 그가 열아홉 살의 젊은이라는 사실은 청년 세대에게는 공감대 형성으로, 중노년층에게는 향수로 어필했다. 아직 ‘19’ 앨범 시절은 그가 글로벌 스타가 되기 이전이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지금 아델의 큰 틀은 이때 이미 만들어졌다. 그는 차근차근 싱글을 내며 영국 내에서 무서운 신인으로 입지를 다졌다.
그가 대형 스타가 된 것은 ‘21’ 앨범부터였다. ‘19’이 영국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좀 더 큰 시장인 미국에서도 그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2008년 10월에 출연한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 SNL)’ 방송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이 함께 출연한 탓에 보는 눈이 많았던 그 방송에서 그는 ‘19’의 수록곡들을 멋진 라이브로 소화하며 미국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능성을 확인한 그는 ‘21’부터는 영국과 유럽에 그치지 않고 미국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아델의 첫 히트 곡이자 지금도 그를 대표하는 곡 ‘Rolling in the Deep’이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이때부터는 정수리를 부풀린 금발이나 길게 붙인 속눈썹 등 패션에도 그의 음악 속 레트로한 취향을 반영하며 스타일을 확고히 했다. 그는 지금도 오토튠을 쓰지 않는 가수로 유명하다. 보컬에 녹음 후보정을 잘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별 후의 절망이 분노가 되는 장면을 그린 이 곡은 정적으로 앉아서도 불을 토하듯 노래하는 날것의 뜨거운 아델을 담고 있다. 특히 휘트니 휴스턴이나 머라이어 캐리 같은 벨팅 창법의 디바형 보컬리스트를 사랑해온 미국 청자들에게 아델은 오랜만에 만나는 진짜 ‘목소리’이자 ‘가수’였다.(주: 오토튠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단지 소리를 조정할 수 있는 기술 중 하나고, 현재는 거의 모든 팝 가수들이 약간의 오토튠 보정을 거쳐 음악을 내놓는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오토튠이 처음 알려질 때의 로봇 같은 이미지와 보정 없는 진짜에 대한 소구가 있기에 지금도 호불호가 갈린다고 볼 수 있다.) 이어진 ‘Someone Like You’ 역시 큰 인기를 누렸다. 클래식한 사운드의 발라드 대곡이지만 애티튜드는 엘리트적이지 않고 오히려 현실적인 점이 절묘한 조합을 이뤘다. 또 그런 곡을 진솔한 느낌으로 표현한 아델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 역시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포인트였다. 이별 후 덤덤하게 사랑한 사람의 행복을 비는 가사가 남녀노소를 구분 않고 공감을 얻으며 이 곡은 시대의 이별 노래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21’ 앨범으로 그래미 어워드를 포함해 유럽과 아메리카 음악상들을 휩쓸었다. 전 연령대가 사랑하는 국제적인 디바의 탄생이었다.
다음 앨범 ‘25’는 그로부터 4년 뒤에 나왔다. ‘21’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그사이 내놓은 ‘007 스카이폴’의 사운드트랙 싱글 ‘Skyfall’ 역시 역대 ‘007’ 시리즈 음악 중에 가장 큰 사랑을 받으며 아델은 전 세계인이 가장 기대하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큰 부담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델은 늘 해오던 정공법을 택하며 또 한 번 기대에 부응했다. 그는 앨범 발매에 앞서 SNS에 공개한 편지에서 ‘21’이 헤어짐에 대한 음반(break-up record)이라면 ‘25’는 스스로와 화해하는 음반(make-up record)이라고 전했다. 이전까지의 앨범 커버에는 시선을 피하고 있던 아델이 처음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눈을 맞추었다. “Hello, it’s me” 하고 시작하는 ‘Hello’는 듣는 이에게 말을 거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슈퍼스타가 되었지만 그가 여전히 영국 노동자 계층 도시 출신의 아델 로리 블루 애드킨슨이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기대에 걸맞은 익숙한 사운드에, 조금 더 진전된 인생의 서사가 담겨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아델은 음주를 그만두며 삶의 변화를 예고했다. 앨범이 발매 되기 한 달 전에는 당시 연인이었던 사이먼 코넥키와 사이에 생긴 아이 앤젤로가 태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2015년 11월 쌀쌀한 날씨 속에 발매된 ‘25’는 당시까지의 기록을 여러 차례 갈아치우며 그의 저력을 과시했다.
그리고 2021년 발매된 ‘30’는 지난 앨범 ‘25’로부터 6년 후 하루 차이 날짜에 발매되었다. 앨범과 앨범 사이 간격은 더 멀어지고 있지만, 비슷하게 찬바람 불 때 돌아온 그의 존재에 반가움이 든다. 이번 앨범의 첫 번째 싱글컷 곡 ‘Easy On Me’는 물처럼 흐르는 발라드다. ‘Rolling in the Deep’의 첫 줄 “There’s a fire starting in my heart” 처럼, 20대 초반의 아델은 불처럼 뜨거운 감성으로 설명되는 가수였다. 이별의 아픔을 그저 삼키는 게 아니라 실망과 분노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델 음악의 중요한 특징이었고, 청자들을 끌어당기는 요소였다. ‘Easy On Me’는 그와 대비되는 감성을 보여준다. 강물의 이미지를 차용한 가사뿐만이 아니다. 같은 악기여도 ‘Rolling in the Deep’에서는 격렬한 심장 박동처럼 꽝꽝 내려치던 피아노는 ‘Easy On Me’에서 흐르는 강물처럼 유유히 연주된다. 최근 프랑스의 NRJ 시상식에서 부른 라이브에는 아예 무대 배경으로 수면의 푸른빛이 일렁이는 화면을 깔아놓았다. 아델이 평소 부르던 음역대보다 살짝 높게 설정된 멜로디는 팔세토로 가볍게 불러내어 음량 면에서 더 작고, 보다 속삭이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불에서 물로 이미지가 변했다 해서 그의 처절할 정도로 솔직한 시선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불로 대표되던 그의 열정은 이제 깊은 물로 뛰어드는 또 다른 모습의 열정으로 표현되고 있다. 음악의 톤이 달라진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노래가 상정하는 첫 번째 청자가 자신의 아들 앤젤로이기 때문일 것 같다. 지금의 아홉 살 앤젤로이기보다는 엄마가 이혼을 결정한 마음을 이해할 만한 미래의 앤젤로라고 보는 게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긴 공백을 깨는 첫 트랙 ‘Strangers By Nature’는 고전적인 코드 진행과 멜로디로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크루너 가수가 활동하던 1940~50년대 같은 인상을 준다. ‘Easy On Me’로 끌어올려진 흐름은 다양한 스타일의 곡을 거치며 오르락내리락한다. 수록 곡들은 이혼의 단면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인해 느꼈던 감정들을 다각도로 담고 있다. 여기에는 전 남편과의 좋았던 때도 있고, 아들을 향한 모성도 있다. 마지막에서 두 번째 곡인 ‘To Be Loved’는 피아노 한 대에 의지하는 발라드로, 멜리즈마(한 음절의 가사에 여러 음을 넣어 불러내는 것, R&B에서 많이 쓴다.)가 가득한 구성은 아델의 강점인 풍부한 톤보다는 비교적 약점이라 볼 수 있는 보컬 어질리티를 돋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런 점이 아델의 연한 속사람을 드러내며, 도리어 이 곡을 앨범 중 인상적인 순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전개와 스타일이 여성 싱어송라이터 캐롤 킹이 이혼 후 내놓았던 앨범 ‘Tapestry’(1971)를 떠올리게 하는 면도 있다. 바로 다음 곡이자 앨범의 마지막 곡 ‘Love Is A Game’이 캐롤 킹이 주로 작곡했던 1960년대 걸그룹풍 팝의 형태를 하고 있어 좀 더 쉬이 연상되기도 한다. 반짝이는 코러스와 풍성한 오케스트레이션의 페이드어웨이로 앨범은 끝을 맺는다. 아델의 개인적인 인생을 담았지만, 20세기 미국 팝의 좋았던 시절을 불러오는 음악 덕에 고전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느낌도 준다. 한때 미국은 비틀스의 인기를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 부를 정도로 남처럼 대했지만, 시간이 지나 지금은 영국 출신 가수가 미국 팝의 레거시를 따라가는 것을 너른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 같다. 물론 영국과 미국 사이 복잡한 역사와 문화, 인종 간 의식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앨범 발매를 한 달 앞두고 아델은 처음으로 인스타그램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을 열었다. 이번 앨범의 주제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이혼이요, 이혼(Divorce baby, divorce).”이라 쿨하게 대답했다. 워낙 유머러스하고 털털한 성격의 그이지만 8년을 함께한 동반자와의 헤어짐이 쉬웠을 리는 없다. 특히 그는 인터뷰를 통해 아이가 부모의 이혼으로 힘들어한 때도 있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이별 앞에 느끼는 감정을 굳이 설명할 의무는 없다. 아무리 그런 감정을 주제로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이라 해도, 감정은 그 자신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델은 사생활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아티스트이기도 했다. ‘25’가 나오기 전 4년의 공백, 또 ‘30’ 전 6년의 공백 중 우리가 알 수 있었던 것은 결혼이나 이혼, 운동을 통한 체형의 변화 등 일부에 불과했다. 그러나 앤젤로로 인해 그는 이혼을 설명해야만 현실에 놓였다. 부모의 헤어짐으로 삶에 영향을 받게 되는 어린 사람에게는 마땅히 주어져야 하는 일이지만, 그 설명을 해야 하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앨범을 듣는 우리는, 또 한 번 아델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인생의 무게와 복잡함을 생각하게 된다. 뜨겁게 감정을 토해내던 젊은이가 물처럼 넘실대는 양육자가 되기까지의 시간을 각자의 삶에 비추어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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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리 아일리시의 슬픔과 성장2021.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