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바투스럽다’의 뜻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강명석: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새 앨범 ‘minisode 2: Thursday’s Child’의 첫 곡 ‘Opening Sequence’는 제목에 두 가지 의미를 담은 것처럼 보인다. 하나가 “너와 내가 끝난 장면에서 영환 시작돼”처럼 이별의 상황을 영화에 빗댄 가사로 반영했다면, 다른 하나는 앨범 전체에서 ‘오프닝 시퀀스’를 하는 곡의 역할이다. ‘Opening Sequence’에 이어지는 타이틀 곡 ‘Good Boy Gone Bad’에서 “난 날 죽여”라고까지 할 만큼 상처 입고 분노한 ‘Boy’는 ‘Trust Fund Baby’에서 잔잔한 피아노 연주와 함께 애처로운 목소리로 자신이 “I can’t be a lover”일 수밖에 없는 처지를 자학 또는 자각한다. 앨범의 마지막 곡 ‘Thursday’s Child Has Far To Go’는 제목 그대로 새로운 길을 나서는 ‘Boy’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앞의 곡 ‘Lonely Boy (네 번째 손가락 위 타투)’에서 “이젠 추억도 못해 내버려 둘 수밖에”라며 이별을 수용한 뒤 “다시 울지 않을래”라며 이별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의 엔딩이다.
‘Good Boy Gone Bad’는 공격적인 목소리로 “다 내다버려”를 외칠 만큼 ‘Bad’의 상태가 된 ‘Boy’의 이야기다. 그러나 ’Boy’가 ‘Bad’로 ‘Gone’한 것은 이별 때문에 더 나쁜 상황으로 몰릴 수밖에 없어서다. ‘Trust Fund Baby’에서 ‘Boy’는 “빛이 나는 spoon 내게는 남 얘기”, “빈 wallet 그보다 더 비어버린 마음의 이름”처럼 자신의 경제적인 계급을 새삼 깨닫는다. 분노할 때는 보이지 않았던 현실이, 분노의 힘이 다하자 뼈가 시리도록 보인다. ‘Trust Fund Baby’의 가사에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을 연상시키는 “더하고 곱해봐도 잘 안 돼 그 어떤 수도 0인 내겐”, ‘LO$ER=LO♡ER’의 가사였던 “Lover with no $ dollar sign” 등이 있다. 앞의 두 곡에서 사랑만 있었던 소년은 그게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최악에는 더 최악이 찾아온다. 차도, 돈도, 함께할 사람들도 없다. 이제는 사랑조차 사라졌다. ‘minisode 2: Thursday’s Child’는 곡마다 분노, 슬픔 같은 한 가지 감정 상태를 묘사하면서, 앨범 전체를 통해 소년의 감정 변화로 드러나는 문제들을 조금씩 보여준다. 그리고 이 모든 슬픔과 상처와 자각은 그들이 새로운 길을 떠나는 목요일의 아이처럼 새로운 시작을 한다 해도 그들에게 영구적인 영향을 남길 것이다. 네 번째 손가락 위의 타투처럼. ‘Boy’는 정말 함께할 사람도, 내일도 그리하여 누구에게도 사랑받지도 기억되지도 못할 처지가 되었다.
‘꿈의 장: MAGIC’에서 걱정 하나 없을 것 같았던 세계를 오히려 내면의 어두움을 드러내는 장치로 삼았던 이 팀의 이야기는 ‘혼돈의 장: FREEZE’에서 그 원인을 일으키는 현실을 바라보고 표출하기 시작했고, ‘Good Boy Gone Bad’에 이르러서는 격렬한 분노가 된다. 그사이 ‘세계가 불타버린 밤, 우린 (Can’t You See Me?)’에서 내면에 억눌린 불안을 표현하던 어둡고 복잡하며, 트랩비트를 활용하던 사운드는 사랑을 고백하는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에서 육중한 록 사운드와 드라마틱한 멜로디로 바뀌었다. 그리고 ‘Good Boy Gone Bad’의 자기 파괴적인 분노에 이르러 날렵하고 날카로운 록 사운드와 빠른 리듬 중심의 전개로 바뀌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앨범마다 곡들을 하나의 이야기처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앨범과 앨범은 서로 연결되어 긴 서사를 만들어낸다. 앨범마다 변하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비주얼 콘셉트와 음악은 영화의 음악과 미술처럼 그들의 서사를 반영하는 요소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앨범을 낼 때마다 하나씩 쌓여,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현재를 이룬다. 이 팀의 데뷔 곡 ‘어느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 (CROWN)'와 ‘Good Boy Gone Bad’의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청량’에서 ‘다크’로의 콘셉트 변화가 아니다. 두 곡 사이에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거쳐온 이야기들이 있고, 이야기들은 이 팀에 타투처럼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며 그들을 환상에서 현실로, 사랑에서 이별로, 공동체에서 소외된 개인으로 끌고 왔다. 다시 말하면,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앨범마다 바뀌는 팀의 로고만으로도 그들이 다음에 무엇을 할지 궁금하게 만드는 팀이 됐다. 그리고 ‘minisode’는 두 번째에 이르러 한 챕터를 끝내고 다음 챕터로 가기 위한 종착역이자 전환점임을 확실하게 인지시킨다. 매번 특이하고, 다르고, 새로웠던 것들이 하나씩 쌓여 어느 순간 투모로우바이투게더만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투바투스럽다’는 말의 의미가 완성되고 있다.
Visual X TOGETHER
이지연: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새 앨범 ‘minisode 2: Thursday’s Child’ 발표 전 공개한 콘셉트 포토 ‘MESS’-‘END’-‘HATE’-‘TEAR’는 이별 이후 소년의 감정 변화를 보여준다. 첫 번째로 공개된 ‘MESS’ 버전은 ‘혼돈의 장: FREEZE’의 마지막 콘셉트 포토 ‘YOU’ 버전과 이어진다. ‘YOU’ 버전에서 멤버들이 손에 들고 있던 ‘우산, 헬멧, 풍선, 꽃다발’은 모두 망가진 채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멤버들과 함께 버려져 있다. ‘혼돈의 장: FREEZE’의 타이틀 곡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가 구원과도 같았던 ‘너’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곡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때 그 사랑을 상징했던 것들이 이별을 다루는 ‘minisode 2: Thursday’s Child’에서는 다 망가져버린 셈이다.
‘MESS’ 버전이 전작에 등장했던 오브제의 활용을 통해 소년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었다면, ‘END’ 버전은 반대로 오브제를 모두 덜어냈다. 배경이나 소품은 최대한 절제하고, 착장도 화이트 톤의 홑겹 의상으로, 덜어낼 수 있는 것은 모두 덜어낸다. 대신 멤버들의 표정만으로 이별 후 상처받은 이의 슬픈 감정을 보여준다. 반면 ‘HATE’는 이별 이후 자기 파괴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낸다. 멤버들은 장미를 짓이기고, 발로 벽을 차거나 깨진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이윽고 마지막 ‘TEAR’에서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무언가를 응시하는 얼굴 클로즈업을 통해, 다시 소년의 내밀한 감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회귀한다. 이별 이후의 슬픔을 노래하는 ‘Opening Sequence’부터 마음을 정리하고 “온 길보다 더 멀고 험하겠지만” 새로운 여정을 떠나는 ‘Thursday’s Child Has Far To Go’까지 이별의 과정을 정리한 ‘minisode 2: Thursday’s Child’의 곡들처럼, 콘셉트 포토는 앨범 발표 전부터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전하는 이별의 과정에 미리 몰입할 장치를 마련했다.
‘MESS’ 버전의 개인 콘셉트 포토에서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멤버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진 모습을 통해 이별 후 버림받은 소년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비현실적이라고 해도 좋을 비율의 팔과 다리를 힘없이 늘어뜨린 몸은 허망한 듯 혹은 원망이 섞인 듯한 표정과 더해져 버려진 인형처럼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것 같은 이별의 감정을 전달한다. 반면 ‘END’ 버전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붉어진 눈시울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을 컬러 사진으로,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하고 흘리는 모습을 흑백 사진으로 보여준다. ‘END’ 버전의 콘셉트 클립에서 멤버들이 온몸의 힘이 빠진 듯 힘없이 욕조에 기댄 채 어딘가를 멍하니 응시하다, 무의식적으로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내며 눈을 질끈 감는 모습 등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콘셉트 포토를 어떤 방식으로 찍었는지 짐작케 한다. 상이한 이미지를 가진 각 버전의 사진들을 통해 이별 이야기를 담은 콘셉트 포토처럼, 멤버들은 연결되는 감정선을 유지한 채 그들의 몸과 얼굴을 사용한다. 사진과 음악 등 다양한 표현 방식을 통해 일관된 스토리텔링을 구현하는 ‘minisode 2: Thursday’s Child’에서 멤버들은 노래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보컬리스트인 동시에, 사진 한 장을 찍을 때도 각각의 상황에 몰입하는 연기자들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Good Boy Gone Bad’에서 1, 2절 내내 절제된 동작과 함께 표정 연기로 이별의 분노를 보여주던 멤버들이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후렴구에서 끝없이 긴 것 같은 팔다리를 있는 힘껏 쭉쭉 뻗으면서 곡 후반부가 주는 쾌감을 소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무대에서 무용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을 활용해 몸의 선을 강조하는 ‘Opening Sequence’에서도 마찬가지다. ‘minisode 2: Thursday’s Child’가 가진 또 하나의 가치다. 이별 뒤에 성장하는 소년처럼,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이별을 거치며 더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의 감정을 표현한다. ‘비주얼바이투게더’라는 말을 듣는, 그들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을 통해 말이다.
진실한 감정
나원영 (대중음악 비평가): 이모(emo)는 특정 세대와 시간대만을 위하거나 그에 대한 것도 절대 아니다. 단어에 담겼듯 감정적인 ‘진실함’을 전달하고자 당대 미국 하드코어 펑크가 변화를 감행했던 1980년대 중반부터, 이모는 매 시기마다 적어도 하나쯤 유행하는 대중음악 스타일로 부단히 존재해왔다. 인터넷의 구석진 언더그라운드에서부터 글로벌 차트의 높다란 정상까지 수많은 형태로 분화된 채 말이다. 애초에 겹치는 영역이 넓었던 록과 팝 간의 하위 장르 속 각각의 제한과 도구를 사용해, 감정적인 충실함을 이끌어내는 것이 곧 이모의 주목적이 되었다.
‘혼돈의 장: FREEZE’에 들어섰던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2021년 타이틀 곡들은, 군더더기 없이 매끈했던 ‘꿈의 장: MAGIC’ 속 전자적인 팝에 전기기타의 잡음과 소음을 살짝 도입해 그런 ‘감정적인 진실함’을 효과적으로 구현했다.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의 후렴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태현의 일그러진 목소리가 “이게 진짜라는 걸 알아, 내가 느낄 수 있어 (I know it's real I can feel it)”라 내지르듯 말이다. 그 기조를 잇는 두 번째 ‘minisode’인 ‘minisode2: Thursday’s Child’에서, 이런 ‘날것’의 감정을 분출하려는 목표는 ‘Opening Sequence’의 후반부에서 (‘디어 스푸트니크’와 꽤 비슷하게) 짙은 전기기타 소리가 묵직하게 부각되는 걸로 대표된다. 또한 밀고 당기는 리듬 파트를 전면적으로 강조하면서도 트랙이 조용해질 때마다 원경에 집어넣은 지글대는 전기기타 소리가 두드러지는 ‘Good Boy Gone Bad’처럼, 이 음반에서는 록적인 기타의 고유한 음색을 아이돌 팝이 이식한 댄스 리듬들에 덧붙이는 방식이 돋보인다.
물론, ‘감정적임’을 표현하는 도구에 단지 그런 그런지한 전기기타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앞선 태현의 예시처럼, 가창만큼이나 이모셔널함을 표출하기 좋은 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Trust Fund Baby’에서 휴닝카이가 “Lover with no $ dollar sign”이나 “더하고 곱해 봐도 잘 안 돼 / 그 어떤 수도 0인 내겐”이라며 과거의 수식들을 자조적으로 비틀 듯, 온전치 못하게 조정된 화음과 사운드는 트랙이 내보이려는 감정적인 취약함을 알맞게 연출한다. ‘Lonely Boy (네 번째 손가락 위 타투)’는 이러한 취약함이나 그에 대한 진실함의 구성법들을 적절히 절충하는데, 별다른 이펙트 없이 기타를 퉁기는 짧은 구간을 트랩비트의 샘플 재료처럼 사용하며 토대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연준의 멜로디컬한 랩에 사용되는 오토튠과 함께 멜로디가 아래로 낮게 들어가는 것과 이에 대비되게 후렴구에서 높이 올라가는 휴닝카이의 보컬이 교차되면서, 간단한 구성으로도 그 ‘외로움’이 각기 다른 두 면으로 펼쳐진다. 이러한 중에 문득 궁금해지는 게, 왜 이 모든 ‘이모셔널’함을 드러내는 날이 하필 목요일인 걸까?
변화무쌍한 록 스타이자 팝 스타였던 데이비드 보위는 자신의 지난 시간을 관조하던 1990년대 말, ‘Thursday’s Child’라는 곡을 발표했다. 다운템포 비트를 깔고 “어쩌면 난 내 시간에서 곧장 벗어난 채 태어난 게 아닐까 (Maybe I’m born right out of my time)”라 착잡하게 중얼거리는 ‘목요일의 아이’는, 그가 겪던 중년의 위기만을 제외하자면 자신과 시간 사이의 어긋남을 감각하는 존재다. 동일한 한 주의 중간 지점을 끌어오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경우, 이 복잡다단할 목요일은 곡명이 암시하듯 갈 길이 멀고, 오히려 주말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 때다. 데뷔 3주년을 지난 그들에게 목요일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그간 거쳐온 몇 개의 장들을 떠올리게 한다. 앞서 언급한 휴닝카이의 구절과 함께 겹쳐보자면,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장과 장 사이의 ‘minisode’로 떨어져 나온 채 “시간에서 곧장 벗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에너지 넘쳤던 작년의 타이틀 곡들에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EP의 가장 처음부터 저 모든 “헤어짐부터 반대로 흐르는 화면”과, “사건을 되감는 오프닝 시퀀스”, “뒷걸음질 치는 달력”으로 그 시간들과의 분명한 어긋남을 느끼면서 말이다.
‘minisode’의 마지막 곡인 ‘Thursday’s Child Has Far To Go’는 다른 트랙들과는 정반대 구조로, 디스코 트렌드를 따르는 정박의 록 비트와 정석적인 신스 음을 올린다. 이번 EP 동안에 어려움을 겪었던 시간과 화해해야 할 때가 종용하듯 찾아오고, 그에 따라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나를 기다릴 날들과 발을 맞추러” 가고자 이 격한 감정들을 긍정적이게 전환하려 노력한다. ‘목요일의 아이’에게는, 갈 길이 머니까. 타이틀 곡들과 달리 ‘꿈의 장: MAGIC’만큼이나 뛰어난 일렉트로 팝으로 수록 곡들을 채웠던 ‘혼돈의 장: FREEZE’ 속 인상적인 불일치를 떠올려보면, ‘Thursday’s Child’에 담긴 이 어긋남은 진작 예비되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minisode’에서 느지막이 그 혼란을 통과하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이를 기회로 삼아, ‘혼돈의 장: FREEZE’보다도 좀 더 높은 비율로 전기기타와 목소리를 사용해 각자의 이모셔널함을 다양하게 꾸며낸다. 그렇게 서로 다른 양쪽 항이 등호로 충돌하거나 0을 곱해 의미 있는 값을 만들려는 수식들의 허망함을 떨쳐내려 할 때 생산되는 감정들은, 이 다음을 산출하는 동력원으로 전환된다. 곧, 다음 장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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