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20일 국내 개봉한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은 16일 만에 누적 관객수 100만 명을 돌파했다. ‘토이 스토리 4’, ‘코코’ 등 전작들에 비해서는 더딘 편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전국 극장의 하루 평균 동원 관객수가 전년도 대비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고무적인 기록이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2월 25일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된 직후 이틀 동안 240만 가구 스트리밍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렇듯 침체된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은 ‘소울’은 삶의 소중함을 돌아보는 영화다. 중학교 밴드부 교사인 조(제이미 폭스)는 오랜 꿈을 실현할 기회를 앞둔 채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하고, 그의 영혼은 태어나기 전 세상(The Great Before)인 ‘유 세미나(You Seminar)’에 불시착한다. 죽음을 피하고 싶은 조는 그곳에서 탄생을 원치 않는 영혼 22(티나 페이)를 만나고, 두 사람은 각자의 목표를 위해 삶을 얻는 열쇠인 ‘불꽃(Spark)’을 함께 찾아나선다.

‘소울’은 삶의 찬란함이 연결과 관계에서 비롯됨을 보여준다. 삶 이전과 죽음 이후를 관통하는 영혼으로 인해 모든 순간들은 어느 시점에나 연속적으로 ‘존재’한다. 살아서 보낸 매 순간이 사라지지 않기에, ‘누구나 언젠가 죽을 것을 아는’ 필멸성도 삶의 가치를 훼손하지 못한다. 동시에 영화는 영혼 역시도 ‘나’를 비롯한 삶의 모든 요소들과 긴밀히 이어져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길 잃은 영혼들이 사로잡힌 강박은 그들을 삶으로부터 단절시킨다(Lost souls are obsessed by something that disconnects them from life).” 어둠에 삼켜진 영혼들에 대한 문윈드(그레이엄 노튼)의 설명은 자아를 돌보지 않는 이들을 향해 울리는 경종이다. 길 잃은 영혼이 문윈드와 그의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구조되고, 조와 22가 서로를 이해하며 마음의 문을 열었을 때 비로소 원하는 바를 깨닫게 된 것처럼, 삶은 어떤 방식으로든 유대를 말미암는다. 자신 또는 다른 존재들과의 ‘맺음’이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소울’이 픽사 최초로 재택근무를 통해 완성된 작품이라는 사실은 이러한 메시지의 외연을 팬데믹 국면에 처한 오늘날로 확장시킨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미국에서는 자택대기명령(shelter-in-place)이 발동됐고 ‘소울’ 제작진은 에머리빌의 스튜디오에서 각자의 집으로 흩어져 7주간 남은 작업을 마무리해야 했다. 애초 6월 예정이었던 영화 개봉은 6개월 이상 연기됐고, 제작진 모두가 극장에서 결과물을 확인하고 기념하는 프리미어 시사는 포기해야만 했다. 이와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영화는 완성되어 전 세계 관객들과 함께 영화적 경험을 나누고 있다. 계획했던 바는 좌절되기 쉽고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가는 과정은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해낸 몫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얽히며 삶의 어떤 순간을 이룬다. 이로써 ‘소울’은 혹여 상처 입고 병들어도 존엄한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두를 위한 이야기가 된다. ‘소울’은 고립과 단절의 시대에 필요한 격려이자 응원이다. 마스크 없이 거리를 누빌 수 있고 복작거리는 재즈 클럽에서 마음껏 열기를 나눌 수 있었던 일상은 영화가 됐고, 영화는 막을 내렸다. 쿠키 영상이 말해주듯, 이제 관객은 집에 머물며 ‘지금의 일상’을 살아낼 것이다. 지루하고 답답하게, 그러나 때때로 영화가 상기시킨 소중한 순간들을 발견하면서.
TRIVIA

픽사(Pixar Animation Studios)

픽사는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가 설립한 제작사 루카스필름에서 출발했다. 1979년 루카스필름은 뉴욕 공과대학 컴퓨터그래픽연구소장인 에드윈 캣멀을 영입해 영화 산업에 필요한 최첨단 컴퓨터 기술 개발을 위한 컴퓨터 부서를 신설했고, 1986년 스티브 잡스가 이 컴퓨터 부서를 인수하면서 ‘픽사’라는 이름의 독립 법인이 됐다. 픽사와 디즈니의 협업은 픽사가 전통적인 수작업 방식에 CG를 도입해 자동화한 애니메이션 제작 시스템 CAPS(The Computer Animation Production System)를 개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토이스토리’, ‘벅스 라이프’, ‘니모를 찾아서’ 등을 함께 제작했고, 2006년 디즈니의 픽사 인수로 인해 픽사는 디즈니의 자회사가 됐다. ‘소울’은 픽사의 23번째 영화이자 최초로 흑인 캐릭터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글. 임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