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M의 새 앨범 ‘Right Place, Wrong Person’은 시로 쓴 건축물 같다. 선공개된 ‘Come back to me’와 타이틀 곡 ‘LOST!’의 뮤직비디오가 모두 공간의 이동을 소재로 하고 있는 것은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Come back to me’에서 RM은 같은 층에 있는 방들을 옮겨 다니고, ‘LOST!’에선 층과 층을 뚫고 올라간다. 수평과 수직의 움직임 속에서 RM은 자신의 ‘Right Place’를 찾아 나간다. ‘LOST!’의 뮤직비디오에서 그가 또 다른 ‘RM’들의 몸을 타고 올라온 곳은 TV 쇼가 진행 중인 스튜디오다. 실제로도 그렇듯, RM은 TV 쇼 진행자가 열렬히 환영하는 아티스트다. 하지만 그가 부르는 ‘LOST!’의 가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난 텅 빈 거리 시간은 쏜살 열네살 걘 벌써 30”. ‘LOST!’의 뮤직비디오에서 RM은 좁게 앞만 보며 걷거나 위로 올라가야만 한다. RM에게는 한국의 작은 클럽 롤링홀에서 공연하길 바라던 중학생 래퍼, 데뷔가 꿈이던 연습생, 성공을 간절히 바라는 아이돌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16년이 지나 K-팝 아티스트로서 가장 앞에, 위에 선 순간 그는 옆을 돌아본다. ‘Come back to me’ 뮤직비디오에서 그는 건축물에 있는 방과 방을 옮겨 다닐 때마다 다른 사람과 다른 상황에 놓인다. 어느 방에는 그의 배우자와 아이인 듯한 두 사람이 세면을 하고 있고, 다른 방에서는 그의 연인인 듯한 여성이 그에게 화를 내고 있다. 뮤직비디오 속 RM의 과거사일 수도 있겠지만, “세수할 시간도 아까워”란 가사가 RM이 방탄소년단으로 살아온 삶의 방식을 응축한다고 보면 그가 다른 생을 살았을 때 갔을지도 모를 여러 가능성들일 수도 있다. 내 삶은 지금 틀린 자리에 있는 걸까. 아니. ‘Right People, Wrong Place’. 앨범의 제목을 뒤바꾼 첫 곡처럼, 잘못된 것은 장소일지도 모른다. “Wrong people in wrong place Right people in right place Right people in wrong place”, 삶의 다양한 경우의 수 속에서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RM은 앨범 속에 각각의 공간을 만들고, 그 곳들을 이동하며 자신의 장소를 찾아 나간다. ‘Right People, Wrong Place’에서 RM의 목소리가 비슷하게 반복되며 조금씩 달라지는 문장들을 낭송하면 그의 목소리에 다양한 소리들이 점차 중첩되고, 그것은 하나의 공간을 만든다. 특정한 비트나 멜로디가 곡을 끌고 가는 대신 여러 개의 비트들이 전후좌우에 배치되면서 RM의 목소리를 감싸는 배경이 되는 과정은 이 앨범 전체의 사운드 디자인을 제시한다. 색소폰 연주만으로 시작하는 ‘Domodachi (feat. Little Simz)’는 처음에는 마치 밤의 적막한 공간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내 수많은 소리들이 정신없이 휘몰아치면서 현실인지 환상인지 모를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변화의 분기점은 RM의 랩이다. RM이 건조한 목소리로 조금씩 랩의 속도를 높이면, 그의 배경이 되는 사운드는 폭풍이 친 것처럼 급격하게 변화한다. RM이 마치 시를 낭송하는 사람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Get high get fire”를 말하면, 사운드는 목소리의 미묘한 변화와 가사의 내용을 소리의 미장센으로 정교하게, 동시에 더욱 크게 풀어낸다.
‘Nuts’와 ‘out of love’는 마치 한 곡처럼 이어진다. ‘Groin’은 코러스로 시작한 도입부가 갑자기 끝나더니 RM의 올드스쿨 랩과 함께 재즈 스타일로 바뀐다. 곡과 곡의 경계가 흐릿해진 한편, 한 곡 안에서는 마치 여러 곡을 섞어 놓은 것 같은 전개가 진행된다. ‘Groin’은 RM이 랩을 하고, 노래를 하고, 다시 훅을 코러스와 떼창 형식으로 부를 때마다 사운드가 급격하게 변한다. ‘Come back to me’의 뮤직비디오처럼 RM은 이 앨범에서 음악으로 만든 방을 옮겨 다닌다. 나누는 단위는 곡이 아니라 RM의 목소리고, 목소리가 전하는 가사가 곡을 끌어간다. ‘Domodachi (feat. Little Simz)’에서 코러스로 나오는 “みんな友達ここで踊りましょう (모두 친구 여기에서 춤을 추자)”가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이 곡의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후렴구여서만은 아니다. 앞의 세 곡에서 차츰차츰 쌓인 불안스럽고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みんな友達ここで踊りましょう”에서 강렬하고 웅장한 코러스로 바뀌는 순간은 ‘Domodachi (feat. Little Simz)’뿐만 아니라 앨범 전체의 전환점이다. 마치 영화가 일관된 분위기를 보여주다 한 씬(scene)에서 급격하게 전환되는 것처럼, ‘Right Place, Wrong Person’은 한 곡 단위의 감상 대신 앨범 전체의 흐름 속에서 결정적인 장면들을 남긴다. ‘Right People, Wrong Place’에서 ‘Right’과 ‘Wrong’, ‘Person’과 ‘Place’를 이리저리 조합해 반복적인 구성의 가사를 조금씩 다르게 읊조리던 RM은 ‘Nuts’에서 다시 “I could make this right place for you”처럼 ‘right place’를 이용한 가사로 노래를 부른다. “Feelin’ high on a forest fire”의 ‘fire’는 ‘Domodachi (feat. Little Simz)’에서 “Get high get fire”로 이어진다. 각각의 곡이 가진 이야기는 다른 곡들과의 연결점을 통해 앨범 전체에 걸친 큰 흐름을 갖는다. 아홉 번째 곡 ‘Around the world in a day (feat. Moses Sumney)’가 앨범 전체에서 가장 큰 스케일의 합창으로 끝난 뒤 이어지는 다음 곡의 제목은 ‘ㅠㅠ (Credit Roll)’이다. 영화를 다 보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처럼, ‘Right Place, Wrong Person’은 각각의 곡들에 하나의 작품이 보여주는 전체적인 흐름 안에서 해야 할 역할들을 부여한다. ‘Right Place, Wrong Person’에서 각각의 곡이 RM이 쓴 시로 설계한 방이라면, ‘Right Place, Wrong Person’ 전체는 RM이 목소리를 통해 그 방들을 이동하며 자신의 기억, 감정, 생각들을 풀어놓은 과정을 담은 영화와도 같다. ‘LOST!’ 뮤직비디오의 도입부에서 등장하는 이름표, ‘INSIDE NAMJOON’S BRAIN’은 이 앨범의 한 줄짜리 스토리라인이다. 누구도 정리할 수 없는 자신의 시적인 머릿속을 다양한 방이 합쳐진 건축물의 형태로 만들어 돌아다니는 과정. 그래서 장르를 정의하기 어려운 이 앨범을 굳이 장르적으로 분류하고자 한다면, 힙합, 프로그레시브, 사이키델릭 같은 것이 아니라 (가상의) OST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RM은 K-팝과 힙합과 홍대 인디 씬과 전 세계의 팝 트렌드를 안다. 오혁과 리틀 심즈와 모지스 섬니 또한 동시에 안다. 사람과 장소의 결합을 ‘Right’과 ‘Wrong’으로 분류할 수 있다면, RM은 모든 곳에서 ‘Right’일 수도, ‘Wrong’일 수도 있는 사람이다. ‘Come back to me’ 뮤직비디오는 모두가 즐거운 파티에서 혼자 우울한 듯한 RM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렇게 어디에나 있을 수 있지만 어디에도 속하기 어려운 사람.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동시에 영어를 쓰며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한국의 김환기 화백과 에픽하이를 좋아하는 동시에 전 세계 아티스트들과 교류하는 사람은 자신을 무엇이라 표현할 것인가. ‘Domodachi (feat. Little Simz)’에서는 RM의 영어 랩과 일본어 코러스, 영국 래퍼 리틀 심즈의 영어 랩이 함께 등장한다. 리틀 심즈가 한국어로 “내 선은 넘지 못해”를 랩하는 순간은 ‘Right Place, Wrong Person’의 양식(樣式)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어를 쓰는 사람에게는 낯설다. 그 외의 언어를 쓰는 이들에게는 낯선 동시에 의미가 아닌 발음과 목소리의 톤이 주는 청각적인 신선함이 먼저 다가올 것이다. ‘LOST!’의 뮤직비디오에서 TV 쇼를 진행하는 이들은 영어와 한국어를 전혀 다른 뉘앙스로 전달한다. 한국어로는 밝고 친절한 분위기로 말하던 것을 영어로는 냉정한 느낌처럼 표현하기도 한다. 같은 의미라도 각자의 언어에 따라 다른 느낌을 만들어내고, 뜻을 알 수 없는 언어는 때론 비언어적인 요소들을 통해 전혀 다른 뉘앙스로 해석되기도 한다. 나의 장소에 나와 다른 존재가 들어왔을 때 또는 내가 다른 존재들이 있는 장소로 들어왔을 때 생기는 충돌. 한국어와 영어가 그대로 뒤섞여 다른 뉘앙스를 만들어내고, 각각의 곡은 앨범 전체를 들었을 때 연결되며, 곡마다 특정한 비트와 멜로디를 중심으로 반복되며 기억에 남기보다는 가사에 맞춰 하나의 이야기를 진행하듯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을 선택한다. ‘Right Place, Wrong Person’은 어디에도 정확히 정신적인 거처를 마련하지 않은 것 같은 RM의 자아에 대한 사유를 그린다. 그는 사랑을, 우정을, 자신이 살아온 여정을 자신이 살며 갖게 된 문화적 배경과 사람들을 통해 표현한다. 그는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개인화된 방식으로 표현한다. RM 이외의 사람은 이 다양한 요소들이 모두 결합해 지금 대중음악의 표준화된 양식의 반대 ‘Place’에 자리 잡은 듯한 이 앨범을 완전히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부분적인 익숙함과 많은 낯설음을 섞어 새로운 인상을 남기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Come back to me’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이성진 감독은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의 제작, 연출, 각본을 맡았다.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쓰는 한국계 미국인의 삶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한국인도 미국인도 완전히 알 수 없는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양쪽에 모두 속한 동시에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세계의 언어와 문화가 인터넷을 통해 뒤섞이는 지금, 이것은 그동안 자신이 ‘Right Place’의 ‘Wrong Person’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Right Place’를 스스로 만드는 ‘Right Person’이 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RM은 ‘Right Place, Wrong Person’을 통해 그렇게 각자의 장소를 만들어 간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을 통해 자신의 삶을 하나의 표현 양식으로 만든다. 그 과정에서 가장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지금 세계의 문화적 경향을 담아낸다. 그것도 의미가 통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또는 의미가 통하지 않을 때 알 수 있는 개인의 양식을 통해. 다른 말로 표현하면, ‘Right Place, Wrong Person’은 아주 개인적인 작업물이 전 세계 어디서나 잊혀지지 않는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예술이 되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아티스트가 자신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아주 개인적이면서 세계적인 흐름 안에 있는 무언가를 내놓은 것이다.
지난 솔로 앨범 ‘Indigo’에서 RM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자신에게 영향을 준 취향과 인물들과 함께했다. ‘Right Place, Wrong Person’은 그렇게 성장한 청년이 바로 지금 자신과 다른 세계에서 각자의 장소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과 함께 음악, 영상, 문학이 합쳐진 자기만의 언어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렇게 시간을 수직으로 훑고, 공간, 또는 씬을 수평으로 넓게 살피면서 RM은 자신을 ‘Right’과 ‘Wrong’으로 평가하는 대신, 자기 자신에게 맞는 장소를 스스로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Come back to me’에서 중요한 건 ‘Come back’이라는 바람이 아니라 ‘to me’인 것이다. ‘Right Place’를 찾기 위해 수없이 많은 전시회와 정신적 사유를 떠나던 사람이, 결국 의식의 중심을 드디어 ‘me’에게로 돌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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