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 3일 국내 개봉한 ‘미나리’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화 중 하나다. 골든글로브, 선댄스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72개 상(11일 기준)을 받았으며,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외신들은 ‘미나리’가 오는 4월 개최될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한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사실을 비중있게 다뤘다. 밥상 위 나물로 익숙한 이름이 전 세계에서 호평을 받는 ‘Minari’로 불리듯, 친숙한 듯 낯선 이 영화는 이민을 선택한 가족의 이야기다. 제이콥(스티븐 연)과 모니카(한예리)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또 캘리포니아의 도심에서 아칸소의 황무지로 터전을 옮긴다. 두 사람이 맞벌이를 하느라 앤(노엘 케이트 조)과 데이비드(앨런 김)를 돌보기 어려워지자, 한국에서 지내던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네 사람과 함께 살기로 한다. 영화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일궈낸 사람들을 담는다. 인물들은 울고 웃고 때론 밀어내다 상처를 내지만 끝내는 서로 부둥켜 안으며, 매일 찾아오는 버거운 오늘을 버틴다. 그렇게 보낸 하루하루는 거친 풍파에도 휩쓸리지 않게끔 잡아주는 마음의 뿌리가 되고, 한 사회를 만드는 역사의 일부가 된다. 이야기는 나아가 영화 ‘미나리’의 것으로 이어진다.

‘미나리’는 미국인 감독이 미국 제작사와 함께 미국에서 촬영한, 미국 시민의 삶을 다룬 영화다. 그럼에도 대사의 절반 이상이 비영어라는 규정을 이유로, 지난해 12월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로 분류됐다. 그러자 영화계 내에서 규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배우 대니얼 대 킴(Daniel Dae Kim)은 트위터를 통해 “실제 국적이 미국임에도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The film equivalent of being told to go back to your country when that country is actually America).”라고 비판했다. 제작자 프랭클린 레너드(Franklin Leonard)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도 대사 대부분이 영어가 아니었지만 이런 식으로 분류되지 않았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라고 말했으며, 감독 겸 제작자 필 로드(Phil Lord) 역시 이에 대해 “문제는 이것이 간과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점(The thing is, on Minari and the Globes, this isn’t an oversight. It’s a choice)”이라며 “매우 신중히 고려되고 의도된, 유해한 결정(This is a carefully considered, deliberate, harmful decision)”이라고 주장했다.

‘미나리’는 현재의 차별뿐 아니라, 그러한 현재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 역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은 오늘보다 조금은 더 행복할 내일을 위해 부단히 애쓴다. ‘미나리’가 ‘외국어영화’로 분류되고 작품상 부문에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한 지적은, 골든글로브를 주최하고 심사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의 적폐와 악습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결국 HFPA는 지난 7일 “조직의 투명성을 높이고 보다 포괄적인 커뮤니티를 구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골자의 성명서를 발표하며 내부 규정과 회원 자격 요건 검토, 인종 및 성차별 방지를 위한 교육 의무화 등을 약속했다. “영화는 단순히 국가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인간의 자질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정이삭 감독이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전한 말처럼,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의 삶을 말하는 영화에게 언어나 국적과 같은 경계는 무의미하다. ‘미나리’ 개봉 이후 영화의 안팎에서 펼쳐진 이야기는 이 같은 사실을 증명해냈다. ‘저들만의 경험’이 아닌, ‘우리의 삶’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TRIVIA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Golden Globe Award for Best Foreign Language Film)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대사의 절반 이상이 비영어 언어로 제작된 영화를 본상과 별도로 시상하는 부문이다. 1986년까지는 ‘외국영화상(Best Foreign Film)’이었으나, 1987년 ‘외국어영화상’으로 변경되면서 영국을 비롯한 비미국 영어 사용 영화들은 해당 부문에서 제외되며 작품상 후보 대상이 됐다.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주관하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경우 1945년부터 ‘외국어영화상’ 부문이 있었으나, 2020년에 ‘국제영화상’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미국 외 영토에서 제작된 대사 과반수가 비영어로 이뤄진 장편영화를 대상으로 하며, 작품상 후보에도 오를 수 있다.
글. 임현경
디자인. 전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