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배지안,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차린건 쥐뿔도 없지만 유튜브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 EP.13’
배지안: 이영지의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이하 ‘차쥐뿔’)’, ‘차쥐뿔’이 370일 만에 돌아왔다. 이번 ‘차쥐뿔’은 지난 시즌과 달리 이영지의 자취방이 아닌, 프로그램을 위해 따로 빌린 시골집에서 진행된다. “프로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라는 이영지의 외침 뒤 나오는 자막, “배려해주신 주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는 이영지가 ‘차쥐뿔’에서 보여주는 태도이기도 하다. 술을 마시며 게스트와 편한 대화를 이끌고, 때론 스스로 ‘광대’를 자처하면서 ‘차쥐뿔’과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세심한 배려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최애 영상이 되거나 내가 새롭게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는 영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이영지가 밝힌 제작 취지처럼 ‘차쥐뿔’을 보면 어떤 게스트든 호감을 느끼게 될 것 같은 신뢰를 주는 이유일 것이다. 리사 또한 데뷔 8년 만에 첫 유튜브 예능으로 ‘차쥐뿔’을 선택했고, 이영지와의 대화를 통해 그가 왜 곡 제목처럼 세계적인 ‘Rockstar’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부터 ‘코첼라 밸리 뮤직 & 아츠 페스티벌(이하 ‘코첼라’)’에서 본 로살리아의 무대에 매료되어 그에게 컬래버레이션을 제안한 에피소드까지 편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영지는 게스트로 자신과 같은 아티스트들이 나왔을 때, 매번 그들의 조언을 구한다. 혹시 그들에게도 남모를 고충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했는지 혹은 현재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토크쇼 MC 이영지가 아닌, 아티스트 후배 이영지로서 물어보는 이 질문들은 언제나 게스트들에게 조금 더 진실한 조언을 끌어낸다. ‘코첼라’ 당시 너무 긴장해 무대 위에서 몸이 굳었을 때 리사는 블링크(블랙핑크 팬덤명)와 뿅봉(블랙핑크 응원봉)을 찾았다고 말했다. 리사의 “저는 팬들한테 위로받아요.”라는 말이 뻔하게 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같은 아티스트로서 그를 진정으로 리스펙하고 그의 경험이 궁금했던 후배 아티스트 이영지의 진심이 담긴 질문 덕분이었을 것이다.

‘Jealousy 31℃’ - 트램폴린(Trampauline)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300m짜리 마천루인 더 샤드는 유리 파편을 닮은 모양으로 런던 다리의 변두리에 박혀 대도시를 가장자리까지 내려다본다. 그런 샤드에 반사된 빛이 짐승의 눈처럼 반짝이는 사진 조각이 트램폴린이 발매한 새 EP ‘The Shard Will Find Me’의 표지에 박혀 있다. 건물이 쾌청한 하늘에 덧대지거나 어쩌면 푸른색을 찢고 나온 듯한 이 모습은 다양한 샘플의 질감, 특히 아날로그 악기들의 부드러운 색채로 이뤄진 사운드와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2018년에 이민을 와 남런던의 외곽에서 시간을 보내온 차효선은 여기서 겪고 느낀 바들을 네 곡에 각각 정리해 담았는데, 표제 곡인 ‘Jealousy 31℃’는 질투의 (상대적으로 미적지근한!) 온도를 주제로 삼는다. 아지랑이가 은은하게 아른거리는 듯한 베이스 그루브가 끈끈하게 루프하며 주춧돌을 놓는다면 트롬본과 신스, 가끔 전자적인 잡음까지 섞인 다양한 소리의 조각들이 그 위로 촘촘하게 꽂혀 세워진다. 펜더 로즈 피아노에서 공수해온 특유의 둥그스름하고 반질거리는 음색이 곳곳에 끼워져 늦여름 저물녘 같은 온기를 싣고, 그 위로는 가창이 되풀이되는 리듬의 움직임에 맞춰 한 선율을 반복적으로 흥얼거리면서 지붕을 올린다. 미니멀한 공간과 자그마한 재료로도 숙련된 건축업자처럼 정교하고 밀도 높은 음향을 쌓아 올리는 설계 솜씨는 이미 트램폴린의 전작들에서도 감탄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Jealousy 31℃’와 EP가 9년 만의 컴백이라는 사실 이상으로 감격스러운 이유는 실력 있는 3인조 구성과 섬세한 프로듀싱으로 웅대하고 치밀한 장관을 들려준 ‘MARGINAL’의 금자탑 같은 구조를 훨씬 줄어든 규모에서도 충분히 내장한 듯 들리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주변인의 입장으로 세계의 주변부를 포착하는 관점 또한 전작에서 훌쩍 이어진 듯한데, 여기저기서 채집한 소리를 오밀조밀하게 콜라주하는 작법은 이 관점과 무척 어울리는 한편 ‘Melody Gold’와 같은 트램폴린의 첫 작업물과도 자연스레 연결될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음반명이 걱정하듯, 먼발치에서 우릴 노려보는 듯한 샤드가 언젠가 나를 찾아내더라도 괜찮다. 트램폴린에게는 샤드에 버금가게 “마블러스”한 건축물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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