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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초보(음악평론가)
사진 출처XGALX

‘Xtraordinary Girls’라는 뜻을 지닌 팀 XG는 전원 일본인 멤버로 이뤄지며 한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7인조 걸그룹이다. 일본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 에이벡스(AVEX) 산하에서 조직된 XGALX 프로젝트를 통해 출범해 동명의 한국 법인 레이블 소속으로, 한일 양국에서 활동 및 제작 경험이 있는 재이콥스(JAKOPS)가 대표이자 주요 프로듀서로 있다. 2022년 1월에 ‘XGALX - The Beginning’ 영상으로 시작을 알리고, ‘XG TAPE’, ‘XG MOVE’ 등 시리즈를 통해 랩과 댄스에 출중한 실력을 과시하며 이목을 끈 뒤 2022년 3월 18일에 싱글 ‘Tippy Toes’로 정식 데뷔한다. K-팝 특유의 시스템적인 기획 방식과 SF 기믹을 이용한 연출을 택하되, 한일 양국 간 교차적인 배경과 주요 퍼포먼스 언어를 영어로 설정한 점, 악곡 질감에서 다이내믹함보다는 글로벌 팝에서 유행하는 장르를 포착해 꿋꿋이 밀어붙이는 미감 등을 통해 전 세계 팬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양상이다.

XG는 신기한 팀이다. 그렇게 수식하는 이유로 멤버들의 국적, 퍼포먼스 언어, 주요 활동 범위 등 각 요소 간에 발생하는 오차, 즉 ‘정체성’에 따른 고정관념이 있다는 것을 강력히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장르 면에서도 K-팝 혹은 J-팝이라는 경계에 꾸준히 도전장을 내미는 점이 흥미롭다. 예를 들어 ‘GALZ XYPHER’ 시리즈와 같이 기존 랩 뱅어를 가져다가 멤버들의 오리지널 랩 벌스를 얹는 콘텐츠는 흔히 아이돌 팝에 상정되는 적정한 수준의 차용 그 이상으로 실력을 과시하고 존중을 담아낸다. 쉽게 말해, 이들은 랩에 ‘진심’이다. 그리고 그러한 평가는 반대로 보자면 아이돌 팝에서 행해지는 랩 퍼포먼스에 청자 측이 처음부터 어느 정도 한계를 설정한 것이 아니냐는 의표를 찌를 수도 있겠다. 그런 관점에서 신곡 ‘SOMETHING AIN’T RIGHT’의 일침은 더 재치 있다. “뭘 그리 멍청하게 구냐? (Why are you standing there playing dumb?)

‘SOMETHING AIN’T RIGHT’는 디스클로저(Disclosure)가 떠오르는 개러지 하우스 비트를 기반으로 한다. 하이햇과 스네어가 차갑게 추궁하며 다가오는 인트로를 지나 펑키한 베이스를 떨어뜨리며 시작하는 1절에서는 “너 겁먹은 거 다 알아 (I feel you creeping)”라며 상대의 거짓말이 이미 훤히 들통난 상태임을 알린다. 두 사람 간 관계의 주도권은 화자가 쥐고 있다. 이는 “누가 내 위에서 놀겠냐? (Who could be running game over me?)”라고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거나, “삼진은 무슨, 기회는 한 번이야 (I don't do three strikes, only one time)”라고 통념의 규칙 자체를 바꿔버리는, 말 그대로 ‘룰 브레이킹’ 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이 트랙 안에서 정의(正義)는 노랫말을 읊는 이들의 것이고, 상대는 그들을 감히(!) 속여 놀아나려고 하다가 들통나자 바보같이 쭈뼛대는 겁쟁이일 뿐이다. XG가 꾸준히 갱신해온 SF/판타지에서 비롯된 상상력을 이어받는 뮤직비디오는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높은 곳 중 하나일 시부야를 텅 비워 초능력을 자랑하고 데일리 잡 현장을 어지른다. “너 요즘 하는 짓 개 웃겨 (You've been acting funny lately)”라고 노래하며. 다시금 이 세계에서 ‘옳음(RIGHT)’의 기준을 쥔 게 누구인지 알고야 마는 순간이다.

이와 같이 압도적으로 내비치는 자신감은 곧 그들을 둘러싼 여러 맥락을 적극 어지럽히는 원동력을 엿볼 수 있는 단서가 되겠다. ‘나’는 존재할 따름이고, 그 존재 의의를 규정하려 하는 외부 시선에 거꾸로 도발하는 양상은 그들이 연출‧연기하는 세계 내부에 한정된 롤플레잉에 그치지 않는다. XG를 얘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키워드로는 ‘GAL(갸루)’, ‘X-팝’ 등이 있다. 전자의 경우 Y2K 패션 따위를 통해 2020년대 들어서 리바이벌되고 있는 유행으로, Y2K 당시 인터넷 보급과 함께 시공간 제약을 초월하는 미래지향적 상상력의 표현 양태를 ‘SOMETHING AIN’T RIGHT’에서 ‘텅 빈 시부야의 초능력자들’을 연출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주체적으로 자기 미감을 추구해 나가는 영 컬처 무브먼트로서 ‘나’를 기준으로 삼는다는 생각의 기반 또한 앞서 살핀 악곡 메시지와도 공유된다. 그리고 지역에 규정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들의 음악 콘텐츠를 자칭하는 ‘X-팝’의 경우는 실제 대중음악 리스너들 사이에 긴장 상태를 만들어낸다. 경계선에 위치한 존재를 어떻게든 상식의 범주 안에 규정하는 구도에 싫증을 느끼며 앞선 설명에 수긍하는 의견도 있을 테고, 그럼에도 그들이 구현하는 콘텐츠 특성을 기존 장르 K-팝이라는 틀 안에서 파악하여 그로부터 얼마나 유의미하게 이탈하는지 가늠하는 시선 또한 가치를 발굴해내는 방식 가운데 하나가 되겠다. 비평적 유효성 여부를 떠나서, 스스로가 곧 기준이 되고자 제시하는 점에서 ‘SOMETHING AIN’T RIGHT’에서 비치는 태도가 우연이 아님을 파악할 수 있다.

사실 XG가 선보이는 작업물들은 어느 정도 ‘파격’적이되, 결코 ‘파괴’적이지는 않다. XG의 강점은 바로 힙합이나 댄스(EDM)와 같은 외부 장르 문법을 순도 높게 인용‧포섭하며 글로벌 팝 미감에 다가가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첫 EP ‘NEW DNA’에 담긴 곡들을 보자. UK 드릴을 차용한 ‘X-GENE’이나 트랩 비트 위로 스웨그를 표현하는 ‘GRL GVNG’처럼 하드보일드한 질감의 힙합은 XG의 꾸준한 랩 어필을 적절하게 재생산하는데, 이들 악곡 질감은 비록 2010년대 이후로 진화된 양상에 가깝더라도 표현하는 감성에 있어서는 2000년대 즈음 힙합과 팝이 맞닿은 시점의 유산을 계승한다. ‘NEW DANCE’는 펑키한 기타 리프로 청량한 그루브를 자아내며 몸을 들썩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멋진 곡이고, ‘PUPPET SHOW’는 DnB와 퓨처 베이스를 겹치며 근래 범국가적으로 유행하는 일렉트로-팝 재질에 최적화된 모습이다. 이러한 범국가성은 이를테면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정국 ‘GOLDEN’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어 위주의 트랙들을 모아 미국 빌보드 차트에 침투한 배경에 대해 “K-팝에서 ‘K’의 색채를 소거하고자 하는 시도”로서 비평적으로 평가하는 의견을 빌리자면(물론 그런 움직임을 곧이 K-팝에서 이탈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겠지만), ‘NEW DNA’ 또한 비슷한 기준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들 간 차이점이라 한다면, 정국이 ‘마일드’한 마감을 통해 더 널리, 편히 수용될 수 있는 콘텐츠로 청자에게 다가갔다면, XG의 경우는 ‘어그레시브’하게 배경 장르의 본질을 집어삼켜 체화하는 접근 방식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K-팝은 애초에 악곡에서 각종 외부 장르/스타일 질료를 배합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인용하는 장르 요소를 최대한 선택‧집중한 채 오직 랩으로만 트랙 퍼포먼스를 채운 직전 싱글 ‘WOKE UP’은 배합 비율에 실험을 가하는 모양으로 그들의 어그레시브한 측면을 대표한다. 한편 ‘LEFT RIGHT’처럼 멜로우한 신스에 트랩 리듬을 얹는 등 지극히 유려한 배합 예시 역시도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점차 글로벌한 팝이 되어가는 얼터너티브 R&B의 흐름을 깊숙이 파악해 캐치할 때 비로소 얻을 그루브로 들렸다. 즉, 과감한 인용과 배합이 곧 XG가 그들 배경에 있는 맥락이나 그로 인해 씌인 고정관념을 뛰어넘고자 하는 방식이고, 본인(들)을 곧 기준으로 내세우는 과시를 뒷받침하는 자신감 또 그 자신감을 뒷받침하는 퍼포먼스 실력이, 어느새 청중들을 하나둘 설득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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