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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해인, 황선업
디자인MHTL
사진 출처Netflix

‘카오스’ (넷플릭스)
윤해인: 신은 인간보다 우월하며 만물을 관장하는 전지전능한 존재다. 반면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신들은 권능을 지녔지만, 사랑에 빠지거나 상처받고, 후회할 짓을 저지르는 인간미도 가졌다. 넷플릭스 드라마 ‘카오스’는 그런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이 실존하며, 그 지배를 받는 제정일치 국가 크레타가 현존한다고 가정한다. ‘카오스’의 중심에 있는 제우스는 ‘중년의 위기’ 대신 ‘불멸의 위기’를 겪는 듯 명품 브랜드 트랙탑을 입고 방정맞게 걸어다니며, 심심풀이로 세상에 번개를 내리친다. “제우스는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개자식이거든.” 프로메테우스의 묘사처럼 제우스는 독단적이며 쉽게 상처받고, 여전히 여성 편력이 심하다. 그의 아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의 선택으로 올림포스의 신이 되었지만, 어딘가 한심한 아들 포지션이다. 인간 어머니를 지녀 헤라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더 진지하고 괜찮은 일을 맡고 싶지만 아버지 제우스는 심드렁하다. 포세이돈은 요트에서 노느라 바쁘고, 헤라는 인간의 고민과 불안을 자신의 위안으로 삼는다. 올림포스 아래 혼란한 인간 세상에서 아무리 신께 기도해도, 신들은 관심도 없다. 

‘카오스’는 이런 불완전한 신들이 지배하는 크레타의 ‘필멸자’들이 한 예언에 의해 얽히며, 신의 권력에 균열을 내는 서사가 중심에 놓인다. 서로 다른 에피소드가 병치되다가 하나의 줄기로 모일 때의 흥미진진함은 드라마의 분명한 매력이다. 여기다 사랑꾼 록스타가 된 오르페우스, 페스코 베지테리안 포세이돈, 구명조끼를 입고 유람선으로 건너는 스틱스 강까지, ‘카오스’는 고전 신화를 현대에 접목하며 수반되는 재미를 살려 기발한 볼거리도 제공한다. 하지만 그 시각적 재미를 넘어, 드라마는 옛이야기에 새로운 시대상을 어떻게 투영할지 제안하기에 이른다. 과연, 에우리디케는 자신을 되살리고자 지하 세계에 찾아온 오르페우스 덕분에 행복했을까? ‘카오스’ 속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는 잘 알려진 비극을 반복하지만, 에우리디케는 오르페우스의 ‘아내’로만 남길 거부하며 저승에서 새로운 자아를 찾는 변화를 맞는다. ‘카오스’는 에우리디케처럼 아리아드네, 카이네우스, 페르세포네 같은 존재를 다시 들여다보고, 각자의 서사를 확장시켜 입체적인 캐릭터로 재정립하면서, 잘 알려진 신화를 새로 써 나간다. ‘카오스’가 2024년에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룰 수 있는 건, 왜 사람들이 인간적인 그리스 로마의 신들을 유달리 좋아하는지에 대한 힌트이기도 하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제일 재밌으니까. 고대부터 전승된 드라마가 지닌 힘이다.

‘WiND’ - 빌리롬(Billyrrom) 
황선업(대중음악 평론가): 서치모스의 ‘Stay Tune’이 일본 음악 전체의 지형도를 바꿔버린 지도 어느덧 8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들은 블랙뮤직과 메인스트림 사이에 있던 둑을 무너뜨렸고, 신예 밴드들은 그 흐름을 타고 직선적인 기타 록 대신 크로스오버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크로이, 오츄니즘, 칠즈팟, 요나 요나 위켄더스, 요나오 등이 그 예시일 터. 각자의 공식으로 구축한 정체성을 무기로, ‘시티 팝 리바이벌’이 열어젖힌 대해적 시대에서 패권을 거머쥐기 위해 격전을 벌여오고 있는 것이 바로 작금의 상황인 셈이다.
그 와중에 선보인 6인조 밴드의 첫 정규작은, 이 아수라장 속에서 거리낌 없이 자신들을 승리의 깃발 근처로 데려다주는 특급열차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블랙뮤직의 그루브와 록의 디스토션의 공존, 그 교집합을 가히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까. 특히 6분 50여 초에 이르는 ‘SERENADE for Brahma’에서의 성취는 놀랍다. 비장미로 무장한 블루스 록 무드의 초반을 지나 멜로우한 보컬의 등장을 기점으로 시티 팝의 무드로 전환, 얼마간의 정적을 거쳐 처절한 기타 솔로의 단말마가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며 마무리되는 이 곡은, 어떤 그룹도 쉽사리 보여주지 못했던 강한 임팩트와 무한한 가능성의 접점을 현실화한다.
앰비언트와 가스펠의 요소를 한 곡에 넣고 흔든 이색적인 칵테일 ‘Soulbloom’, 미니멀하게 시작해 끝 간 데 없이 덩치를 키워 소리의 난장을 만들어내는 ‘Sun shower’까지. ‘Stay Tune’이 보여주었던 일본 블랙뮤직의 미래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한 차원 더 앞의 미래에 던져놓는 듯한 기개와 음악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렇게 스스로 일으킨 바람은, 빌리롬이라는 신예를 새로운 록스타로 치켜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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