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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문(뮤지컬 평론가)
사진 출처팜트리 아일랜드

2024년 가장 영향력 있는 여자 뮤지컬 배우로 공인된 정선아. 그는 그 자체로 브랜드 파워가 있다. 혜성, 천재, 장인, 교과서, 디바, 슈퍼스타, 비욘세, 롤 모델, 워너비, 2세대 배우. 정선아를 수식하는 위 별칭들은 그가 뮤지컬 배우로 인정받는 재능과 위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탁월한 무대 매너’ 역시 단골 수식어이다. 인기스타상, 여배우, 여주조연상, 여우주연상 등 차곡히 쌓인 수상 이력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 뮤지컬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 배우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대중과 가까워지는 다양한 활동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가 뮤지컬 배우로 살아온 시간은 한국 뮤지컬의 역사와도 연결된다. 뮤지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에 여러 제작사와 대형 라이선스, 창작물을 함께했고, 2002년부터 현재까지(2020년 제외) 매해 무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 글은 정선아의 출연작과 캐릭터를 통해 배우로의 매력과 특성 및 한국 뮤지컬의 변화 및 의미도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데뷔 이후의 탐색기
정선아의 초기 활동은 2002년 ‘렌트’의 미미로 데뷔한 이후 ‘사운드 오브 뮤직’의 리즐, ‘유린타운’ 리틀 샐리, ‘맘마미아’ 앙상블과 소피 커버, ‘노틀담의 꼽추’의 에스메랄다, ‘갬블러’ 쇼걸 등 신시뮤지컬컴퍼니와 함께한 시기와 설앤컴퍼니, OD, 윤스칼라, 장강, SM ART 컴퍼니 등 여러 기획사와 자신의 색채를 탐색한 시기로 나뉜다. 
정선아는 연극적 전통이 있던 제작사 라이선스 초연을 경험하며 기본기를 착실히 다진 뒤 OSMU, 아이돌 제작사와 뮤지컬을 만들며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해 나갔다. 창작 뮤지컬인 ‘겨울연가’ 오채린, ‘해어화’ 소연 외에 브로드웨이 라이선스인 ‘텔미 온 어 선데이’ 데니스, ‘나인’ 칼라, ‘제너두’ 키라, ‘지킬 앤 하이드’ 루시를 거쳐 리메이크된 ‘드림걸즈’ 디나 존스, 비엔나 뮤지컬 ‘모차르트!’의 콘스탄체 베버 등 그는 당당하고 섹시한 젊은 여성 이미지를 소화했고, 원 캐스트로 서는 성실함을 보여주었다. 
뮤지컬은 특별한 능력이 있지만 결핍을 겪는 이들의 면모가 타 장르에 비해 강조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직업, 인종, 취향 등이 다양한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여성이 맡는 역할은 타 장르와 마찬가지로 사랑을 최우선으로 하는 조력자인 경우가 다수였다. 정선아는 초기에 에이즈 환자, 마을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소녀 해설자 등을 거쳐 방송국 안무가, 일패 기생, 영화배우, 뮤즈, 쇼걸, 가수, 모차르트의 아내를 맡았다. 화려한 외모에 전문직이지만 사랑에 흔들리는 면모만 보면 당대의 한계가 있는 캐릭터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정선아는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행동하는 당당함과 더불어 악역일지라도 미워할 수 없게 하는 연기로 시선을 모았다. 
19세. 그는 첫 오디션에서 주연을 따냈지만, 이후 연기와 노래, 무대 장악력 등 배우의 기본을 차근히 쌓아나가며 누구든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배우가 되었다. 브로드웨이 쇼, 모노드라마, 오스트리아 뮤지컬 등등 어떤 장르와 역할이든 그가 맡으면 매력적으로 펼쳐졌다. 그의 초기 활동 안에는 정식 라이선스 계약과 외국 제작진, 뮤지컬 제작사의 성장, 한국적 뮤지컬 혹은 대형 창작 실험 등 한국 뮤지컬 시장의 격동적인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다. 새로운 시도를 할 경우 반드시 안정적인 요소가 밑받침되어야 함을 미루어 본다면, 정선아는 당대 배우로 제 몫을 해내고 있었음을 증빙하고 있음이 이렇게 확인된다.

매력적인 캐릭터
정선아의 캐릭터가 변화된 계기는 2010년 ‘아이다’의 암네리스이다. 초연 오디션 때 아이다로 도전했던 그는 제작진의 제안을 받아들여 배역을 바꿔 재도전했고 화려한 주목을 받게 된다. ‘아이다’ 넘버 ‘My Strongest Suit’의 경우, 포인트를 적절하게 살려주되 정확한 발음과 표정으로 노래하여 생기발랄하면서도 본분을 놓치지 않는 빛나는 면모를 보여주면서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성과 및 화제성과 반복 재생의 좋은 사례가 되었다.
‘아가씨와 건달들’ 사라 브라운, ‘에비타’ 에바 페론, ‘광화문연가’ 여주, ‘쌍화별곡’ 요석공주,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마리아 등 전도사, 영부인, 공주, 직원 등 라이선스, 창작물을 가리지 않고 극을 이끌면서 믿고 보는 배우로 확실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의 인생 캐릭터는 단연 2013년 ‘위키드’ 글린다를 꼽을 수 있다. ‘위키드’는 그가 오래전부터 꿈꿔온 작품이었는데, 엘파바가 아닌 글린다로 무대에 섰으며, 쾌활하면서도 섬세한 살아 있는 연기 덕에 오리지널 캐스트가 구현해내고자 했던 성향들을 살려냈다는 해외 연출가의 극찬을 받았다. 그의 글린다는 미워할 수 없는 나름의 이유와 여성의 느슨한 연대를 잘 보여줘 이후 한국에서 글린다를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킹키부츠’ 로렌은 그간 캐릭터 중 가장 많이 망가지고 비중도 적지만 신스틸러로 뮤지컬의 완급을 조절하는 역할이다. 그는 에너지를 어떻게 쏟아내서 관객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지 즐겁게 터득하며 능력을 더 추가하게 된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정선아는 ‘드라큘라’ 미나, ‘데스노트’ 미사, ‘보디가드’ 레이첼, ‘나폴레옹’ 조세핀, ‘안나 카레리나’ 안나, ‘웃는 남자’의 조시아나 등 비련의 여주인공, 가수, 역사적 인물, 악역에 이르기까지 화제와 기대를 모으는 작품들을 했다. 이 시기는 씨제스컬쳐, CJ 뮤지컬, 쇼미디어, 마스트엔터테인먼트, EMK뮤지컬이 미국, 일본, 프랑스, 러시아 등에서 라이선스와 소재를 들여오면서 절치부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정선아는 그 새로운 시도에 동참하며 ‘국내 최다 글린다’, ‘한국의 비욘세’처럼 관객의 사랑과 흥행의 줄다리기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정선아의 프로필을 보면 1년에 2~3개 작품 정도 타 작품과 겹치는 출연 없이 무대에 섰으며, 새 작품과 역할에 도전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무대에 오른 지 10년 정도이면 어느 정도 연륜이 쌓였건만 성실히 자기 발전을 위해 경험을 쌓고 있었다. ‘아이다’, ‘위키드’, ‘드라큘라’ 재연 참여의 경우, 초반에 캐릭터를 구축하여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을 발굴해낸 자신감과 자신에게 어울리는 캐릭터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 행보라 할 수 있다. 기존 작품도 이전에 아쉬웠던 부분들을 보완해서 섬세함을 소리로 전한다는 평가까지 듣게 되었다. 뮤지컬 장르 특성상 복잡한 감정을 노래로 전달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러 소리를 내는 능력치가 한층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정선아가 어떤 작품의 캐릭터를 하더라도 매력적인 이유는 뮤지컬 배우의 기본인 넘버 소화력과 폭넓은 연기력 덕분이었다. 그러면서도 작품에서 배우가 이끌어가는 책임감을 무겁게 인지하고 있었다. 능력, 경력 모두 정상에 올랐지만, 흥행을 경험하며 배우의 기본에 대해 더더욱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정선아는 무대를 좋아해서 계속 서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으로 실천했기에 여전히 무대에 설 수 있었다.

새로운 도전들
정선아는 한 작품을 연기하고 잘 비워낸 뒤 새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나름의 루틴을 가지고 있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디즈니 뮤지컬 영화 ‘메리 포핀스 리턴즈’ 더빙 등 노래와 연기 사이의 섬세함도 여전히 잘 살려내고 있었다. 그러다 2019년 유학을 시작으로 그는 결혼, 출산이란 개인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이후 그는 사실적인 연기가 필요한 ‘이프/덴’, ‘멤피스’에 출연하며 섬세한 드라마 연기로도 각광받았고, 출산 이후 무대에 오르기 위해 자기관리를 끊임없이 하면서도 엄마가 되면서 맞이하는 또 다른 감정들을 작품 안에 녹여내는 그는 완벽한 프로였다. 그의 노력은 한국 뮤지컬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보답받았다. 2024년 정선아는 ‘시카고’의 벨마로 무대에 서고 있다. 노래와 퍼포먼스를 노련하게 진행하는 원숙미까지 유감없이 발휘하는 중이다. 결혼과 출산 이후 보지 못하게 된 배우들이 많다. 정선아가 흔들림 없이 무대 위에 서 있는 것은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그 노력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20년이면 적지 않은 시간이다. 1만 시간의 법칙처럼 한 우물만 팠을 경우, 정체성이 확실해지고, 자신만의 방향성도 나름 갖춰지게 된다. 정선아에게 2021년 ‘복면가왕’은 분명 도전이었다. 얼굴(경력)을 가리고 넘버 소화력으로만 승부하겠다는 것이니 말이다. 뮤지컬과 가요는 창법, 음악 편성, 곡 소화력 등 장르적으로 차이가 있다. 게다가 가수, 작곡가, 싱어송라이터 등 해당 분야 외에도 MC, 개그맨 등 다양한 패널에게 바로 피드백을 받는 것도 부담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기염소’로 무대에 선 그는 발음, 감정, 템포, 애드리브 등 극찬을 받으며 3연속 가왕이 되었고, 음색과 고음 처리로 화제가 되었다. 그는 가요 보컬 수업을 받으며 자신의 색을 넓히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배우의 인간적인 면모가 무대 위 캐릭터 몰입에 방해될까 주저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그는 ‘복면가왕’을 계기로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있다. 그의 밝은 에너지는 뮤지컬에서 방송, 콘서트로 확대되는 중이다. 그는 노래로 설득하고, 성실하게 무대에 서 있기에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정선아의 시도들은 더 많은 곳에서 그를 볼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한다. 

매 순간 프로였던 정선아
2002년 한국에서 뮤지컬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체코, 비엔나, 러시아 등 전 세계적인 작품들이 다루어졌다. 앞서 언급했듯 정선아는 대형 뮤지컬의 선두에서 그 변화의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그는 화려한 이미지에 안정적인 고음과 유머러스함까지 갖춰서 공연이 안정적으로 올라가는 데 기여했다. 뮤지컬 배우는 넘버로 연기를 전달해야 한다. 정선아가 여전히 대형 뮤지컬에서 주인공으로 서 있는 이유는 이 기본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정선아는 “티켓 값이 아깝지 않은 무대”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무대에서 빛날 수 있도록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다. 그러기에 그는 한국 뮤지컬 성장의 한 축이 되었다.
   
정선아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A New Life’처럼 희망이 담긴 노래를 좋아한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면 다른 이들에게도 그 애정과 감동을 전해줄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시간의 반절 이상을 무대 위에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누군가 즐겁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귀한 것이다. 그는 대중매체, 갈라 콘서트 등 더 많은 대중들에게 스며들고 있다. 그러니 정선아의 무대를 오래 봤으면 좋겠다는 소원은 당분간 무리 없이 실행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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