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혼자 산다’ 585회 (MBC)
김리은: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방탄소년단으로서의 삶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상할 수는 없더라도 추측할 수는 있다. 전 세계적인 스타로서의 끝없는 활동, 군 입대와 전역, LA에서의 음악 작업까지, 제이홉으로서의 삶은 띄어쓰기 없이 써내리는 줄글과도 같았으리라고 말이다. 지난 3월 2일에 방송된 MBC ‘나 혼자 산다’는 제이홉이 잠깐의 쉼표 같은 휴일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담았다. 눈뜨자마자 건강을 위해 사과와 운동을 챙기고, 외출을 위해 운전하는 중 음악을 흥얼거리며 흥을 즐기는 제이홉의 모습은 마치 여유로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다음 문장을 이어 쓰기 위한 고민들은 계속된다. 누군가에게는 흔할 경험일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도, 익숙하지 않은 영어로 햄버거를 주문하고 고기를 구입하는 것도 제이홉에게는 도전이었다. 먹어보고 싶었던 햄버거를 맛보며 공원에서 여유를 즐기는 순간조차 음악 작업을 위한 영감을 고민하고, 고기를 구입하기 전 필요한 영어 표현들을 살펴보며 연습까지 하는 제이홉의 모습은 그가 언급한 “지금 이 순간도 영감이에요.”라는 말처럼 끝없이 새로움을 고민하는 과정이었다. LA에서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멋진 공간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성공한 스타가 되었어도, 그다음을 위해서는 새로운 무언가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 유명 복합 쇼핑몰에서 팬들이 사진 촬영이나 사인을 요청할 만큼 성공했어도 더 원활한 소통을 위해 외국어를 연습한다. 요컨대 제이홉의 ‘나 혼자 산다’ 출연에 담긴 건 슈퍼스타로서의 화려함이라기보다, 그 어떤 삶이라 할지라도 다음 문장을 위한 고민은 계속된다는 보편적인 진실이 아니었을까. 쉼표 같은 순간의 일상조차 대중에게 공개하는 와중에도, 계속 더 좋은 음악을 위한 “영감”을 끝없이 고민하는 제이홉의 삶처럼 말이다.

‘컴플리트 언노운’
배동미(‘씨네21’ 기자): 정상에 오른 무명 가수에 관한 영화 한 편을 상상해보자. 많은 어려움을 겪고 결국 성공하는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흐름도 가능하다. 대중적 인기를 얻은 후 겪는 혼란스러움에 관한 이야기. 전설적인 뮤지션 밥 딜런을 다룬 전기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은 유명해진 후 그가 경험하는 사건과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 초반 주인공 밥(티모시 샬라메)은 기타 하나로 한두 명 앞에서 노래할 때부터 이미 타고난 뮤지션이었다. 그의 음악성에 걸맞게 이내 모두의 인정을 받지만, 밥은 도리어 혼란에 빠진다. 어떤 때에는 대중 한 사람, 한 사람의 상상에 맞춰 여러 모습으로 분열되는 것 같고 또 어떤 때는 전통적인 포크의 계승자로 남길 요구받는다.
흥미롭게도 이 분열의 감각은 영화의 배경인 1960년대 미국을 사는 이들이 느끼는 심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했고 1960년대에 이르자 여성과 유색인종 인권 운동, 반전 운동 등이 물밀듯이 터져 나왔다. 미국인 각각이 생각하는 나라는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부 문화를 새롭게 세우려는 그때 미국은 역설적으로 당장이라도 전쟁이 벌어질 듯 당시 소비에트 연방과 군비경쟁을 벌였다. ‘컴플리트 언노운’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유일한 음악가 밥 딜런의 천재성과 그가 겪은 유명세 그리고 고독을 충실히 재현하면서도 이처럼 복잡한 1960년대 미국의 분위기를 긴밀하게 엮어낸다. 영화를 보면서 밥 딜런의 명곡이 담긴 음악 장면을 원 없이 감상할 수 있는 건 덤이다.

‘Love Me’ - 키라라(KIRARA)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활동 10주년을 기념하고 마침내 셀프 타이틀로 발매된 키라라의 다섯 번째 정규 음반 ‘키라라’는 그의 현재를 “산만한 사람”의 마음으로 재구성한다. 이를 위해 ‘4’에서 쓰인 방법론을 확장한다. 경력과 장르를 망라한 협업자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전면적으로 나오며 부산스러운 머릿속을 헤집는다. 선우정아는 스캣을 흥얼거리며, 언텔은 추임새를 넣어대며, 장명선은 채소들을 읊으며, 스월비는 속사포를 쏟아내며 음반의 1부를 채우고, 이들의 음성은 일종의 아바타처럼 키라라의 사운드에 맞춤형으로 바꿔 쓰인다. 이러한 곡들은 키라라 특유의 분명하고 딴딴한 몸체의 사운드를 각 협업자의 음색과 대비시키면서 ‘숫자’와 ‘여야’ 등에서도 연마되었던 직설적인 유머를 구사한다. 그러나 이 코미디 기술은 산만한 사람의 마음이 붕 뜨는 2부에서 떠나버리고 싶은 기분이 도리어 심화하도록 이용된다. 예람이 쓸쓸하고 담담하게 부르면서 시작한 이 도피의 심정은 할로우 잰의 임환택이 격하게 우짖다가 차분히 낭독하는 시구로 이어진다. 그러다 이 도피는 급기야 리버브를 타고 울려 퍼지는 한정인의 목소리와 만나 우주를 부유하며, 4집의 ‘공천’-‘규탄’-‘폭발’처럼 점멸하는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여기서 ‘키라라’만의 자전적인 특징이 전작들과 구별되는 이유는 이전 정규 음반들 전체가 한 갈래의 감정으로 색칠됐던 것에 비해, 무심함과 신남이나 슬픔, 분노 등의 수많은 감정이 이번에는 강렬한 대비 속에서 복합적으로 스쳐 지나가기 때문일 테다.
음반의 마지막 네 곡은 무엇이 결말이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만한 장면들을 각각 들려준다. 도망에 대해 부풀었던 망상이 위태롭고 허무하게 ‘격추’되거나,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마음들이 차곡차곡 ‘조각모음’으로 쌓아 올려지거나, 성격 유형이 ‘FP’로 끝나는 이들처럼 온갖 정서가 바쁘게 오락가락하기를 반복하거나.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Love Me’를 꼽아보고 싶다. 펑크(funk) 록 밴드 불독맨션의 명곡 ‘Destiny’를 샘플한 트랙은 오히려 키라라의 리믹스 시리즈에 어울릴 것처럼 원곡의 흥겨움을 풍성한 프렌치 하우스풍으로 옮겨온다. 이한철의 목소리는 음반에서 유일무이하게 샘플로 튀어나와 “럽 미!”라 외치며, 샘플된 관현악기 조각들이 파티를 벌이듯 움찔거리며 춤을 춘다. 여기에 언제나처럼 서정에 충실한 리프와 멜로디를 덧붙이는 키라라의 능숙한 재조립 솜씨는 원곡보다도 행복감이 넘쳐나는 “그냥, 댄스음악”을 만들어낸다. 그저 몸을 신나게 놀릴 수 있을 것만 같은 바로 이런 순간들에, ‘이 앨범의 주제’이기도 한 “음악을 만드는 즐거움”이 가장 순도 높게 담겨 있지 않을까. 그 즐거움이야말로 바로 지금과 다음 10년 그리고 그 너머의 키라라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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