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벌써 15회째를 맞은 국립극장의 한국 전통음악 축제인 ‘여우락 페스티벌’에 송소희가 올랐다. ‘공중무용: 화간접무(花間蝶舞)’라는 제목을 단 공연에는 봄에 발매된 송소희의 세 번째 EP인 ‘공중무용(2024)’이 중심에 있었지만, 무대에는 그의 첫 자작곡부터 미발표 곡까지 지난 몇 해간의 싱어송라이팅 활동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그간 그가 경기민요를 부르고 연구해온 20년 치의 뿌리와 줄기에서 뻗기 시작한 새로운 가지를 들려주는 이러한 구성은 연말에 열린 첫 단독 공연인 ‘풍류(風流)’에서도 이어졌다. 이미 방송에서 들려줬던 커버 곡들이나 게스트로 참여한 서도밴드의 순서 등이 추가되었으나, ‘풍류’에서도 기본적인 세트리스트는 유지되었다. 그럼에도 두 공연 간에 큰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라이브 현장이 직접 촬영되어 그의 유튜브 공식 채널에 공개되었다는 점에 있겠다. 그를 통해 지난 한두 달 동안 송소희의 ‘Not a Dream’이 아직 ‘미발매 자작곡’인 상태에서도 수많은 청자와 만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2월 1일 기준 약 400만 회를 기록했던 ‘Not a Dream (미발매 자작곡)’ 영상의 조회수는 현 시점(2월 22일 기준)에는 무려 약 870만 회를 넘어서며 두 배 이상 뛰었는데, 이러한 인기가 국악인 송소희의 “파격”적인 “변신” 덕이라는 의견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의 춤처럼 다양한 음악 영역을 돌아다니는 송소희의 ‘화간접무’는 그가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로 소속사를 옮기며 대중음악 창작에 전념하기 시작한 2022년 이전부터 꾸준했다. 경기 통속 민요인 ‘매화타령’이 송소희의 첫 두 EP인 ‘NEW SONG (2015)’과 ‘모던민요(2018)’에 다른 편곡으로 실린 것은 이에 대한 하나의 단서다. 여기에서 하나의 음을 앞뒤에서 꾸며주는 국악 기법인 시김새를 면밀하게 조절하며 노래를 부르는 송소희의 솜씨와 더불어, 편곡에서도 전통 음악과 해외 음악을 교차하는 몇 가지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국악기와 양악기의 병존이 두드러지는 2015년의 ‘매화향기 (매화타령)’가 느린 빠르기를 바탕으로 굿거리장단과 블루스 리듬을 섞으려는 한편, 에스닉 퓨전 밴드 두 번째 달과 협업한 2018년의 ‘매화타령’은 아일랜드와 같은 타 문화의 민속음악을 반주 삼아 맑고 고운 소리를 주고받는다. 국악 퓨전 혹은 크로스오버라 하면 가장 직관적으로 떠오를, ‘한국적인’ 특징과 ‘한국적이지 않은’ 특징 간의 결합을 택한 셈이다.
‘Not a Dream’을 비롯한 송소희의 최근 자작곡들이 이들 EP나 ‘기진맥진 프로젝트’와 같은 기존 크로스오버 작업과 분명하게 구별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악기들로 서양의 기악을 연주하거나 대중음악 반주로 고전 판소리 무대를 펼치는 등 귀로 청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눈으로도 분명히 감지할 수도 있는 국악과 양악 사이의 구분이 명시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크로스오버에서 양편의 경계를 어디까지 그어서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섞을지에 관한 힘겨루기가 이뤄지는 것과 달리, 송소희가 여러 인터뷰에서 비유하듯 그의 ‘부캐’가 짓고 부르는 대중음악에서 ‘본캐’가 능통한 경기민요가 직접 활용되거나 지시되는 경우는 드물다. 두 영역 사이의 경계를 흐리며 서로의 공유지를 넓힌다기보다는, 오히려 둘 사이의 경계를 확실히 둬서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넘어가 보는 셈이다. 즉 송소희의 자작곡들은 국악-양악 간의 혼재보다는 분할을 바탕으로 성립한다. 새로운 세계를 향한 그의 본격적인 탐험은 경기민요에서 대중음악으로 또 ‘본캐’에서 ‘부캐’로의 경계를 넘어가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KBS 2TV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무대에서도 들려줬던 것처럼, 이 경계를 통과하는 송소희의 목소리는 간소한 장구 반주에 맞춰 능숙하게 꺾이고 떨리는 ‘몽금포타령’에서 벅차오르는 밴드 연주를 따라 여유롭게 흥얼거리는 ‘구름곶 여행’으로 순조롭게 이행하며 “위계 없이 지탱되는” “두 세계를 가로지른”다.

송소희가 가로질러 온 이곳은, 그의 인터뷰 속 발언을 다시 빌려오자면 오랜 세월에 걸쳐 갖춰진 “정답을 향해 가는 장르”인 전통음악보다는 다양하게 답안을 제시할 수 있는 듯 보인다. 그런 만큼 이 세계는 범람하는 정보가 어지럽게 빙글거리는 만화경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한 혼란을 담은 2023년의 두 싱글은 송소희의 이러한 감흥을 알맞게 전달할 만한 대중음악 장르들을 ‘부캐’에게 입힐 여러 의상처럼 활용한다. ‘Infodemics (with 이일우 from 잠비나이)’는 록밴드 잠비나이의 이일우가 국악기 연주자가 아닌 기타리스트로서 밴드 멤버인 최재혁·유병구와의 강렬한 연주로 휘몰아치는 “말과 글의 홍수”를, ‘세상은 요지경’은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와 악동뮤지션의 ‘낙하’ 등을 작곡한 K-팝 프로듀서 밀레니엄(MILLENNIUM)이 제공하는 디스코풍의 댄스 곡을 통해 아수라장처럼 돌고 도는 세상만사를 표현한다. 송소희는 이 한복판에서 소리 전반을 이끈다. 키잡이의 역할을 맡은 그의 목소리는 세차게 들이닥치거나 통통 튕겨 다니는 사운드에 맞춰 경기민요에서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단단하게 힘을 준 후렴이 코러스와 함께 장대한 공간감을 짙게 만들어내는 포스트-록 연주를 뚫고 나가는 ‘Infodemics (with 이일우 from 잠비나이)’의 후반부나 동명의 흥겨운 트로트 곡에서 신신애가 부리는 현란한 기예를 인지하듯 음들의 끄트머리를 꺾으며 장식하는 ‘세상은 요지경’처럼 말이다.
각 곡의 사운드에 맞춤형으로 목소리를 조정하는 송소희의 놀라운 발성은 ‘공중무용’에서 자연이라는 주제와 자기성찰적으로 맞물리며 더욱 폭넓게 펼쳐진다. 그가 국악인보다 대중음악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중점을 두고 발매하는 첫 EP의 여정에 어울리는 배경을 만들어준 이는 노르웨이의 팝 가수 오로라(AURORA)와 시그리드(Sigrid) 등의 작곡가·프로듀서로도 활동한 오드 마틴(Odd Martin)이다. 그 덕에 이번에는 이국적인 멜로디의 일렉트로 팝이 신통한 분위기를 안개처럼 깔아둔다. 곱고 청아한 음색이 특징적인 경기민요의 창법은 신비로움을 강조하는 오드 마틴의 사운드에 특히나 어울리게 활용되는데, 여기서 송소희는 목소리의 형태를 한 곡 안에서도 다채로이 바꾸며 그에 따라 고양감을 차차 몰아오는 전개를 들려준다. 이를테면 ‘주야곡(晝野曲)’의 후렴구가 등장할 때마다 “에헤이야”가 점차 뚜렷해지거나, 구음이 무척 인상적으로 뻗어나가는 ‘공중무용’의 후반부처럼 말이다. 고음역에서 하늘거리는 “진한 바다를 거슬러”의 목소리는 대지 위를 몽환적으로 떠다니는 느낌을 강화하고, 광활한 숲을 질주하는 박진감을 선사하는 ‘사슴신’에서는 목소리가 구절마다 변화무쌍하게 움직인다. 이렇게 ‘공중무용’은 송소희가 능수능란한 둔갑술을 부리는 음반이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로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해법이 단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몸소 들려준다.

송소희가 경기민요를 바탕으로 대중음악에서의 개성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청자들에게 친숙한 팝의 낯익은 특성들은 문득문득 묻어나오는 국악적인 요소들을 통해 낯설어진다. ‘Not a Dream’이 청자들에게 긍정적인 충격으로 다가온 이유를 또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겠다. ‘Not a Dream’은 우선 ‘공중무용’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고조되는 진행을 연장하는 한편, 특유의 이색적인 음색으로 유명한 아일랜드 음악가인 돌로레스 오리어던(Dolores O‘ Riordan)이나 엔야(Enya)가 떠오른다는 평들처럼 가창의 기교와 장식에 많은 공을 들인다. 이때 곡이 개성을 얻는 이유는 이러한 대중음악이나 서구 민속음악의 특성이 전통 음악적인 기술을 활용하는 송소희의 해석과 절묘하게 맞물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예능에서 본캐와 부캐가 관련 없는 척하더라도 결국 두 캐릭터가 하나의 코미디언을 통해 연기되듯이, 아무리 국악과 양악 사이의 경계를 분할하려 하더라도 결국에는 송소희라는 한 명의 음악가에게서 본캐의 실력과 부캐의 개성은 하나의 가창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곱고 청아한 음색이 특징적인 경기민요의 스타일은 ‘Not a Dream’의 청명하고 벅차오르는 분위기와 한껏 어울리며, 길게 늘인 음절에서 시김새를 통해 소리의 진행을 이채롭게 꾸며주는 송소희의 표현력은 한껏 빛난다. 후련한 기분을 잔뜩 안겨주는 후렴구에서 이러한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는데, “마음을”과 “놓아” 또 “이곳에서”와 “날 불러” 사이의 격한 변화를 눈치챌 새도 없이 매끄럽게 방향을 바꾸는 흐름은 청자를 송소희의 감정적 여정으로 인도한다. 이러한 장관은 그가 개운하게 부르듯이 “그래, 내가 바란 거”일지도 모르고, 이 시원하고 개운한 느낌이야말로 곧 그토록 많은 청자가 ‘Not A Dream’과 공명하게 되는 감흥이다.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길을 걸어가는 것부터 다른 세계를 자신의 방식으로 물들이는 것까지의 해방감.

일생 대부분을 보내왔던 경기민요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구름곶 머리에 종소리 나더니 꿈을 가로질러” 시작했던 송소희의 여정은 그동안 망망한 대해를 거치고 어두운 물결의 진한 바다를 거슬러, ‘Not a Dream’에서는 어느새 “구름곶 너머”까지 도달했다.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주어진 날개를 펄럭이며 자유롭게 날아가기 위해, 송소희는 ‘구름곶 여행’의 첫발을 뗄 때부터 이것이 절대로 “꿈의 여행이 아냐”라고 굳게 다짐했다. 그가 꿈꾸었던 경계 너머가 정말로 꿈이 아니라는 것을 ‘Not a Dream’을 반기는 시청자들이 증명해줬다면, ‘Not a Dream’은 이곳이 어떤 풍경일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 송소희가 제시하는 하나의 대답일 테다. 2025년 상반기를 목표로 작업 중인 곡이 마침내 발매된다면, 그의 여행은 이제 저 너머로의 다음 행로를 향한 발걸음과 헤엄 그리고 날갯짓을 이어갈 것이다. 수많은 음악가가 곳곳에서 다뤄온 경계를, 여태껏 꿈인 줄로만 알았던 방식으로 조금씩 바꿔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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