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치 공기처럼 존재하며, 들을 때마다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이 있다. 그런 음악은 시간이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는다. 맥 밀러(Mac Miller)의 음악이 바로 그렇다. 여러 장르와 무드가 충돌하고 화합하는 오묘한 세계. 힙합에 기반을 두었지만, 재즈, 네오소울, 얼터너티브팝, 사이키델릭 음악까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맥 밀러는 이를 통해 삶을 이야기했고, 많은 이가 미처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대변했다. 2018년 9월 7일 밀러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작품은 여전히 감정의 층위 속을 부유하고 있다.
2010년대 초반 믹스테이프 ‘K.I.D.S.(2010)’와 정규 데뷔작 ‘Blue Slide Park(2011)’를 연이어 내놓았을 때부터 밀러의 재능은 비범했다. 그는 단숨에 스타가 되었으나 그 자리에 머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더 깊이 있는 음악을 원했고, 더 새로운 사운드를 찾아 떠났다. 그만큼 맥 밀러의 음악적 여정은 끊임없는 변화와 실험의 연속이었다. ‘Watching Movies with the Sound Off(2013)’에서는 한층 더 성숙해진 사운드와 깊은 내면을 탐구했으며, 메이저 레이블 데뷔작 ‘GO:OD AM(2015)’에서는 보다 세련된 프로덕션과 다양한 스타일의 곡을 선보였다. 밀러가 네오소울과 재즈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건 ‘The Divine Feminine(2016)’부터다. 그가 음악적 전환점을 맞이한 시기라 할 만하다. 대표적으로 앤더슨 팩(Anderson .Paak)이 피처링한 ‘Dang!’ 같은 곡에서 새로운 방향성을 엿볼 수 있었다.

2018년에 발표한 ‘Swimming’에서 이러한 시도는 더욱 확장되고 견고해진다. 보드라운 재즈적 요소와 특유의 몽환적인 멜로디가 도드라진 가운데 그가 겪은 내면의 갈등과 치유의 과정이 담겨서 많은 이를 뭉클하게 만든 작품이다. 특히 수록 곡 중 ‘Self Care’가 깊은 여운을 남겼다. 밀러는 이 곡을 통해 스스로를 돌보려는 몸부림 속에서도 세상과 자신을 단절하려는 모순된 감정을 한 편의 시처럼 담아냈다. 결국 구원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비트가 전환되고 곡이 더욱 흐릿한 안개 속으로 침잠하는 가운데 밀러는 망각을 선택한다. 우울, 약물 문제, 미디어의 관심 등으로부터 그가 찾은 자기 보호 방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밀러의 커리어에서 보기 드물게 희망적인 태도였다. 하지만 이 앨범을 발표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그는 겨우 2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촉망받던 젊은 랩 스타의 죽음은 음악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전 세계 많은 팬이 음악을 매개 삼아 그를 추억하고 애도했다. 그러는 사이 미완성으로 남았던 사후 앨범 ‘Circles(2020)’가 발표된다. 콘셉트상 ‘Swimming’과의 동반 앨범으로 기획되었다. 힙합, 펑크(Funk), 로파이(lo-fi), 인디 포크, 이모 랩, 소울 등의 장르를 섬세하게 녹인 프로덕션을 배경 삼아 밀러는 불완전한 채로 흘러가는 삶을 받아들이고 상처를 어루만지며, 결국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이야기했다. 그가 여기 없었기에 더욱 쓸쓸하게 다가왔던 작품이다.
그리고 2025년 1월 17일, 그의 두 번째 사후 앨범 ‘Balloonerism’을 마주했다. 첫 번째 사후 앨범인 ‘Circles’ 이후 5년 만이자 밀러의 33번째 생일이 되기 이틀 전이었다. 이 앨범이 녹음된 건 2014년이다. 밀러의 실험 정신이 절정을 향해 가던 믹스테이프 ‘Faces’와 같은 시기에 작업한 곡이 담겼다. 그러나 ‘Faces’와 달리 정식 발매되지 못했다. 온라인에서 비공식 버전만 떠돌아다닐 뿐이었다. 이에 맥 밀러의 가족이 나섰다. 그들은 ‘Balloonerism’이 밀러에게 중요한 프로젝트였으며 그의 음악적 재능과 두려움 없는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비공식 버전이 유통되는 상황까지 고려하여 공식 발매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2014년은 맥 밀러의 삶과 음악 커리어에서 제일 특별한 시기였다. 정신적으로 매우 나약하고 어두웠으며, 음악적으론 실험적 사운드에 탐닉했다. 그리고 이 같은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한 채 그것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작품이 바로 ‘Faces’였다. 자연스레 ‘Balloonerism’도 큰 틀에서 비슷한 결을 보인다. 약물 중독과 예술, 삶과 죽음, 몽환과 환멸의 경계를 탐색하는 추상적 서사와 주제로 일관했다. 프로덕션 면에서도 실험성이 부각되며 주류 음악의 틀을 깨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만 ‘Faces’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어느 정도 활력을 담고 있는 반면, ‘Balloonerism’은 보다 차분하고 사색적이다. 또한 여러 장르가 혼합되었음에도 결국 랩/힙합으로 귀결되는 ‘Faces’와 달리 ‘Balloonerism’의 음악은 틀을 정하기 어렵다. 힙합이 요소 중 하나인 전위적인 팝 혹은 재즈 앨범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밀러는 여전히 몇몇 곡에서 랩을 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힙합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보컬 형식의 일부처럼 다가온다.

‘Balloonerism’엔 몽환적인 그러나 현실과 단절되지 않은 음악으로 그득하다. 그 곡들은 마치 하늘에 매달린 풍선처럼 자유롭게 떠다니며 우리를 맥 밀러의 복잡미묘한 내면으로 이끈다. 첫 번째 싱글 ‘5 Dollar Pony Rides’는 좋은 예다.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연인에게 과거의 좋은 시절을 회상하며 위로를 건네는 모습 뒤로 밀러는 근원적인 외로움과 진정한 연결의 어려움이란 주제를 탐구한다. 이를 그가 생전에 좋아했던 네오소울과 재즈 그리고 사이키델릭 힙합의 요소가 유기적으로 얽힌 프로덕션으로 감쌌다. 공동 프로듀싱을 맡은 선더캣(Thundercat)의 유려한 베이스가 곡을 리드하고, 맥 밀러의 보컬은 자욱하게 깔린 안개처럼 부유한다.
한편 앨범엔 그의 보컬 비중이 낮거나 전면에 부각하지 않은 곡도 있다. 덕분에(?) 밀러의 프로듀서 자아인 래리 피셔맨(Larry Fisherman)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사운드스케이프를 온전히 느낄 수도 있다. 독특한 오르간 사운드가 쉽게 잊히지 않는 ‘DJ’s Chord Organ’ 같은 곡을 들어보라. 제목의 ‘코드 오르간’은 얼터너티브 싱어송라이터였던 고(故) 다니엘 존스턴(Daniel Johnston)이 잘 다루던 악기다. 밀러는 존스턴의 전기 영화 ‘Hi, How Are You Daniel Johnston?’에 제작자로 참여하면서 악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악기를 사용하여 마치 우울한 꿈속에 잠겨 있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하는 최면적인 음악을 창조해냈다. 여기에 밀러와 각별한 사이였던 싱어송라이터 시저(SZA)가 보컬로 조력하여 아련한 노을처럼 곡을 물들인다. 밀러가 자신의 재능을 일찍 알아본 것에 대해 종종 고마움을 표해온 그녀였기에 이들의 협업이 더욱 애틋하게 다가온다.
‘Balloonerism’ 곳곳에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다리가 놓여 있다. 2014년의 맥 밀러가 지금의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듯한 곡들, 그가 실험적 사운드를 탐색하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특히 밀러는 완벽한 것보다 과정의 흔적이 보이는 예술을 사랑했다. ‘Balloonerism’ 덕분에 그런 밀러의 음악 세계로 들어가 접한 곡들은 여전히 우울한 동시에 따뜻하고 몽환적이며 진솔한 감정으로 뭉쳐 있다. 그는 쾌락과 불안, 성공과 허무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하고 자조적인 농담과 철학적 고찰을 교묘하게 뒤섞는다. 언제나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정직하게 노래했기에 그의 음악은 더욱 진실하게 다가왔다. 밀러가 남긴 유산이 빛을 잃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이번 글을 쓰기 위해 한동안 맥 밀러의 목소리와 비범한 음악을 반복하여 들었더니 그리움과 뭉클함이 다시금 차올랐다. 부디 그가 하늘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길 바란다.
R.I.P Mac Miller aka Larry Fisherman (1992.01.19 – 2018.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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