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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민,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김복숭(작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IMDb

‘소년의 시간’ (넷플릭스)
박수민: “요즘 애들 다 그렇잖아.”라는 말로 지금의 10대들을 외면해온 사이, 그들은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있을까? 평범했던 어느 이른 아침, 같은 반 여학생 케이티를 살해한 혐의로 13세 소년 제이미가 무장경찰에 의해 긴급 체포된다. 제이미의 부모, 형사 및 심리학자 등 해당 사건을 둘러싼 어른들은 10대들의 세계를 추적하면서 그들의 은밀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드라마 ‘소년의 시간’은 인셀 문화, 왜곡된 남성성, 여성 혐오 등의 문제가 청소년들의 사회에서 얼마나 극단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지를 폭로한다. 케이티가 제이미에게 남긴 인스타그램 댓글과 이모티콘은 그저 평범해 보이지만 공격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케이티의 친구였던 제이드가 친구를 잃은 분노로 공모 혐의를 받는 라이언에게 폭력을 행하자 주위 친구들은 이를 SNS에 공유하고 그의 무너진 남성성을 조롱하며 낙인의 도구로 삼는다. 모든 것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공격받는 SNS 시대의 또래 문화 속에서 청소년들은 스스로를 이해하기 전에 타인의 평가에 빗대어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심리학자와의 면담에서 제이미가 전한 말처럼 “잘하는 게 없어도 상관없”지만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10대들이 처한 문제 상황은 단순히 SNS 중심의 문화와 미디어 리터러시 부족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소년의 시간’은 청소년들에게 기성세대와의 소통 단절, 교육제도, 가족 관계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상황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한 에피소드를 단 한 번의 원테이크 기법으로 촬영하는 방식은 상징적이다.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는 듯한 몰입감을 자아내는 동시에, 문제에 대한 섣부른 판단이나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해답을 찾는 건 결국 우리의 몫인 것이다. ‘소년의 시간’이 지난 3월 13일 공개된 이후 현재(4월 10일 기준)까지 전 세계 넷플릭스 TV쇼 부문 1위를 유지하며 화제가 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작중 수사팀 형사 미샤가 자신의 학창 시절을 회고하며 전한 말처럼, 우리 사회는 결국 단순하고도 당연한 답을 되찾아가는 과정에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주는 거예요.”

‘E’ - 에피(Effie)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일렉트로닉 음악가 에피(Effie)가 3월 28일 발표한 EP ‘E’를 수식하는 가장 흔한 표현은 ‘K-하이퍼팝’이다. 2021년 첫 정규작 ‘Neon Genesis’ 시기만 해도 힙합의 문법에 가까웠던 에피의 음악은 일렉트로닉 힙합이라는 커다란 장르 아래 익스페리멘탈 힙합과 일렉트로클래시 등의 수많은 하위 장르와 하이퍼팝의 위인들을 떠올리게 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찰리 XCX의 ‘Pop’ 시리즈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 ‘forever (feat. Manaka)’와 소피(SOPHI)의 ‘Immaterial’의 리듬으로 출발해 노이즈 가득한 트랩 비트 위 랩을 뱉는 ‘down’, 어지러운 보컬 샘플과 EDM 트랩의 열화를 거쳐 드롭의 순간을 여유롭게 조절하는 ‘maybe baby’의 배합에서 선명한 모티브를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에피를 하이퍼팝 음악가라 정의 내리는 것이 온당할까.

마니아들은 하이퍼팝에 사망 선고를 내리고 있다. 찰리의 ‘brat’과 함께 지구촌을 휩쓴 연두빛 축제는 뉴 레이브라 불리는 영국의 새로운 일렉트로닉 밴드 음악, 당대 유행하던 팝 디바들부터 언더그라운드의 인더스트리얼과 힙합, 메탈코어까지 어지럽게 끌어안았던 2010년대의 치열한 인터넷 발(發) 뒤섞기와 허물기의 역사가 ‘팝’이라는 음악 산업 아래 편입되었음을 알리는 고별 무대였다. 오늘날의 10대 음악가들은 하이퍼팝이라는 단어가 하나의 브랜드로 굳어져 자신들의 창작 활동을 제약하는 현상에 거부감을 내비친다. 드레인 갱 같은 크루나 투홀리스, 글레이브, 쿠인, 에릭도아 등 음악가들을 하이퍼팝 아래 뭉뚱그릴 수는 없다.

에피의 음악도 하이퍼팝을 탈출하는 신예들의 행보와 뜻을 같이한다. 앨범을 독특하게 만드는 요소는 2010년대 하이퍼팝의 클리셰라기보다 한국이라는 특수한 공간과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다. 2000년대 K-R&B의 멜로디라인과 최신 유행 K-팝, 구전동요를 엮어낸 독특한 사랑 노래 ‘코카콜라’나 동아시아 음악 커뮤니티 가운데 태극기와 한국인이라는 단어를 직접 제시하는 ‘kancho’, 독립 음악가의 생존기를 고백하며 성장을 다짐하는 EDM ‘put my hoodie on’이 귀에 들어온다.

국내에서도 하이퍼팝에 관심을 가졌던 힙합 씬과 그로부터 파생된 레이지 장르의 시도와 더불어 이소, 더 딥, 넥타 등 일렉트로닉을 기반으로 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이 꾸준히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하이퍼팝이라는 분류보다 음악가들의 이름이 더욱 선명해진 오늘날, 그 역전의 흐름을 에피의 새 작품에서 확인한다.

‘지우지 마시오: 수학자들의 칠판’ - 제시카 윈
김복숭(작가): 나는 책이든 영화든 혹은 그 어떤 형식이든, 전혀 알지 못하는 주제에 흥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에 자연스럽게 끌리곤 한다. 그리고 (설령 피상적일지라도) 그 주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런 의미에서 ‘지우지 마시오 : 수학자들의 칠판’은 특별한 책이다. 재능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말과 숫자 그리고 사고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책에서 제시카 윈이 촬영하고 편집한 칠판 사진들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우지 마시오(DO NOT ERASE)”, “건드리지 마세요(PLEASE LEAVE ON)”. 학교에 다닐 때 칠판이나 화이트보드에서 종종 보곤 했던 익숙한 문구들이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장면들은 어디선가 본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혀 새로운 독특한 풍경처럼 느껴져 이전에는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디지털 시대 특히 줌(Zoom) 수업과 전자책이 주류가 된 지금, 이 책에 등장하는 칠판들은 아날로그 특유의 따뜻함과 시적 감성을 전달한다. 책을 무릎 위에 실제로 올려두고 한 장씩 페이지를 손끝으로 넘기며, 설명된 내용을 스스로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모든 경험 자체가 묘하게 만족감을 주기도 한다. 물론 때때로 이해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러지 못했던 내 경험도 밝힌다. 하지만 이 책은 결코 독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이 책은 수학 강의서라기보다는 카페에서 우연히 펼쳐볼 법한 ‘너디한’ 아트북에 가깝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다이어그램과 도표는 수학에 정통한 사람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순수한 예술로 다가왔다. 또 책 전체에서 분필의 감촉과 냄새에 대한 언급이 꽤 자주 반복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나는 수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놀라울 정도로 강렬한 향수 혹은 아네모이아를 느꼈다. 이 감각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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