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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희(작가, 칼럼니스트), 이희원, 배동미(CINE21 기자)
디자인MHTL
사진 출처선의의 경쟁 X

‘선의의 경쟁’ (U+tv 오리지널, 티빙·웨이브·왓챠)
백설희(작가, 칼럼니스트): 2025년 상반기에 신인 여성 배우들이 이만큼이나 활약한 드라마가 또 있을까?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16부작 미스터리 걸 스릴러 드라마 ‘선의의 경쟁’은 단연 화제성 1순위를 달리고 있다. 본래 U+tv에서만 볼 수 있던 오리지널 작품인 ‘선의의 경쟁’은 3월 6일에 엔딩을 맞았지만, 여러 클립과 쇼츠 등이 SNS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티빙과 왓챠, 웨이브 등 기타 OTT 플랫폼에 추가로 공개되었다. 이에 따라 뒤늦게 정주행을 하는 시청자들에 의해 다시금 큰 인기를 끄는 중이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과 대만, 태국, 베트남에서도 ‘선의의 경쟁’은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어릴 적 부모와 헤어져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채화여고라는 입시 위주의 사립학교에 전학을 오게 된 우슬기(정수빈 분). 그곳에서 전교 1등이자 학생회장인 유제이(이혜리 분)에게 간택(!)을 당하고, 자신의 친아버지가 맞은 미스터리한 죽음에 대해 알게 된다. 우슬기는 유제이, 최경(오우리 분), 조예리(강혜원 분)와 부딪치기도 하고 또 힘을 합치기도 하며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의문을 풀어 나간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유제이 역할을 맡은 이혜리의 엄청난 성장이다. ‘응답하라 1988’에서 마다가스카르 피켓걸이 되었다며 방방 뛰던 성덕선으로 분했던 이혜리는 ‘빅토리’의 추필선을 거쳐 ‘선의의 경쟁’에서 유제이로 다시 태어났다. 다소 철없어 보이지만 야무진 말괄량이 역할을 주로 맡던 이혜리는 ‘선의의 경쟁’에서 차갑고 두뇌 회전이 빠르며 외곬인 유제이 그 자체다. 이혜리 유튜브의 열혈 구독자라는 김태희 감독은 “이 갭이 큰 캐릭터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혜리 또한 강혜원이 출연한 자신의 유튜브 코너 ‘혤’s club’에서 “이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내가 보여주지 않았던 느낌을 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혜리의 첫 주연작 ‘선암여고 탐정단’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예희와 유제이를 비교해보면서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의의 경쟁’을 보며 유제이에게만 집중하기란 힘들다. 유제이와 애증으로 엮인 주인공 우슬기 역의 정수빈 배우는 안정되고 탄탄한 호흡으로 16화를 이끌어 나간다. 그뿐 아니라 2023년 개봉했던 영화 ‘지옥만세’에서 살벌한 연기를 선보인 적 있는 오우리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배우다. 정신병을 앓는 유제이의 언니 유제나로 분한 추예진,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유제이에게 저당 잡혀 있는 역할을 훌륭히 해내며 그 존재감을 과시하는 채서은과 8화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줘 136만 조회 수를 기록한 김상지까지. ‘선의의 경쟁’에는 빛나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예 배우들이 도처에 포진해 있다. 앞으로 더 큰 활약을 펼쳐 나갈 그들의 앞길을 행복한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폭싹 속았수다' (넷플릭스)
이희원: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애순(이지은)과 관식(박보검)의 사랑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광례(염혜란), 광례의 딸 애순, 애순의 딸 금명까지 3세대로 이어지는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총 16부작으로 4부씩 공개되는 특이한 구성을 따르며, 각각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누어 애순의 인생의 사계절을 그려낸다. ‘억척스러운 어머니’로 표현되는 1960년대의 엄마 광례는 딸 애순에게 “제주서 여자로 태어나느니 소로 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먹여야 하는 자식이 있어 더 억척스럽게 굴어야 했던, ‘점복(전복)’ 하나 아까워할 수밖에 없었던 광례의 삶. “애순아, 엄마가 가난하지, 네가 가난한 거 아니야. 쫄아 붙지마. 너는 푸지게 살아.” 광례는 애순이 자신의 삶을 반복하지 않길 바라지만, 그의 엄마처럼 엄마가 된 애순은 헤아릴 수 없는 꿈을 포기하고 어느 정도 그 삶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열여덟, 시인을 꿈꿨던 문학소녀 애순은 엄마를 잃고 엄마가 되었고 열아홉, 관식은 꿈꾸던 금메달을 따는 대신 금명이 아버지가 됐다. “꿈을 꾸는 계절이 아니라, 꿈을 꺾는 계절이었다. 그렇게도 기꺼이.” 꺾인 꿈이 아니라, ‘기꺼이 꺾은 꿈’을 품은 두 사람은 서로의 곁을 지키며 수없이 반복되는 사계절을 함께한다.  애순에게 기댈 언덕이 되어주는 관식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관식조차 곁에 없었을 그 시절 수많은 애순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내게는 허기지기만 하던 유년기가, 그 허름하기만 한 유년기가,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만든 요새였는지”라는 내레이션처럼, 세상의 수많은 자식들은 드라마를 보며 때로 원망하고 때로 이해할 수 없었던 부모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매우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드라마 제목 그대로, 그 시절의 수많은 광례에게, 애순과 관식에게 그리고 오늘을 치열하게 살아냈을 수많은 금명에게. ‘폭싹 속았수다’.

‘계시록’ (넷플릭스)
배동미(CINE21 기자): 낡은 상가 건물에서 작은 개척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 민찬(류준열)은 비 오는 날 묘한 새 신도를 받는다. 중학생 소녀 아영(박소이)을 따라가다 아이가 교회에 들어오자 예배당까지 따라온 양래(신민재)라는 남성이다. 신도를 늘리는 데 열심인 젊은 목사 민찬은 그를 “형제님”이라 친근하게 부르며 교회에 자주 오도록 만들려고 하지만, 양래는 불쾌한 기색만 내비친다. 그런 그를 온화하게 대하던 민찬 역시 실은 종교적 가치와 정반대인 인간이다. 흥신소를 통해 아내를 추적하다 외도 사실을 확인한 민찬은 분노를 참지 못해 벌레를 밟아 죽이고, 어린이집에서 자신의 아이가 실종되자 성범죄 전과자들이 착용하는 전자발찌를 찼던 양래를 곧바로 의심한다. 한편 양래가 저지른 범죄로 사랑하는 동생을 잃은 형사 연희(신현빈)는 양래가 새로운 실종 사건의 용의자라고 여기고 수사를 시작한다

넷플릭스 영화 ‘계시록’은 영화 ‘부산행’, ‘반도’, 시리즈 ‘지옥’, ‘방법’ 등에서 인간 군상의 욕망이 뒤얽히는 모습을 긴장감 넘치게 옮겨왔던 연상호 감독의 신작이다. 흥미로운 세계관 아래 에둘러 가는 법 없는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하는 그만의 특장점이 이번 영화에서도 발휘되는데, 친절한 듯 보였던 목사 민찬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을 넘고, 범죄 이력을 가진 양래는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한다. 그리고 형사 연희는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죽은 동생의 환영에 시달린다. 연상호 감독은 민찬, 양래, 연희 세 사람의 욕망과 목적이 서로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역학 관계를 서스펜스 넘치게 옮긴다. 단순히 대사를 통해 서사를 전진시키는 게 아니라 전자발찌, 죽은 동생의 환영 등 이미지로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연 감독의 솜씨가 놀랍다. 연상호 감독의 최고작 ‘지옥’과 ‘부산행’보다는 다소 밀도가 낮지만 ‘반도’와 ‘방법’을 뛰어넘는 작품이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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