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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대중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출처Tate McRae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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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처럼 삶에도 환절기 같은 시기가 존재한다. 삶은 단순하지 않고, 너무 많은 요소가 투입된 총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시기가 되면, 특정한 나이가 되면, 오래도록 꿈꿔왔던 무언가를 이루면 카드를 뒤집은 것처럼 그에 맞는 사람으로 변해 있을 거라 착각하지만 사실 그 모든 게 이루어진다고 한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크게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달라지지 않아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환절기 독감처럼 며칠을, 길게는 몇 년을 앓는다.

그 독감이 가장 크게 영향력을 끼치는 시기는 갓 성인이 되었을 때다. 19살에서 20살로 넘어가기 10초 전, 10부터 1까지 카운트다운을 다 세고도 변한 건 없을 때. 술을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고 담배를 살 수 있는 나이가 되어도 어제의 부끄러움은 상쇄되지 않는다. 여전히 부끄럽고 숫기 없다. 그럼에도 타인들은 나를 성인으로 대하고 막중한 책임감에 대해 읊는다. 성인이 되었다는 기분에 도취해 모든 걸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하늘을 찌를 것 같던 자신감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모순 같은 하루가 쌓여 조금씩 혼란의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테이트 맥레이(Tate McRae)가 지난 2월 발매한 앨범 ‘So Close To What’에는 이러한 모순이 드러난다. 어른이 된 것만 같은 자신과 아직은 다 자라지 않은 미성숙한 모습을 모두 끌어안은, 모순 같은 자신의 존재를 앨범에 투영한다. ‘가까이’ 가기 위해 달음질치고 있으나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상태. 어느 인터뷰에서 그가 밝혔던 것처럼 어쩌면 그것이 이십 대 초반이라는 나이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십 대가 되면 누구나 사랑을 ‘당연히 해야 할 일’처럼 받아들이지만, 막상 그 안에선 모든 게 낯설고 어렵다. 성인 여성으로서 사랑과 욕망을 대담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여전히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져 두렵기도 하다.

‘나’에 대해서도 모를 때만 가능한 감정의 모양
테이트 맥레이에게 사랑 또는 연애 감정은 앨범 속 노래 제목처럼 ‘Revolving Door(회전문)’ 같은 모습일지도 모른다. 똑같은 실수를 하고 또다시 같은 사람에게 돌아간다. 죽도록 미워졌다 다시 절절하게 사랑하게 되는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은 제자리에서만 빙빙 돌게 만든다. 또는, ‘No I’m Not in Love’나 ‘Means I Care’에서처럼 마음과는 다르게 상대를 밀어내는 행동이 사랑의 모양일 수도 있다. 사랑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 못하고, 그 이전에 스스로에 대해서도 완전히 확신할 수 없는 나이에만 가능했던 사랑의 모양들이 앨범 곳곳에 박혀 있다.

사랑의 모양을 담아내는 그릇은 2000년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가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2000년대 팝과 알앤비의 향수를 가득 머금은 음악들이 이 앨범의 주축을 이룬다. 과거의 장르를 재해석하는 것은 이제 조금은 뻔한 공식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가 구사하는 음악은 단순히 재해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Miss Possessive’가 이를 뒷받침할 가장 적절한 예시다. 미니멀한 드럼 머신과 신시사이저가 섞인 비트 위에서 숨결 섞인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는 테이트 맥레이의 목소리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더불어, 연인을 통제하려는 욕망을 드러내면서 소유욕을 과시하는 듯한 태도는 한때 ‘크레이지 엑스 걸 프렌드*’라는 이름 아래 조롱되었던 여성상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듯한 흥미를 자아낸다.

이 앨범이 재밌는 점은 모순이라는 키워드가 사랑에만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Purple Lace Bra’에서 그는 대중과 남성들에 의해 성적 대상화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좌절감을 느낀다. 성인이 됨에 따라 자신을 표현할 방법이 늘어났지만, 그에 의해 불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앨범의 마지막 곡인 ‘Nostalgia’는 ‘이루지 못한 꿈’을 주제로, 희망에 가득 차 미래를 꿈꿀 수 있지만 그 꿈으로 인해 현재를 잃을 수도, 과거를 그리워하며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는 모순을 노래한다. ‘나’에 대해 탐구하며 마주하는 숱한 당혹감을 그려낸다.

마이애미 베이스 스타일의 ‘Bloodonmyhands’, 푸시캣돌스의 ‘Buttons’에 대한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Sports Car’뿐 아니라 ‘2 hands’, ‘Sign’까지 레트로 감성이 물씬한 사운드는 그러한 감정을 더 증폭시키는 매개체가 된다. 테이트 맥레이는 본래 차분하고 조금은 우울감이 묻어난 사운드를 구사하던 아티스트다. 그의 장르적 변화는 ‘성장’의 의미로 다가온다. 이 앨범에서 또한 전체 키워드가 되는 모순과 혼란스러움, 그리고 그 감정을 조금씩 걷어내며 마침내 성장한 모습을 장르적으로 표현하는 듯하다.

과거를 돌이켜보며 점을 잇는 일
테이트 맥레이는 댄서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무용 경연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댄서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2013년 뉴욕에서 열린 ‘The Dance Awards’에서 미니 부문 최우수 여성 댄서로 선정된 후, 2015년에는 ‘Youth America Grand Prix’에서 솔로 부문 은메달과 듀엣 부문 동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2016년, ‘So You Think You Can Dance’ 시즌 13에 참여하면서부터다. 당시 캐나다인 최초로 결승에 진출하고 최종 순위 3위를 차지하면서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을 수 있었다.

그렇게 무대를 온전히 몸으로 채우던 시절, 그의 마음에는 음악이 움트고 있었다. 2017년부터 무용을 하는모습과 일상 생활 등을 올리던 유튜브 채널에 ‘Create with Tate’라는 콘텐츠를 시작하며 자작곡을 업로드하기 시작한다.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음원 발매로 이어졌던 첫 자작곡 “one day”를 시작으로 여러 자작곡을 공개하며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조금씩 쌓아 나갔다. 그러던 중, 2019년 음반 계약을 맺으며 본격적인 가수로서의 활동에 날개를 단다.

가수로서의 커리어 전환이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춤을 추면서 노래를 만들었다. 그래서 그 두 개의 요소가 함께 시너지를 낸다. 춤으로 경력을 시작했기에 노랫말을 움직임으로ㅡ원작자의 의도대로 표현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앨범의 ‘Revolving Door’의 뮤직비디오는 영상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의 춤으로만 채워지는데, 가사에 담긴 혼란스러운 감정과 반복되는 실수에 대한 절망스러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삶에 대한 명언 중 그런 말이 있다.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며 점을 이을 순 없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며 점을 이을 수는 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찍고 있는 점들이 어떤 시점에 서로 연결될 거란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지금 그는 그 점들을 하나하나 찍는 중이다. 춤과 노래, 무대와 가사, 과거와 현재 사이를 오가며. 아직은 자신도 명확히 정의하지 못한 ‘나’라는 존재를 음악으로 탐색하고, 반복되는 감정 속에서도 다시 시작하며 모든 모순과 혼란을 껴안고 앞으로 나아간다.

삶은 언제나 ‘So Close To What’이라는 앨범명처럼 무엇인가에 가까워진 듯 멀고, 명확해진 듯 흐릿한 상태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속에서야말로 우리는 가장 솔직해질 수 있고 그렇게 우리는 자란다. 테이트 맥레이는 지금, 삶의 모순 한가운데에서 성장의 방향을 조준한다.

* Crazy ex-girlfriend: 2000년에서 2010년대 초반까지 미국 대중문화에서 꽤 자주 쓰인 단어로,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연락하거나 종종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전 여자 친구’를 의미한다. 단어 자체에 여성의 감정 표현을 비정상으로 취급하는 문화적 문제가 담겨 있다고 인식되어 현재는 많이 쓰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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