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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서, 배동미(CINE21 기자),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Netflix

‘대환장 기안장’(넷플릭스)
최민서: 기안장은 조금, 아니 많이 수상하다. 사람들이 숙소에 쉽게 들어가는 것이 싫어서 제작했다는 기안84표 민박의 입구는 클라이밍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내부에는 ‘피트니스트’ 룸, 소위 ‘다라이’라 불리는 대야에 물 받는 형태의 야외 목욕장, 강제 대면 티타임 존 등 난생 처음 보는 것들로 가득하다. 밥도 수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조식은 저녁을 많이 먹는 것으로 대체하고, 식사는 장 볼 필요 없는 3분 카레로 때운다. “오늘은 손으로 먹자.”라는 기안84의 말에 팀장 진과 직원 지예은은 경악할 뿐이다. 이 수상한 공간의 설계자 기안84는 사장인데도 손님에게 식용유를 “두 개, 아니 하나” 사와 달라고 부탁한다. 손님들은 “민박집, 망할 것 같아요.”라는 첫 평가를 남기지만, 점점 이 공간의 매력에 빠져든다.

대환장 속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해결사 진과 특유의 붙임성으로 손님들 적응을 돕는 지예은이다. 진은 슈퍼스타에서 장보기부터 손님 응대까지 완벽한 ‘일잘러’로 또 아이의 구명조끼 착용을 돕는 삼촌으로 변신한다. “손님은 있는데 왜 발님은 없어?” 트레이드마크인 ‘아재 개그’도 빼놓지 않는다. 지예은은 봉을 오르는 데 연속으로 실패해 ‘허당미’를 뽐내지만, 선박 면허까지 취득하여 손님들을 직접 모시는 기안장 첫인상 담당이다. 손님들은 키를 꺾는 예은을 보고 불안해하다가도, 곧 예은이 모는 바나나보트에서 스릴을 즐긴다. 예은에게 기안84는 ‘다른 세계 사람’이고, 진에게는 “강아지가 있고, 고양이가 있고, 기안이 있고”라는 표현처럼 미지의 존재다. 그러나 이들은 타협 없이 기안84만의 독특한 세계를 지키려 노력한다. 처음엔 “이게 뭐야?”를 연발하며 민박 규칙에 황당해했던 직원들은, 어느새 손님들에게 미끄럼틀 사용 금지와 야외 취침 원칙을 철저히 따르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떻게 3분 만에 샤워해요?”라며 경악하던 진은 어느 순간 기안84처럼 콩국수를 손으로 먹으며 외친다. “콩국수엔 설탕이지!”​​​​​​​​​​​​​​​​

“콘서트의 환호 속에 있다가 집에 가면 환호 소리가 사라지는데/귀에서 이명은 계속 들려. 한두 시간을 가만히 누워 있어.” 야무지기만 할 것 같던 석진도 감정을 털어놓게 만드는 울릉도의 바다 앞에서는 누구나 꿈을 꾼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사장 기안84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어준다. 친근하게 손님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들이 떠날 때면 아쉬움을 숨기지 못한다. 곤충 채집에 진심인 대학생들도, 젊은 목수도, 취준생 4인방도, 아이들과 아버지도, 기안장에 묵은 모든 이들이 다시 쉼을 필요로 할 때까지, ‘대환장 기안장’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묵묵히 그들을 기다릴 것만 같다.

‘파과’
배동미(CINE21 기자): 조각(이혜영)은 60대 여성이다. 희끗희끗한 머리로 지하철에서 성경을 읽고 있으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존재다. 그런 그는 사실 킬러다. 그것도 아주 실력 있고 냉정한 암살자다. 손에 쥔 성경의 얇은 책장을 넘기면 목숨을 앗아갈 타깃의 사진이 꽂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 사이에 선 조각이 예리한 비녀로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지하철 신은 많은 걸 이야기한다. 조각은 사람이 붐비는 환한 지하철에서 누군가를 찔러 죽이는 대범한 암살자이고, 역설적으로 누구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존재이기에 스스로를 숨길 수 있다는 것. 덕분에 조각은 오랜 시간 ‘신성방역’이란 묘한 회사에서 일하며 악인들을 처리해왔다. 조직 내에서 조각은 ‘대모님'이라 불리며 킬러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에게도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손과 얼굴이 떨리는 노인성 질환 증상이 나타나고, 새롭게 신성방역에 들어온 젊은 킬러 투우(김성철)는 무턱대고 조각에게 덤비기 시작한다.

전문적인 킬러 조직과 노년의 암살자. 여기까지 읽고 ‘존 윅’ 시리즈를 떠올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파과’는 ‘존 윅’보다 많은 레이어를 촘촘하게 지닌 작품이며, 그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는 이혜영이란 위대한 배우다. 파킨슨병처럼 손과 얼굴을 미세하게 떨면서도 눈빛은 점점 더 날카로운 기운을 뿜어내고, 배우 특유의 매혹적인 목소리로 상대를 향해 “누구한테 죽느냐가 뭐가 중요해. 왜 죽느냐가 중요하지.”라거나 “우린 부서지고 사라지는 존재야.”라고 말할 때에는 늘 죽음과 함께 한 자의 초연함까지 전해진다. 킬러를 소재로 한 영화인 만큼 배우 이혜영은 수많은 격투 신과 총기 액션 신을 소화하는데, 영화 기술로 많은 것들을 꾸며낼 수 있는 시대에 그가 나이 있는 육체로 전달하는 액션 신들은 역설적으로 더 고통스럽고 힘겨운 싸움으로 다가온다. 그는 ‘파과’란 영화적 상상력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배우가 아닐까. 한국의 천재 영화감독 이만희의 딸이란 수식어를 오랫동안 부여받았던 그를 이젠 그만의 천재성으로 추앙해야 할 때이다.

'Indigo'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지난 몇 년간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컨트리는 팝, 힙합/랩과 함께 주요한 장르가 되어 왔다. 물론 모든 장르는 고유한 시장 안에서 인기와 발전을 누린다. 그 과정에서 장르 전반의 인기가 오르내리는 것도 역사의 일부다. 하지만 2000년대 상당한 기간 동안 젊은 세대는 컨트리 장르와 유독 더 거리를 두었다. 이들 세대가 장르의 배경을 이루는 문화적 보수성, 창작자와 청중의 비관용적 태도에 거부감을 느꼈다는 분석도 있다. 이 설명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같은 시기 컨트리의 대안으로 여겨졌던 취향 또한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는 컨트리의 작법, 보컬 스타일, 가사의 주제 등 요컨대 ‘농장 느낌’으로 일컫는 장르의 전형에 대한 호불호가 전부라면 생길 수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자니 캐시나 로레타 린 같은 고전 시대의 컨트리 아티스트가 현재에 소실된 진정성이라는 측면에서 재조명을 받거나, 얼터너티브 컨트리(얼트-컨트리), 아메리카나, 루츠, 그린그래스처럼 음악적 정서, 장르의 근원 등을 공유하지만 그 외연을 넓힌 사례는 꾸준하다.
한편 2020년 전후부터 관찰되는 주류 컨트리의 인기는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릴 나스 X의 ‘Old Town Road’로 대표되는 장르 크로스오버,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 브랜디 칼라일, 오빌 펙, 욜라, 지미 앨런 등의 부상이 보여주는 성별, 성적 취향, 인종 관점에서의 확장, 스트리밍 증가와 소셜 미디어의 적극적인 활용으로 새로운 세대에서 접근할 방법을 찾는 노력 등이 모두 뒤섞여 벌어진 일이다. 여기에 포크/힙합 등 사운드의 확대를 노리는 잭 브라이언, 노아 카한, 모건 월렌, 루크 콤 같은 현대 컨트리 아티스트와 포스트 말론과 비욘세 같은 대형 아티스트는 물론 샤부지 같은 성공 사례를 포함하는 기존 아티스트의 컨트리 전환이 만난다.
스포티파이의 ‘INDIGO’는 이 모든 흐름을 포착하려는 재생목록 관점의 시도다. 아직 컨트리가 익숙하지 않다면, 이렇게 권하고 싶다. 컨트리에 익숙해질 필요는 없다. ‘농장 느낌’은 사실이다. 하지만 컨트리 또는 ‘농장 느낌’이라는 넓은 키워드 안에서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 생태계가 존재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시도할 가치가 있다. 재생목록은 당신의 탐험과 발견을 도울 수 있다. 이번에는 ‘INDIG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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