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 지중해’(tvN)
오민지: 정보가 과포화된 현대사회에서 ‘아는 것이 힘’일까, ‘모르는 것이 약’일까.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 지중해(이하 ‘알쓸별잡: 지중해’)’는 이 양극단의 주장 사이 회색 지대를 정조준하는 프로그램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인 패널들은 크루즈를 타고 지중해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각자의 관심사와 지식으로 그 도시를 이해한다. 그리고 프로그램명처럼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식들을 통해 당장 실용적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별’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생각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컨대 투우에 대한 대화는 ‘소는 빨간색을 구분할 수 없다.’는 과학적 정보로 시작되어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진 살육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이는 ‘잠깐의 재미보다 동물과의 공존’이 더 소중한 가치임을 상기시킨다. 바르셀로나의 금지예술박물관에서는 금지되거나 비판받았던 작품들을 관람하는 과정은 ‘불편함을 인정하기 위한 용기’를 마주하는 방법에 대한 대화로 이어지고, 패널들은 그간 외면해온 감정과 마주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홈구장 ‘오렌지 벨로드롬’에서는 축구를 통해 도시 간의 경쟁을 넘어 다양한 인종과 출신을 포용한 사례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회체제가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알아두면 쓸데없는” 잡학들을 알아가기 위한 여행은 단순한 경험과 ‘앎’을 넘어, 현대의 세상을 해석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성찰할 수 있는 여정이 된다.
뮤지션과 배우, 건축가, 물리학자, 천문학자, 자연사학자, 인문학자와 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패널들은 같은 공간에서 전혀 다른 것들을 발견한다. 생장 요새에서 누군가는 건물의 디테일과 화려함을 볼 때 또 다른 누군가는 왕권의 위기를 읽어낸다. ‘천년 왕국설(천년의 왕국이 지난 뒤 종말이 온다는 사상)’로 믿는 사람들이 신에게 봉헌하기 위해 화려하게 장식한 성당에서 누군가는 인간이 무엇을 기원하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다른 누군가는 이론이 틀렸다면 오류를 검증해야 한다는 의견을 펼치기도 한다. 전혀 다른 경험과 관점을 가진 패널들은 함께 여행하고, 관찰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지식을 넘어 서로의 시선을 이해하게 된다. ‘알쓸별잡: 지중해’의 여행이 펼쳐지는 ‘지중해’의 어원은 유럽인들의 관점에서 세계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바다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mediterraneus(지구의 중심)’'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지중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관점을 이야기하는 패널들은 단순히 자신의 시선을 지중해에 투영하는 것을 넘어, 대화를 통해 상대의 시선을 이해하고 또 다른 세계를 넓혀 나간다. 각자 알고 있던 세계를 벗어나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고, 같은 곳에서 얼마나 다른 것을 발견하는지 배우는 곳. ‘쓸데’는 없어도 ‘쓸모’는 충분한, ‘지구별’ 예능 프로그램의 새로운 시즌이 시작됐다.

2025 OH MY GIRL CONCERT ‘Milky Way’
백설희(작가, 칼럼니스트): 지난 4월 19일과 20일 양일간에 걸쳐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오마이걸의 10주년 콘서트 ‘Milky Way’가 성황리에 끝을 맺었다. 2015년 4월 20일, 미니 1집 ‘OH MY GIRL’로 데뷔했던 오마이걸은 근 10년 동안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돌이켜보면 오마이걸은 항상 든든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섰는, 중견 걸그룹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대중이 오마이걸에게 기대하는 바를 언제나 200% 만족시키면서도 ‘몽환+청량’이라는 특유의 색을 그대로 고수해왔다. 동시에 라디오와 연기, 예능 등 개인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한 노력에 힘입어 오마이걸은 어느새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네 글자로 자리 잡으며 그룹 이름처럼 대중의 ‘마이 걸(my girl)’이 되기에 이르렀다.
이번 ‘Milky Way’는 그런 10년간의 활동을 총망라하는 약 7년 만의 단독 콘서트였다. 멤버들은 물론이고 팬덤에게도 감회가 남다른 자리였다. 무려 3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이틀간의 콘서트 현장에서 오마이걸은 다채로운 세트리스트를 펼쳐 보였다. ‘몽환돌’의 시작을 알렸던 ‘CLOSER’로 처음을 장식한 오마이걸은 뒤이어 팀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비밀정원’과 ‘다섯 번째 계절(SSFWL)’ 등을 연달아 공연했다. 그런가 하면 ‘수록 곡 맛집’이라는 별명답게 ‘한 발짝 두 발짝’부터 시작하여 ‘소나기’, ‘Magic’, ‘I FOUND LOVE’, ‘꽃차 (Flower Tea)’, ‘KNOCK KNOCK’, ‘Dirty Laundry’, ‘Heavenly’ 등 다양한 반응을 얻어왔던 수록 곡 무대도 빼놓지 않았다. 한편 ‘컴백전쟁:퀸덤’에서 오마이걸의 지명도를 높인 세 곡 ‘Destiny (나의 지구)’와 ‘Twilight (Queendom Ver.)’, ‘게릴라 (Guerilla)’ 메들리까지 선보이며 그간 오마이걸의 라이브와 퍼포먼스에 목말라했던 팬덤들의 니즈를 완벽하게 충족시켰다. 마지막으로 오마이걸은 미공개 곡 ‘일기예보’까지 선보이며 콘서트를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이번 콘서트 VCR에서 계속 등장했던 파란 장미의 꽃말은 ‘기적’이다. 이는 즉 오마이걸의 팬덤명 ‘미라클’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오마이걸의 세 번째 미니 앨범 ‘PINK OCEAN’의 수록 곡이자 첫 팬송인 ‘B612’에서 오마이걸은 “네가 날 사랑하는 건 기적 같은 일인 걸”이라고 노래했다. 그 말처럼 오마이걸과 그 팬덤 미라클은 10년간 함께하며 기적 같은 순간을 만들어냈고, 그 정점이 바로 이 단독 콘서트 ‘Milky Way’가 아닐까 싶다.
멤버 승희는 마지막 날 이렇게 말했다. “영원은 없다고 말하지만 그 첫 영원을 함께 같이 만들어가 보자.”라고. 영원을 꿈꾸며 오마이걸이 걸어갈 길은, “분명 어저께보다 더 오늘보다도 반드시 눈부실” 것이다.
‘모로 박사의 딸’ (실비아 모레노-가르시아)
김복숭(작가): 공상과학소설은 주로 미래를 다루지만, 역사적 배경을 담은 공상과학소설은 어떤 느낌일까? 작가 실비아 모레노-가르시아의 ‘모로 박사의 딸’은 이 두 요소를 절묘하게 결합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영국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의 19세기 후반을 배경으로 한 원작 소설 ‘모로 박사의 섬’을 새롭게 재해석한 것이다. 원작이 프랑켄슈타인식 시각으로 모로 박사와 그의 인간-동물 혼합체인 ‘동물 인간’들을 다룬다면, ‘모로 박사의 딸’은 같은 시대적 배경을 유지하면서 주인공 모로 박사의 딸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주인공 카를로타 모로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지만, 의사인 아버지 덕분에 규칙적인 치료를 받으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카를로타는 아버지의 창조물들과 친구가 되며, 그의 조수와도 가까운 관계가 된다. 이 조수는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부주인공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두 사람 모두 자기 자신에게조차 숨기고 있는 중대한 비밀을 품고 있다. 그러던 중 한 젊은 남성이 그들의 비밀스러운 섬집에 찾아오며 로맨스가 싹트고, 이는 곧 가족 간의 갈등으로 번지면서 상황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비교적 가벼운 줄거리에 캐릭터 설정들에 큰 중점을 둔다. 어느 쪽에 대해서라도 이 이상 자세히 설명한다면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하지만 스포일러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독자라면, 다른 사람이 쓴 짧은 요약을 찾아서 미리 확인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이 소설의 반전 요소는 그 자체만으도 책을 읽게 시작할 만한 매력이 있다.). 비슷한 책을 찾자면, 포스트식민주의적 시선으로 주제를 다룬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가 있을 것이고, 우리에게 익숙한 ‘위키드’ 시리즈와도 매우 닮아 있다. ‘다른 시각으로 재해석된 고전 작품들’이라는 목록이 있다면 이번에 추천하는 책 ‘모로 박사의 딸’도 훌륭한 한 줄로 분명히 추가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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