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황선업(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TAKUYA NAGAMINE

아이묭이 J-팝 씬의 새로운 구세주로 부상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가뜩이나 변화가 가속화되어 가는 현대사회에서 그는 다채로운 면모를 통해 음악적 본질을 풍요롭게 채워나가며 청중의 안식처를 자처해왔다. 사랑을 순수한 잔혹함으로 물들여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던 인디즈 데뷔 곡 ‘貴方解剖純愛歌 〜死ね〜’와 누군가의 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뉴스를 보고 자신이 느낀 바를 직설적으로 풀어낸 ‘生きていたんだよな’는 지금 되돌아보면 청춘의 충동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를 세상에 알린 히트 곡 ‘マリーゴールド’를 비롯해 미디엄 발라드 가수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裸の心’, 상대방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담아낸 최신 곡 ‘スケッチ’까지. 그의 10년은 ‘개인적인 것이 곧 보편적’이라는 신조 아래, 순간순간 느끼는 일상의 감정들을 자신만의 언어와 선율로 풀어내며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축해 나간 여정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일상성과 보편성을 축으로 여러 갈래의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그의 강점은 새 앨범 ‘猫にジェラシー’에서 만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서로 다른 시기에 쓰인 곡들을 유기적으로 엮어낸 소설처럼 느껴진다. 사랑에 대한 각기 다른 관점의 시선을 통해 마음속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듯하다. 개개인의 ‘약함’을 포용하는 장면이 두드러지게 목격된다는 것도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특징이다.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과 함께 고통은 지나가고 새로운 아침이 올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朝が嫌い’, 어쨌든 삶은 방황 속에서도 두근거림을 만들어 나가는 여정이라는 사실을 차분한 업템포로 그려내는 ‘リズム64’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 디스코그래피가 쌓여갈수록, 그의 음악을 특정 장르로 단정짓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기타를 든 싱어송라이터’라는 프레임을 유지하되, 여러 요소를 자연스레 흡수하며 장르 간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 핵심에는 ‘가사와 멜로디’에 집중하는 본질주의가 있다. 극도로 절제된 편성과 명료한 음성, 의도적으로 비워둔 공간들, 그렇게 탄생한 ‘여백의 미학’은 대중의 상상력이 스며들게끔 하는 배려를 제공한다.

아마 지난 4월 19일과 20일, 이틀간 개최된 내한 공연 ‘Dolphin Apartment in Seoul’의 현장을 찾았던 이들이라면, 앞서 언급한 아이묭의 매력을 온전히 체험했으리라 생각한다. 국내 팬들의 기다림은 실로 길었다. 최근 몇 년간 지속 중인 ‘일본 음악 붐’의 시작을 열어젖힌 곡 중 하나가 아이묭의 ‘愛を伝えたいだとか’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단순한 인기를 넘어 국경과 세대를 초월한 그의 보편성은 SNS 숏폼과 유튜브를 통해 확산되며 이전에 접점이 없던 이들에게 J-팝에 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아이묭의 경우, 일시적일 수도 있었던 관심이 다양한 레퍼토리로 확장되며 견고한 팬층을 구축한 눈에 띄는 사례라 할 만하다. 청춘의 불안과 무력감, 사회적 중압감에 대한 정서는 양국에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그 텅빈 마음을 어루만지고 메워주는 듯한 진정성. 이것이 한국에서도 아이묭의 음악이 세대의 언어로 기능하는 이유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결코 작지 않은 규모의 킨텍스에 이틀간 모인 약 1만 6,000여 명의 관객들은, 그동안 받은 위로를 환호로 되갚아주겠다는 그 각오와 열망을 아낌없이 표출하고 있었다.

첫날의 설렘을 지나 둘째 날의 아쉬움을 맞이하게 될 일요일. 관객들은 모든 순간을 선명히 눈과 마음에 새기겠노라 다짐한 전사들 같았다. 시작 시간이 되자 머리 위로 푸른 레이저가 넓게 퍼져나갔고, 공연 제목을 연상케 하듯 마치 바다 속에 잠긴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윽고 ‘どうせ死ぬなら’를 외치는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비로소 아이묭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실감이 밀려왔다. 개인적으로는 ‘リズム64’으로 시작하는 현지 투어와는 달리 살짝 변주된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첫 한국 무대인 만큼, 강렬한 도입부를 통해 초반 분위기를 단번에 고조시키려는 전략처럼 느껴졌다.

돌출 무대를 오가며 한국 팬들을 온몸으로 환대한 ‘ラッキーカラー’에 이어, 이르게 터져나온 ‘マリーゴールド’에서 서두에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그의 의도가 확실히 감지됐다. 예상보다 빠른 이 시그니처 송과의 만남에 관객들은 ‘떼창’을 하며 손을 흔들었다. 레코딩보다 훨씬 생생하고 역동적인 인트로 기타 연주는 라이브만의 특별한 선물과도 같이 다가왔다. 이렇게 전해진 벅찬 감흥은 공연이 얼마나 순식간에 지나갈지 예고하는 신호이기도 했다.

연이어 세 곡을 선보인 후, 아이묭은 드디어 인사를 건넸다. 또렷한 한국어로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전하는 발음이 예사롭지 않았다. 알고 보니 1년 전부터 스태프에게도 비밀로 한 채 꾸준히 한국어를 학습해왔다고. 후방 화면을 통해 일본어 멘트를 번역해주는 세심함에도 감탄했지만, 가장 놀라웠던 건 한국어로 대부분의 소통을 이어가는 아티스트의 정성이었다. 화면 속 관객과 아이묭 머리 위에 떠오르는 돌고래 그림에 직접 그린 김밥과 소떡소떡을 더하는 등 한 발짝이라도 더 해외 팬들에게 다가가려는 진심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퍼커션을 전면에 내세워 다이내믹함을 더한 ‘ふたりの世界’는 아이묭도 예상치 못한 높은 데시벨의 합창으로 그 열기가 더욱 고조됐으며, 한층 배가된 로킹함으로 내면의 정열을 표출한 ‘マシマロ’와 ‘炎曜日’는 평소 들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인상을 안겨주었다. 간주에 기타 솔로가 폭발하며 초반부 분위기를 정점으로 끌어올린 ‘マトリョシカ’는 결코 뒤지지 않는 선명하고 견고한 아이묭의 음성과 어우러져 라이브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시너지를 발휘했다.

어쿠스틱 세션과 함께한 시간도 현장의 이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스틸 기타와 함께 목가적인 컨트리 감성을 보여준 ‘ハルノヒ’와 ‘愛の花’는 심플하기에 접근 가능한 감정의 본질을 담아냈다. 이어 기타 한 대로만 선보인 ‘偽物’는 현지 공연 세트리스트에 없던 곡이라 더욱 반갑기도 했다. 분위기를 전환해 다리 사이를 지나가는 드론 카메라와 함께 리드미컬한 자아를 드러낸 ‘私に見せてよ’를 지나 들려온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愛を伝えたいだとか’의 묵직한 비트였다. 한국 내 일본음악 재조명에 기여한 상징성이 만들어낸 전환점은 공연이 서서히 절정을 향해 나아감을 암시했다.

막판 스퍼트의 시작은 역시나 ‘君はロックを聴かない’의 몫. 어느 때보다 강렬한 합창이 곧 찾아올 공허함을 지연시켰다. 가속 페달을 더욱 강하게 밟는 ‘Ring Ding’에 이어 부스터까지 터뜨린 ‘夢追いベンガル’까지. 이 ‘페스티벌식 레퍼토리’ 향연에서 개인적으로는 일전에 관람했던 ‘SPACE SHOWER SWEET LOVE SHOWER 2023’의 무대가 겹쳐졌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잔혹시 ‘貴方解剖純愛歌 〜死ね〜’로 열기를 이어갔고, 현지 공연과 달리 ‘生きていたんだよな’까지 마친 후에야 관객들은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조금은 상기된 장내를 의식한 듯 ‘裸の心’를 통해 이별을 준비한 후, 아이묭이 감사함을 있는 힘껏 전한 뒤 울려 퍼진 ‘葵’는 마치 엔딩 크레딧 같았다. “안녕 언젠가의 소년의 그림자여 / 또 만나자 다녀왔어(サヨナラ いつかの少年の影よ また会おうな まだただいま)” 순간에 딱 맞는 가사와 선율에 자연스레 아쉬움과 애틋함 그리고 미래의 재회에 대한 기대가 교차했다. 그렇게 2시간 30분 동안 펼쳐진 스물세 곡은 각기 다른 추억의 조각이 되어 다시금 현실과 맞설 용기를 선사했다. 온전히 아이묭만이 지닌 음악의 힘이 가능케 한 순간이었다.

화려한 연출과 드라마틱한 구성은 최소화했음에도, 아이묭의 공연에는 가슴속 묻어둔 감정을 되살리는 먹먹한 무언가가 있었다. 최소한의 악기와 진솔한 노래만으로 채운 본질은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를 되새기기에 충분했다. 특히 아이묭의 라이브에는 ‘커뮤니케이션’이 있다. MC 타임에 자기 중심적 메시지는 자제하고, 관객들의 출신지를 묻거나 직접 쌍안경으로 표정을 자세히 관찰하기도 했다. ‘夢追いベンガル’의 합창 부분을 한국어로 함께 부르자고 제안하는 등 친근한 모습으로 ‘같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공유하는 그의 태도는 내적 유대감을 한껏 높여주는 요소로 분하고 있었다.

예술가보다 대중가수임을 자처하는 아이묭의 매력적인 면모는, 라이브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게끔 했다. 사실 작년 그의 시즈오카 공연에서 소통의 비중이 크다고 느꼈기에 해외에서 언어 장벽을 어떻게 넘을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공연을 통해 그의 진심을 과소평가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더불어 대형 퍼포먼스가 지배하는 대중음악 흐름 속에서, ‘음악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준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는 이처럼 유행과 거리를 둔 요소로 오히려 시대의 정서와 감성을 선도하며 ‘팝뮤직의 궁극적 지향점’에 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단순히 ‘노래 잘하는 뮤지션’이 아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질문하게 만드는 싱어송라이터’라 언급하고 싶은 아이묭. 그와 함께라면 왠지, 앞으로의 인생도 살아갈 만할 것 같다.

Copyright ⓒ Weverse Magazine.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