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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해인, 배동미(‘씨네 21’ 기자), 황선업(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EPIK HIGH YouTube

‘EPIKASE’ (에픽하이 유튜브)
윤해인: “혼자 뮤지션 행세하니깐 좋아요?” 대체 누가 23년 차 뮤지션 에픽하이 타블로에게 이 말을 건넬 수 있을까? 바로 같은 팀 멤버 투컷. 타블로가 감성적인 신곡 홍보를 위해 에픽하이 멤버들과 인터뷰를 하는 이 영상의 제목은 ‘신곡 홍보를 베프들에게 부탁하면 안 되는 이유 ft. TABLO X RM’이다. 제목 그대로, 인터뷰는 동료 이상의 ‘찐친’이어야만 가능한 농담과 디스가 난무한다. 시작부터 미쓰라와 투컷은 신곡을 함께한 방탄소년단 RM의 경력을 끝없이 소개하다, 타블로의 경력은 단 두 마디로 정리한다. “하루 아빠, RM의 친한 형.” 타블로가 진지한 음악 이야기를 이어가면 두 사람은 집중력이 급격히 낮아지거나, 그의 답변에 대해 깐족거린다. 타블로가 “이건 내가 당해본 디스 중에 제일 센 것 같아.”라며 해탈한 장면은 오직 에픽하이 채널에서만 만날 수 있는 포복절도의 광경이다.

에픽하이는 작년 12월부터 ‘에픽하이 3.0’을 표방하며, 유튜브 채널에 자체 콘텐츠 ‘EPIKASE’를 업로드 중이다. ‘애니 캐릭터 순위 정하기’, ‘아이돌 포카 월드컵’, ‘연애 상담’까지. 세 멤버들은 유튜브의 오랜 아이템들을 하나씩 소화하되, 그들만의 방식으로 비틀어 버린다. 예컨대 ‘세상에서 제일 싸가지 없는’ 애니 캐릭터 순위를 정하며 투컷을 그 최상위 기준점으로 삼는다거나, 독특하거나 유머러스해서 ‘밈’이 되어 버린 포토 카드로만 월드컵을 벌인다. 또는 애매한 ‘남사친’과의 관계를 고민하는 사연자의 질문에, 유부남인 세 멤버들이 ‘아빠’의 마음으로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돼.”를 외치기도 한다. 영상의 주제와 아이템은 매번 달라지지만, 세 사람은 콘텐츠의 전형적인 포맷이나 규칙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끊임없이 산만하게 떠들고, 삐딱한 태도로 서로에게 ‘드립’을 치거나 상황극의 기회를 노릴 뿐이다. 그래서 ‘EPIKASE’에는 세월의 호흡에 기반한 빈틈 없는 오디오와 함께, 정제되지 않아 자연스러운 유튜브 본연의 재미가 도리어 발생한다. 여기다 세 사람이 20여 년간 함께한, 사실상 동료를 넘어선 관계라는 전제는 날것의 멘트들도 유머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또한 역술가가 관악산을 오르면 운이 좋을 것이라 말한 ‘신년 사주’ 콘텐츠 다음에 ‘관악산 등산’ 영상을 찍는 아이템 선정, 적절한 자막과 편집을 더한 제작진의 센스는 에픽하이 특유의 유쾌함을 효과적으로 극대화시킨다. 타블로가 “진지한 영상을 올리기가 살짝 애매한 상황”이라 말할 정도로, 이제 이 채널은 이들의 본업이 무엇인지 착각하게 만들 지경이다. ‘워터밤 마닐라’ 공연을 위해 해외에 방문했지만, 정작 에픽하이가 올린 영상은 필리핀 유명 치킨 브랜드 비교하기인 것처럼. 농담 같았던 ‘에픽하이 3.0’의 설명이 점점 진담처럼 다가오는 이유다. “창작자, 아티스트, 음유시인, 작사가(Lyricist), 비트 장인, 예술가. 하지만 ‘에픽하이 3.0’은 앞에 있는 수식어 다 빼고. 그냥 크리에이터.”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배동미(CINE21 기자): "배우가 문으로 들어오면 아무 일도 아니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면 하나의 상황이 생긴다." 할리우드 황금기를 이끌었던 빌리 와일더 감독이 남긴 말이다. 영화 속 캐릭터라면 인상적으로 등장해야 하며, 일상의 리듬에서 비껴나 돌발적으로 행동하지만, 그런 면이 매력적으로 느껴져야 한다는 의미로 확장해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다. 영화의 이 특별한 역량을 평생에 걸쳐 수행한 배우가 있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높은 부르즈 할리파의 창문을 깨부수고, 맨손으로 데드 호스 포인트 암벽을 등반했으며, 이륙하는 비행기에 맨몸으로 매달렸던 배우 톰 크루즈다. 그런 그가 시리즈의 8번째 영화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으로 돌아왔다.

인상적인 액션을 활기차게 선보이며 주인공 에단 헌트(톰 크루즈)를 등장시키는 전작들과 달리,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은 정적이고 무거운 분위기로 비밀 요원을 불러낸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악당이 된 세상. 인공지능 엔티티는 전 세계 모든 시스템을 감염시키고, 종말론적 종교를 만들어내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디지털 주인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 비물질적 존재는 전 세계 핵 시설을 해킹하여 인류를 절멸시키려 들고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정부 기관 곳곳에 암약해 정부의 노력을 무력화하는 가운데, 엔티티를 제거할 열쇠를 쥔 에단은 유령 같은 존재와 싸우는 불가능한 미션에 돌입한다. 

그간 인간 빌런과 싸워온 에단 헌트는 안개 같은 존재와 싸우게 됐지만, 그가 직접 몸으로 감당하는 액션은 여전히 찬탄을 자아낸다. 특히 엔티티를 제거할 수단을 찾기 위해 바다 깊은 곳에 침몰해 있는 잠수함에서 벌어지는 수중 액션 신은 대단히 압도적이다. 어두운 잠수함 안에 살아 있는 인간이라곤 에단 헌트뿐이고, 비밀 요원은 차오르는 물, 폐를 망가뜨릴 만큼 높은 수압과 싸운다.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은 자연의 물리적 위력에 압도되는 한 인간을 표현하기 위해 익스트림 롱숏을 자주 활용한다. 1996년에 시작한 ‘'미션 임파서블’'이란 영화적 여정은 그렇게 톰 크루즈라는 인간 배우를 소실점으로까지 축소시킨다. 액션 신과 액션 신 사이 연결은 다소 헐겁게 다가오지만,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압도적인 운동성을 마주할 때면 관객은 숨을 몰아쉴 것이다. 아울러 오랫동안 시리즈와 함께한 관객이라면,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이 전작의 설정과 인물을 소환하여 유기적으로 엮은 대목에서 감동에 젖을 것이다. 오랜 시간 관객에게 추억을 만들어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참 고맙습니다.

‘Completeness’ - 아베 무지카
황선업(대중음악 평론가): 밴드 애니메이션이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하고 있는 지금, 이 앨범만큼 일본 대중문화 속에서 음악과 성우업계, 애니메이션 간의 시너지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또 있을까 싶다. 미디어 믹스 프로젝트 ‘BanG Dream!’의 최신작에 등장하는 팝/메탈 밴드 아베 무지카(Ave Mujica)의 작품을 표방한 이 앨범은, 성공적인 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의 구현을 위해 본 산업이 얼마나 고도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애니메이션의 배경음악 이상의 독립적인 생명력을 발하고 있는 모습에서, 제목이 암시하는 ‘완전함’을 향한 집요함마저 느껴질 정도다.

고딕 메탈의 문법을 J-록의 감수성으로 재해석한 ‘KiLLKiSS’, 불규칙한 리듬 패턴이 이색적인 댄서블함을 선사하는 ‘八芒星ダンス’, 클래시컬한 피아노 연주에 이은 현대적 편곡이 기묘한 아름다움을 펼쳐 보이는 ‘Georgette Me, Georgette You’까지. 애니메이션의 인기를 떼어 놓고 봐도, 음악적 설득력이 가득한 트랙들이 즐비하다. 사운드 프로듀서를 맡은 디기-모’(Diggy-Mo’)는 본래 힙합 그룹인 솔드 아웃(SOUL’d OUT)의 전 멤버. 익히 알려진 커리어를 뒤로하고, 피아노를 통해 닦은 음악적 기반이 뛰어나고도 독창적인 결과물을 빚어내며 이 캐릭터 밴드를 단숨에 기성 팀들과 동일선상에 올려 놓는다.

해당 시리즈의 선배 격인 로젤리아(Roselia)보다도 한층 어둡고 무거운 음악적 접근은, 더 이상 서브컬처 씬 신에 정해진 공식이란 없음을 증명한다. 여기에 국제 주니어 피아노 콩쿠르에서 수상한 바 있는 오블리비오니스 역의 타카오 카논, 뮤지컬에서 먼저 두각을 보인 돌로리스 역의 사사키 리코, 애초에 드러머가 경력의 시작점인 아모리스 역의 요네자와 아카네 등 각기 다른 전문성을 지닌 인재들이 모여 있는 모습에서, 일본의 성우 씬이 더욱 전문화된 멀티엔터테이너의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BanG Dream!’ 시리즈가 걸어온 길 중 가장 과감한 일탈이나, 이는 오랜 기간 쌓아온 유산이 있기에 가능한 진화라고도 언급할 만하다. 밝고 희망찬 아이돌 밴드의 공식에서 벗어나 아베 무지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불완전한 존재들의 몸부림이 결국 완성에 가까운 예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역설 아닐까.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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