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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업(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호시노 겐 인스타그램

이 앨범을 들으며, 첫 감상엔 호시노 겐이 제시한 신세계에 쉬이 동화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새롭게 꺼내든 하얀 캔버스 위를 이전과는 다른 붓질로 메워낸 풍경. 몇 년에 걸쳐 구축한 그 생경함을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었건만, 아무래도 블랙 뮤직과 일본 음악의 교집합을 통해 일본을 호령했던 근 5~6년간의 임팩트가 워낙에 컸던 탓이었겠거니 싶었다. 확실한 것은, 그는 ‘Pop Virus’(2018)의 대히트와 돔 투어의 완수를 기점으로 이전과의 커리어와는 명확히 선을 그었다는 사실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일본을 대표하는 팝스타로 거듭난 그였지만, 정작 본인에겐 점점 압박과 상실로 점철된 사투로 다가왔던 셈. 그렇게 당분간 음악과는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새로운 영감을 가져다준 이들이 있었다. 바로 주변의 동료들이었다. 

햇수로 7년 만에 선보인 신보 ‘Gen’의 기원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엔 ‘Same Thing’(2019)이 있다.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우연찮은 기회로 성사된 협업 기반의 미니 앨범. 비트 중심의 곡조에 랩과 보컬을 오가며 그려낸 낯선 경치는, 10개월 전 ‘Pop Virus’를 발매한 그 호시노 겐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자아낼 기세였다. 그는 이 EP를 계기로 다시금 창작에 대한 즐거움을 발견했노라 언급한 바 있다. 슈퍼올가니즘(Superorganism), 펀피(PUNPEE), 톰 미쉬(Tom Misch)처럼 평소의 그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스타일을 지닌 이들과 함께한 결과물은, 새로운 사운드 탐구의 계기로 작용하며 항해하는 배의 조타수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리게 된다. 

사실 호시노 겐에게는 수많은 페르소나가 있다. 가수, 배우, 문필가, 라디오 DJ, 기타리스트, 싱어송라이터까지.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와 삽입 곡 ‘恋’를 통해 세대를 초월한 인기를 누리기 전에도, 이미 그는 다방면에서 러브콜이 쏟아지던 유능한 멀티 엔터테이너였다. 물론 그 역시 데뷔 초에는 많은 부침을 겪었지만, 하나씩 돌을 괴어 각도에 따라 다른 그림자를 만드는 탑을 쌓아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음악 커리어만 한정해서 봐도 인스트루멘탈 밴드 사케록(SAKEROCK)의 기타리스트로 스타트를 끊은 것이 2000년의 일. ‘Gen’은 앞서 언급한 우연을 기반으로 그간의 경력과의 단절을 일궈낸 앨범이라는 점에서,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의무감이 생기는 작품이기도 하다.

앞서 동료 뮤지션과의 협업을 이야기했지만, 호시노 겐에게 또 하나의 발단이 된 것은 코로나19였다. 단숨에 활동이 제한되어 버린 그는 오랫동안 묵혀두고 있었던 DAW(Digital Audio Workstation) 기반의 작업 방식을 배우기 시작했고, 드러머이자 프로듀서로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마바누아(Mabanua)와의 합작을 통해 ‘創造’(2021)를 발표한다.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 35주년을 기념해 만든 이 작품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결의 외연을 갖추고 있다. 첫째, 리얼 세션 대신 미디 작업으로 쌓아올린 비트가 곡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점. 둘째, 자신의 취향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요소요소에 숨 쉬고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별도 데모 제작 없이 수많은 수정을 거쳐서 만든, 작업 과정의 모든 손길 하나하나가 스며들어 있는 결과물이라는 점. 그 과정이 즐거워 어쩔 줄 몰랐다고 언급하는 그의 한마디에, ‘리스너로서의 자신을 즐겁게 하는’ 그리고 ‘진정으로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음악’을 굳이 시행착오를 숨기지 않고 만들어 나가겠다는 방향성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물론 복잡한 구성을 이처럼 대중적인 팝 뮤직으로 승화시킨 것은 그가 가진 재능의 영역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터. 

그렇게 오랜 시간을 공들여 탄생한 7번째 스튜디오 작품 ‘Gen’은, 확실히 이전엔 전장에 가까웠던 팝 씬을 호시노 겐이 자신의 놀이터로 크게 품는다는 인상을 준다. 이전의 그의 작품이 명확한 메시지 혹은 음악적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이번엔 그가 ‘전달에 대한 의지’를 완전히 내려놓고 ‘작업에 몰두한 자신’ 그 자체를 남겨놓는 데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는 그는 싱어송라이터에서 트랙메이커로 거듭났음을 선언한다. 앞서 언급한 ‘創造’도 그렇지만, 루이스 콜의 드럼을 가공해 빅비트에 가까운 역동성을 빚어낸 ‘Glitch’, 무려 5년간 수정하고 겹쳐낸 그 여정이 기타를 들고 작업하던 시절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멜로디에 대한 명복을 비는 듯한 ‘Eureka’, 인트로의 전조로 뉴잭스윙의 둔탁함에 상냥함을 덧씌우는 ‘Why’와 같은 곡들은 그 변화를 감지하게끔 한다. 맥(Mac) 앞에서 때론 골몰히 생각에 빠지고, 때론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을 호시노 겐의 얼굴이 자연스레 연상되는 트랙들이다. 무엇보다 작업해온 음악에 대한 흔적을 차곡차곡 쌓아왔기에 느껴지는 온기가 괜스레 반갑게 느껴진다.

또 하나, ‘Gen’은 다양한 국가의 뮤지션들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국경과 장르를 완전히 탈피했다. 그의 음악은 더 이상 ‘일본 음악’이라 정의내릴 수 없는 지점에 있다. 단순히 외국어를 썼다거나 영미권의 트렌드를 끌어왔기 때문이 아닌, 일본어로 불리든 영어로 불리든 혹은 다른 나라의 언어로 불리든 전혀 상관없는 영역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영지가 피처링을 맡으며 화제를 모았던 ‘2 (feat. Lee Youngji)’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만하다. ‘二人を超えてゆけ’라 목소리를 높였던 ‘恋’와 같이 ‘둘’은 결국 ‘하나’로 수렴된다는 의미를 3개 국어로 전개하는 와중에, 이 노래의 본질은 언어가 아닌 두 뮤지션 간의 따스한 하모니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런가 하면 같은 선율을 영어와 일어, 스페인어로 동시 전개하는 ‘Memories (feat. UMI, Camilo)’는 자신의 음악이 일정한 장소로 묶여 있을 수 없는 자유도를 보유하고 있음을 보란 듯 증명한다. 입체적인 퓨전 재즈 사운드와 현란한 관악기 연주, 다이내믹한 비트가 맞물려 돌아가는 ‘Mad Hope (feat. Louis Cole, Sam Gendel, Sam Wilkes)’ 역시 힘을 합쳐 국가라는 장벽을 무너뜨린 대표적인 수록 곡이라 할 만하다. 

이 와중에 누군가 굳이 이전과의 연결고리가 없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그에겐 ‘喜劇’를 꼭 들려주고 싶다. 사실 음악적으로 봤을 땐 어느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되지 않겠다는 호시노 겐의 의지가 가장 잘 드러난 트랙이기도 하다. 가성 중심의 후렴, 여러 음색의 신시사이저가 겹쳐 빚어내는 소리 세계, 블랙 뮤직에 가까운 비트 운용 등 전체적인 매무새가 기존 일본 음악의 공식을 무너뜨리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트랙이 전 세대의 사랑을 받는 애니메이션 ‘스파이 패밀리’ 엔딩 곡으로 타이업되었던 이유는, 그 메시지가 결국 “시시한 생활을 계속”하는 그와 우리의 인생을 관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는 절망과 희망. “의미 같은 건 없어, 매일의 생활이 있을 뿐”이라 노래하는 ‘恋’도 그렇지만, 우리가 의도하고자 하는 것은 거의 그대로 가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하는 ‘地獄でなぜ悪い’의 메시지로도 이어지는 듯하다. 

강박을 벗어던진 일종의 ‘놀이’처럼 만들어 가는 음악. 그러니 자유롭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이 앨범이 마치 게임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처럼 느껴진다. 그 광활함에 어찌할 줄 몰라 헤매다가도, 탐험을 거듭할수록 그 안에는 너무나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느껴지는 희열. 앨범 한 장 안에 너무나 많은 길을 제시하는 이 신보는 일정한 것을 강요하는데 익숙한 대중문화 속 독자적인 위치를 점한다. 듣고 듣고 또 들으며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계속 발견하게 되는 작품이라 언급하고 싶다. 그것이 소리든, 멜로디든, 가사든 간에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만나러 오는 과정에서 호시노 겐은 고독과 근심, 지옥과 희망, 절망과 환희의 양가적인 감정을 수없이 반복해 경험했다. 이 모두를 끌어안으면서도, 어느 하나 이를 부정하지 않은 이가 자신만을 위해 풀어놓는 음악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결국 대중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하게 함으로써, 내 몸 안에 나는 부정적인 열을 단숨에 앗아가는 해열제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깨닫는 것은 예상치 못한 인생의 사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지금, 호시노 겐은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와 어느 때보다 자신의 마음속을 깊이 잠수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취향을 탐색하고 있다. 바로 당신의 심연과 연결되어 있을 그 생명의 문을 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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