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요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넷플릭스)
오민지: “세상은 너희를 팝스타로 알겠지만 너희는 훨씬 더 중요한 존재가 될 거다. 너희는 헌터가 될 거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걸그룹인 ‘헌트릭스’에게는 숨겨진 사명이 있다. 퇴마사로서 음악으로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 세상을 지키고, 악령과 그들의 우두머리 귀마를 몰아낼 방패 ‘혼문’을 만드는 것. 이를 막기 위해 저승사자 보이그룹 ‘사자보이즈’가 데뷔하고, 헌트릭스는 무대 위에서는 노래로, 무대 아래에서는 헌터로서 그들과 맞선다. 하지만 아이돌의 화려함과 헌터의 강인함 뒤에는 결점과 두려움이 숨겨져 있다. 퇴마사 어머니와 악령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악령 문양을 갖고 태어난 루미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실수라 느끼지만, 혼문이 완성되면 자신의 문양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 믿는다. 집안의 골칫거리였던 미라는 자신의 약점을 이해해줄 가족을 원하고, 조이는 쓸모없어 보이는 자신의 생각과 가사가 의미 있길 바란다. 하지만 숨겨진 결점들은 결국 이들을 무너뜨린다. 모두의 환호를 받던 순간 루미는 평생을 치부라고 여기며 숨겼던 문양을 들키고, 그로 인해 미라와 조이가 혼란스러울 때를 틈타 귀마가 이들의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리며 속삭인다. “가족이 생긴 줄 알았지? 넌 그럴 가치가 없어. 언제나처럼.”, “넌 너무 과해. 그리고 부족해. 네가 속할 곳은 없어.” 악령으로부터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쉴 틈 없이 달려왔던 히어로들은 정작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었다. 세상을 지켜줄 거라 생각했던 혼문도 완성되지 못한 채 부서졌다.
“제가 지켜야 할 혼문이 그런 거라면 파괴되는 게 낫겠어요.” 혼문을 만드는 데 실패한 루미에게 양어머니 셀린은 다시 모든 걸 바로잡을 때까지 문양을 가리라며 결점과 두려움을 숨겨야 혼문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루미는 처음으로 이에 맞선다. 악령들을 처단하면서도 정작 그들과 같은 문양을 가린 채 헌터로 살았던 그는, 이제 그 문양을 스스로 드러낸다. “산산이 부서진 나 / 돌이킬 수 없어 / 하지만 깨진 유리 조각들 /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 / 상처는 나의 일부”라고 노래하는 루미의 모습은, 깨진 조각을 이어 더 큰 아름다움을 더하는 킨츠기처럼 보인다. 그는 깨진 자신을 감추는 대신, 결점을 드러내며 자신을 더욱 단단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나를 망가뜨릴 것만 같았던 결점은 사실 나에게 아무런 해도 가할 수 없고, 모든 게 산산조각이 났다고 생각한 순간 도리어 그 깨진 조각들이 나를 더 빛나게 한다. 루미는 헌터이자 악령인 자신의 상처가 ‘나의 일부’임을 긍정하고, 조이는 자신의 ‘머릿속 색깔들’을, 미라는 ‘날카로운 모서리들’ 같은 성격을 감출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불렀던 노래는 헌트릭스 자신들을 지키는 힘이 되어, 이들은 귀마를 몰아내고 새로운 혼문을 만든다. 그렇게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자신들의 목소리로 “영웅은 아니어도 우리는 살아남아” 세상을 지키기를 꿈꾸고, 자신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간다.

‘Whole of Flower’ - 서치모스(Suchmos)
황선업(대중음악 평론가): 그야말로 화려한 귀환이라 할 만하다. 지난 6월 21일과 22일 양일간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단독 공연을 개최하며 대중의 곁으로 돌아온 서치모스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들이 누군가? 블랙뮤직을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리며 J-팝이 ‘갈라파고스’라는 오명을 벗게끔 만들었고, 시부야계의 유행 이후 다시금 음악이 대중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현상으로 등극하게끔 한 혁신가들 아닌가? 활동을 중단한 2021년 이후 4년이 지나도록 크로이나 오츄니즘, 칠즈팟과 빌리롬, 리콘덴세츠 등 ‘포스트 서치모스’의 등장이 끊이지 않는 것만 봐도 이들의 존재감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7월 2일 새 EP 발매를 앞두고 선보인 선공개 곡 ‘Whole of Flower’는 서치모스가 자신들이 돌아왔음을 명확히 알리는 일종의 축포 같은 곡이다. 경쾌한 발걸음과 같은 리드미컬함, 재즈의 양식을 십분 반영한 즉흥적인 느낌의 간주 등 조금만 들어봐도 이전과는 또 다른 챕터의 하이브리드 뮤직을 써 내려가겠다는 의욕이 가득하다. 잠시 숨을 고르며 ‘증명’의 압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을 획득한 이들. 과연 팀이 앞으로 재차 일으킬 ‘문화 혁명’은 어떤 모습일지. 그 영향력이 유효함을 단 한 곡으로 증명함과 동시에 지속적인 개화 또한 약속하는, 과거와 미래가 만나 빚어내는 ‘전에 없던 지금’을 만나볼 수 있는 인상적인 컴백작.
‘경험의 멸종’ - 크리스틴 로제
김복숭(작가): 기술이 우리에게 반드시 좋은 영향만 주는 건 아니라는 걸,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화면에서 눈을 떼기란 쉽지 않다. 아니, 떼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때론 아예 불가능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게 더 무섭다. 유용하고 재미있는 이 디지털 세계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크리스틴 로젠의 ‘경험의 멸종’은 그런 질문에 대한 경고처럼 다가오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점점 더 많은 결정을 앱에 맡기고 있으며, 그것이 편리하고 흥미롭더라도 결국 우리만의 고유함을 잃게 만든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인간성을 잃는 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성이란, 실제 공간에서 주고받는 대화처럼 진짜 의미를 가진 경험을 모두 포함한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생각해보면 또 받아들이기 힘들 때도 있다. 음모론이나 에코 챔버(반향실 효과)의 확산은 분명 문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틱톡 챌린지를 너무 많이 하는 것에도, 피드에 집착하는 것에도, ‘먹방’에도 어두운 면이 존재할 수 있을까? 로젠은 그런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감의 태도를 유지한 채, 친구 대신 알고리즘과 취향을 공유하게 되는 이 시대의 선택을 한 번쯤 되짚어보자고 제안한다.
물론 유튜브를 당장 끊을 필요는 없다. 대신 가끔은 스스로에게 심심함을 허락해보며, 작은 불편함쯤은 감수해도 괜찮다는 걸 항상 떠올리자. 집중력을 기르고, 더 깊고 생생한 관계를 만들고, 더 큰 자기성장과 나다운 삶으로 향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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