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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업(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부산국제록페스티벌 X

일본 음악의 족적을 오랜 기간 좇아온 나로서는, 스파이에어라는 존재가 참으로 각별하다. 거의 ‘맨땅에 헤딩’과 같은 도전으로 한국 내 무시 못할 인지도를 쌓은 전대미문의 그룹이기 때문이다. 서현역에서 ‘ジャパニケーション’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것이 어느덧 14년 전의 일. 이후 그들은 매년 바다를 건너와 음악 방송과 단독 라이브, 페스티벌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며 자력으로 7년 만에 KBS 아레나를 매진시키기기에 이르렀다. 코로나19로 인한 원치 않은 라이브 활동 중단, 부침이 있었던 팀 상황 때문에 재회의 기회가 좀처럼 찾아오지 않던 시기에도 한국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던 그들이었다.

전열을 가다듬어 2023년 ‘부산국제록페스티벌’ 무대로 위풍당당히 재림, 수많은 관객을 열광시키며 아직 한국에서의 인기가 건재함을 관계자들 앞에서 똑똑히 증명했다. 그렇게 새로운 지지자들의 기세를 업고, 지난 6월 21일과 22일 양일간 스파이에어는 공연 ‘Road to BU-ROCK ~ SPYAIR ASIA TOUR 2025 -BUDDY- in Seoul’로 예스24 라이브홀에서 멋지게 귀환했다. 이들이 이곳에서 무대를 펼치는 것은 근 10년 만의 일이었다. 특히 의미 깊었던 것은, ‘부산국제록페스티벌’ 운영진이 국내외 음악가들에게 다양한 무대를 제공하며 문화적 다양성을 도모하고자 하는 ‘Road to BU-ROCK’ 프로그램과 연계한 공연이라는 점이었다. 지난 3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본 프로그램은, ‘부산국제록페스티벌’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준 해외 아티스트에게 한번 더 활약할 무대를 만들어주는가 하면, 가능성 있는 국내 음악가들을 해외에 소개하는 등 1회성 섭외에서 나아가 음악적 다양성을 도모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다. 이런 뜻깊은 의도와 함께 펼쳐질 라이브를 앞두고 이미 관객들의 에너지와 열기는 광나루역 부근의 노을을 더욱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인트로로 머틀리 크루의 ‘Kickstart My Heart’가 울려퍼진 후, 오늘의 네 영웅이 차례로 등장. 요스케의 샤우팅과 함께 본격적인 공연의 막이 올랐다. 1층뿐만 아니라 2층에 있는 관객들도 자리에서 일어날 것을 종용하며 시작되는 곡, 바로 자신들이 새로 태어났음을 알리는 ‘RE-BIRTH’였다. 막 첫 곡이 시작되었을 뿐인데도 실내는 마치 야외 록 페스티벌을 방불케 했다. 개인적으로 이들을 마지막으로 봤던 것이 2017년 ‘한일 슈퍼락 페스티벌 그레이트미팅’이었는데, 그때와는 사람들의 반응이 또 다르다는 것을 단숨에 감지할 수 있었다. 조금 더 능동적으로 본인들의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고 할까. 이 대목에서 확실히 부산에서의 무대를 통해 유입된 이들의 비중이 적지 않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어지는 무대에서 그들의 자신감은 더욱 단단해졌다. ‘FEEL SO GOOD’의 시작과 함께 요스케는 “어서오세요! 스파이에어의 라이브에!”라고 소리치며 관객들을 반겼다. 박자에 맞춰 모두의 목소리가 하나로 겹쳐졌고, 중간중간 요스케는 마치 아이돌과 같은 제스처와 무대 매너로 자신의 끼를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험이 많지 않음에도 이와 같은 수준급의 완급 조절은, 그가 단순히 대체제가 아닌 지금의 밴드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오늘 모든 걸 쏟아붓겠다.”며 각오를 다짐과 동시에 재차 2층 관객들에게까지 일어설 것을 당부하는 모습에서, 이미 오늘의 주인공으로서 러닝타임을 리드하겠다는 당당함을 엿볼 수 있었다. 마치 1985년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속 프레디 머큐리를 연상케 하는 “에-오” 구호 역시 요스케의 캐릭터를 목격할 수 있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록 음악사의 아이콘을 장난스럽게 재현하는 그 모습을, 멤버들이 마치 막내 동생의 재롱을 보는 듯 친밀감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는 광경이 사뭇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했다. 보다 헤비하게 편곡된 ‘WENDY ~It’s You~’는 나에게도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이들이 완벽히 재탄생했음을 알려주는 시간으로 자리했다.

‘One Day’와 ‘アイム・ア・ビリーバー’를 거친 후, 요스케는 공연 매진에 대한 감사 인사를 보내며 “앞으로도 한국을 방문하고 싶은데, 결국 그건 오늘 여러분한테 달려 있는 것 같다.”는 발언을 통해 앞으로도 꾸준히 자신들을 응원해주기를 바라는 갈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게 어느덧 15살을 훌쩍 넘긴 ‘Last Moment’를 지나, 예고 없이 등장한 곡은 바로 전날 세트리스트엔 부재했던 ‘サクラミツツキ’였다. 이들의 최대 히트 곡 중 하나이기도 한 만큼, 의외의 만남에 많은 이들이 감격하는 모습이었다. 그 애수 어린 멜로디가, 잠시 끊겼던 과거와 현재를 무리 없이 하나로 엮어내고 있었다.

잠시 요스케가 백스테이지로 이동했다. 켄타와 모미켄, 유지가 함께 풀어내는 회고담을 마주할 시간이 되었다. ‘ジャパニケーション’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이후 한국에 자주 오게 되었고, 이렇게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새삼 감격스러워 하는 모습이었다. 정말 오랜 기간을 스파이에어로 살아온 세 명만의 유대감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여기에 유지가 ‘바나나 우유’를 꺼내들며 건배를 제안했고, 모미켄과 켄타도 생수병으로 이에 응하며 다시 돌아오게 된 지금에 감사함을 표했다. 한국이라는 지리적 공간은, 그들에게 단순한 공연 장소를 넘어 정서적 고향과도 같은 의미로 자리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처럼 다가왔던 ‘My Friend’를 지나, 이제 전력으로 달려나갈 일만 남았다. 레이저 효과가 더해지며 시각적 스펙터클을 강화한 ‘Buddy’와 묵직한 사운드의 ‘STRONG’은 점차 피날레로 향하는 서사적 긴장감을 조성했고, 역시나 어제는 등장하지 않았던 추억의 곡 ‘JUST ONE LIFE’가 다시금 반전의 묘미를 선사하며 분위기를 절정으로 이끌었다. 켄타의 역동적인 드러밍이 압도적이었던 ‘ファイアスターター’에서는 유지의 랩 파트가 스피디한 전개를 견인했고, ‘RAGE OF DUST’의 간주에서는 드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세 명의 앙상블을 통한 카타르시스가 통렬히 전개되는 모습이었다.

마지막 MC에서 요스케는 “이게 가능했던 것은 여러분 덕분이다. 아름다운 경치를, 풍경을 함께 앞으로도 만들어 나가자.”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냈다. 곧이어 울려 퍼지는 ‘Orange (オレンジ)’는 그 쉬이 사라지지 않을 여운을 고스란히 승계하는 곡이었다. 현악 세션을 타고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는 곡조가 폰라이트의 불빛과 어우러져 조금씩 이별의 순간을 그려내고 있었다. 여기에 “모든 걸 쏟아붓겠다.”는 초반의 약속을 지키듯 상승 기조의 ‘イマジネーション’이 마지막을 장식했고, 요스케는 중앙 통로로 내려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더없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다.

이대로 물러설 팬들이 아니었다. 하나 된 목소리로 청명히 울려 퍼지는 ‘SINGING’의 하모니에 밴드는 절대 빠뜨려서는 안 될 시그니처 송인 ‘サムライハート(Some Like It Hot!!)’로 화답하며 재등장했다. 러닝타임 내내 끊이지 않는 ‘떼창’과 타월 돌리기는 왜 이 곡이 팀을 상징하는 곡인지를 증명하는, 정말 ‘하나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려주는 듯했다. 이어 라이브 실황이 한국 영화관에서 상영될 예정이라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現状ディストラックション’로 이틀간의 드라마를 장엄하게 봉인했다. 치밀하게 설계된 세트리스트는, 120분여의 시간이 이렇게 찰나의 순간일 수도 있음을 재차 확인시켜줬다.

이번 공연을 통해 확실히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이들의 지금 획득한 인기는 과거의 명성에 기댄 향수가 아닌, 현재의 ‘아우라’로 새롭게 구축한 팬덤이라는 점이다. 더불어 새로이 가세한 요스케의 음색에선,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관객을 감화시키는 온화함이 있었다. 이는 분명 대체가 아닌 진화였고, 계승이 아닌 창조이기도 했다.

이날 공연을 통해 스파이에어는 한 가지 중요한 명제를 재차 증명해내고야 말았다. 음악에는 국경이 없고, 진정성은 언어를 초월한다는 사실 말이다. 여기에 때로는 위기가 더 큰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것까지. 10년 만에 다시 찾은 예스24 라이브홀에서 그들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공연을 넘어선,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선언이었다. 예전의 각별함을 빛바랜 추억이 아닌 더욱 선명한 현재로 되살려낸 그들의 위용을 목격하며,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 과연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다시금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가 충분히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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