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봄, 애디슨 레이(Addison Rae)는 미국 NBC의 토크 쇼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 출연했다. 그는 데뷔 싱글 ‘Obsessed’ 무대와 틱톡 댄스 릴레이를 선보였다. 틱톡의 유명 인플루언서 출신으로서 신곡 소개와 함께 챌린지 댄스 시간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기획이다. 그보다 1년 전에 찰리 더밀리오(Charli D’Amelio)가 출연해 동일한 포맷의 댄스 릴레이를 보여주어 새로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애디슨 레이의 경우는 음악 경력을 끝낼 수도 있는 홍보 실패의 사례로 남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명시적인 문제는 틱톡 댄스의 오리지널 안무가를 언급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찰리 더밀리오가 출연했을 때도 ‘Renegade’ 챌린지의 원작자 잘라이아 하몬(Jalaiah Harmon)에게 크레딧이 돌아가지 않았다는 지적은 있었지만 대중적 논란의 수준에는 이르지 않았다. 하지만 애디슨 레이의 경우 반응은 훨씬 즉각적이고 거셌다. 지미 팰런은 다음 방송에서 직접 이 문제를 언급하며 댄스 원작자들을 화상으로 초대해 그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주는 코너를 따로 마련해야 했을 정도다. 그 이유로 2020년과 2021년 사이에 유명 틱톡커들이 타인의 오리지널 안무로 이득을 얻는다는 부정적 인식이 확산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찰리 더밀리오는 단순히 ‘화제의 인물’이었고, 애디슨 레이는 ‘신인 음악가’였다.

당시 대중은 이미 인플루언서가 가수로 데뷔하는 트렌드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이는 대중음악계의 오래된 ‘진정성 요구’와 맥이 닿는다. 다시 말해, 음악적 재능과 노력보다 유명세를 돈으로 바꾼다는 인식이다. 인플루언서가 바이럴을 만들고, 바이럴이 히트 곡을 만든다면, 인플루언서가 음악가가 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러한 산업적 아이디어는 예술적 가치보다 팔로워 수를 우선하기 마련이다. 2020년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애디슨 레이는 자신의 성공 비결은 ‘꾸준함’이라고 밝히고, 하루에 3~5개의 콘텐츠를 업로드한다고 밝혔다. 이렇듯 전문 크리에이터라는 명성은 그가 음악 경력을 시작할 때 오히려 양날의 검이 되었다. 그는 예술가 이전에 마케터로 보였고, 대중은 그를 창의적 동력이 아니라 상품으로 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Obsessed’에 대한 혹평은 이미 장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베니 블랑코(Benny Blanco), 블레이크 슬래트킨(Blake Slatkin) 같은 검증된 히트 메이커도 역전에 이르지는 못했다. ‘Obsessed’의 “나는 너 만큼이나 나 자신에게 빠졌어”라는 가사는 영리한 자기애를 표현하고자 한 의도와 동떨어져 피상적인 나르시시즘으로 보였다. 이는 인플루언서 문화에 결부된 고정관념과 호응한다. 여기에 지미 팰런 쇼 무대에서의 립싱크 논란, 틱톡 댄스의 크레딧 누락처럼 각각 하나씩만 바라보면 넘어갈 수도 있었던 문제가 한데 뭉쳐 ‘퍼펙트 스톰’을 만들었다.
이 폭풍은 ‘Obsessed’ 이후 데뷔 앨범 계획을 폐기로 몰았다. 이후 인터뷰에 따르면, 애디슨 레이는 ‘음악을 포기’하는 것을 고려했다. 최근 그는 이 사태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건설적 비판의 여지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건 거의 노래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노래를 하는 나에 대한 것이었다.” 요컨대 과했는가? 아마도. 동시에 ‘Obsessed’는 그것을 만든 사람이 당면한 회의론을 상쇄하는 가치를 제공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애디슨 레이는 침몰하지 않았다.

2022년 초, ‘잃어버린 데뷔 앨범’의 미발표 데모 일부가 온라인에 유출되었다. 대부분 이런 유출은 위기로 취급된다. 하지만 애디슨 레이에게는 반전의 시작이었다. ‘I Got It Bad’와 ‘2 Die 4’는 틈새 취향을 자랑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히트 곡이 되었다. ‘Nothing On (But The Radio)’은 레이디 가가(Lady Gaga)가 ‘Born This Way’ 시절 녹음한 미발매 곡으로 그의 팬들에게는 이미 유명했다.
이 곡들은 대중문화의 신화로 이어졌다. ‘잃어버린 앨범’은 빛을 보지 못한 잠재력이며, 그 수록곡은 스트리밍에서 들을 수 없는 좋은 노래이고, 심지어 이 아티스트는 레이디 가가 같은 팝계의 로열 패밀리와 연결되어 있었다. ‘Obsessed’는 결정적 싱글이 아니라 예외적인 실수가 되었다. 애디슨 레이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아티스트 중 하나인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의 특별한 아우라를 물려받을 준비가 되었다. ‘이미 충분히 유명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사실은 훨씬 더 훌륭한 아티스트.’

2023년 8월, 애디슨 레이는 ‘잃어버린 앨범’의 일부를 공식 발매했다. 4곡이 수록된 EP ‘AR’은 명예 회복이나 구출 작전이 아니라 음악을 지지해준 충성도 높은 팬들을 위한 선물로 선언되었다. ‘2 Die 4’의 공식 버전에는 찰리 XCX가 참여했다. 그는 팝 장르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비평적 존경을 받는 인물로 널리 인정받으며, 애디슨 레이가 다음 단계의 신뢰를 얻는 다리를 놓아주었다. 특히 ‘2 Die 4’ 유출 이후 찰리 XCX는 애디슨 레이에게 직접 연락해 피처링을 제안했다고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참여는 기획성 협업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예술적 존중의 결과다.
이 관계는 1회성에 그치지 않았다. 애디슨 레이는 2024년 찰리 XCX의 ‘Von Dutch’ 리믹스에 피처링 아티스트로 초대받아 ‘브랫’ 열풍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 인터뷰에서 애디슨 레이는 찰리 XCX를 “큰언니이자 멘토(big sister and mentor)”라고 부르고, 찰리 XCX는 ‘천재’라고 화답한 바 있다. 찰리 XCX만이 아니다. 아르카(Arca), 로잘리아(Rosalía), 트로이 시반(Troye Sivan) 같은 아티스트와의 협업 혹은 교류는 애디슨 레이가 팝 음악의 대안적 생태계에 속한 일원임을 강조했다. ‘읽어버린 앨범’을 발견한 틈새 취향의 팬들에게 그들의 지지와 보증은 그들의 발견이 옳았다는 만족을 준다. 자연히 그들은 애디슨 레이의 충성스러운 기반이 되었다.

2024년, 애디슨 레이는 컬럼비아 레코드와 계약하며 데뷔 앨범 ‘Addison’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2024년 8월 첫 싱글 ‘Diet Pepsi’는 널리 호평을 받으며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의 초기 작업과 비교되었다. 이 노래로 애디슨 레이는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처음으로 진입하고, 최고 54위를 기록한다. 뒤이어 2025년 4월까지 이어진 ‘Aquamarine’, ‘High Fashion’, ‘Headphones On’ 공개는 새 앨범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고, 궁극적으로 아직 남아 있던 회의론자까지 설득할 만큼 명확하고 매력적인 예술적 비전을 증명했다.
‘Addison’을 두고 많은 이름이 오간다. 마돈나(Madonna)의 1998년 작 ‘Ray of Light’가 대표적이다. 현대적 장르로 일렉트로닉을 도입하면서 자기 성찰을 담은 기념비적 작품이 ‘내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을 담은 데뷔 앨범에 영감을 준 것은 놀랍지 않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매혹적인 팝, 라나 델 레이의 우울한 정서, 카일리 미노그(Kylie Minogue)와 애니(Annie)의 몽환적 댄스, 때때로 비요크(Björk)의 복잡한 일렉트로닉까지 모자이크를 이룬다. 여성 팝 역사에서 세심하게 선별한 취향을 담았지만, 과거에 머물러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앨범과 애디슨 레이를 가리켜 ‘장르의 학생’이며 ‘그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는 몹시 정확한 칭찬이다.
이에 앨범의 송라이팅과 프로듀싱을 대부분 담당한 소규모 창작 팀이 주목을 받는다. 이들은 애디슨 레이 자신과 맥스 마틴 스튜디오 소속의 두 프로듀서, 엘비라 안데르피에르드(Elvira Anderfjärd)와 루카 클로저(Luka Kloser)다. 여성 프로듀서가 여전히 드문 상황에서 여성만으로 구성된 3인조의 보여준 취향, 비전, 그에 따른 결과는 인상적이다. 이들은 광범위한 레퍼런스를 채택하지만 그 모두를 관통하는 하나의 가치로 신비로운 감각적 색채를 읽어낸다. 덕분에 앨범은 애디슨 레이라는 목소리를 중심으로 일관성을 찾는다.

‘Addison’은 데뷔 주간 빌보드 200 4위로 데뷔했다. 주간 성적은 4.8만 단위로 스트리밍은 3,300만 회에 이른다. 이는 데뷔 아티스트로서 인상적인 수치다. 미국만이 아니다. 영국 차트에서도 2위로 데뷔했고, 그 외 캐나다, 호주, 유럽 여러 나라에서 톱 10 성적을 냈다.
애디슨 레이가 데뷔 앨범에 이른 여정은 초기의 실패, 재발견, 팬들의 충성심과 기대를 충족하는 브랜딩 그리고 예술적 성공으로 이어진 드라마다. 한때 그의 대중적 이미지를 규정했던 회의론은 비평적 찬사와 충성 팬들의 지지에 의해 소수 의견으로 밀려났다. 그는 이제 바이럴이 아니라 음악을 만든다. 애디슨 레이의 독특하고 개인적인 예술적 비전은 계속 발전할 수 있을까? 우리는 현대 대중음악의 가장 인상적인 역전 이야기가 다음 챕터로 이어지는 순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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