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하나가 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가 된다고 해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각자 자유롭게 즐겨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みんなで一つに、なりません。なっても意味がありません。それぞれで楽しんでください、よろしく!)”
지난 6월 21일, 서치모스는 약 4년간의 공백 끝에 무대로 돌아왔다.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물리적인 감각만으로도 이들의 귀환이 와닿았겠지만, 그룹의 영혼까지 온전히 돌아왔음을 느낀 순간은 바로 욘스가 저 멘트를 건넸을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단 이틀간의 공연에 몰린 약 20만 건의 신청. 이는 새로운 트렌드라고 할지언정 시대의 유산이 가진 빛을 가릴 수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엄청난 센세이션을 몰고 왔던 당시의 리얼타임 팬이었든, 서치모스라는 단어의 의미를 영웅과 동일시하는 수많은 후배 밴드들의 영향으로 뒤늦게 알게 된 이들이든, 모두가 “굳이 하나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언급하며 통념을 쿨하게 비껴가는 그 모습에 감화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서치모스를 애정하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확신이 있다. 공연으로서는 낯익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세로운 음악에서만큼은 익숙한 실루엣이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사실. 돌아보면 그들의 디스코그래피는 기분 좋은 배신의 연속이었다. 블랙뮤직 기반의 리드미컬함으로 도회적 매력을 내뿜었던 ‘THE BAY”로 자기소개를 마친 뒤, 디스토션과 선율감을 더해낸 ‘Stay Tune’과 ‘The Kids’를 통해 음악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의 영역까지 침범하며 J-팝의 미래를 일필휘지로 그려냈다.
원치 않게 메이저 밴드로 등극한 후 탄생한 ‘THE ASHTRAY’는 타이업 곡 중심의 제작이 야기한 과도기적 작품이었다. 물론 ‘Volt-Age’와 같은 명곡도 수록되어 있지만, ‘Stay Tune’의 작법을 답습한 ‘808’과 같은 안일함 역시 감지되었다. 이후 “대중 지향적인 작품을 만들고 보니, 그것은 결국 우리에게 있어 불가능한 일임을 알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동물에 가까운 본능’을 기반으로 과거와의 완전한 결별을 선언한 아트록/프로그레시브 기조의 ‘THE ANYIMAL’을 선보이며 서치모스라는 팀을 재정의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무한한 음악적 자유를 획득한 ‘뉴 서치모스’로서의 탈피를 성공적으로 마치게 된다.
이와 같이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기조는 새 EP ‘Sunburst’에서도 이어진다. 복귀 공연 당시 ‘Stay Tune’을 부르기에 앞서 “커버곡 을 하겠습니다.”라고 운을 띄운 장면은, 자신들의 가장 큰 히트 곡을 ‘뉴 서치모스’가 어떤 태도로 대할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 변혁의 면모를 18분여의 러닝타임은 차고 넘치게 증명한다. 차분한 기타 연주를 서두로 서서히 막이 열리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첫 곡 ‘Eye to Eye’는 일견 익숙하면서도 이미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일종의 완충 장치다. 1집과 2집 사이 어딘가에 있을 법한 R&B와 애시드 재즈의 융합 사이에서, 유연해진 멤버들의 퍼포먼스가 확연한 진화를 새겨내고 있는 덕분이다.

이전부터 일부 멤버들과 연이 있었던 서포트 베이시스트 야마모토 렌의 선 굵은 연주를 필두로, 슬며시 끼어드는 타이킹의 리드미컬한 커팅 스트로크와 OK의 안정적인 드러밍, 사운드에 레이어를 더하는 타이헤이의 신시사이저 연주가 곡의 매력을 입체적으로 구현한다. ‘코반자메 오반자메(小判鮫 大判鮫)’와 같은 언어유희와 함께 새로운 출발의 심경을 언급하는 욘스의 보컬은 곡이 의도한 텐션을 적확히 담아내고 있으며, 적재적소에 파고드는 DJ KCEE의 스크래칭 사운드가 ‘서치모스’라는 도장을 쾅 하고 찍는다. 마치 하나가 아닌듯 움직여도 무한히 파생되는 유기성이, 각자 여러 활동을 통해 획득한 경험치가 서로의 플레이를 보듬는 포용력으로 환원되었음을 알려준다.
이런 측면은 선공개 곡 ‘Whole of Flower’에 더욱 극대화되어 있다. 단출한 구성 속 각각의 연주가 선명히 들려오지만, 합주보다는 즉흥적인 솔로잉의 면모가 강하게 감지된다. 대부분의 세션이 반복되는 리프를 배제하고 마치 각자가 메인인 듯한 선율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합을 정확히 맞추기보다는 헐거운 규칙 몇 가지만 정해놓은 채 사운드를 쌓아나가는 모습이라고 할까. 특히 2분 30여 초부터 시작되는 약 1분간의 간주는 이러한 측면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재즈의 잼을 연상케 하는 해당 소절은, 각 악기들이 서로의 존재감을 뽐내면서도 결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경이로운 소리 세계를 펼쳐 보인다. 정말 ‘하나가 될 필요가 없다.’는 말의 자가 증명이다. 여기에 소절에 맞춰 폭넓음 음역대를 오가는 욘스의 가창은 결정적이다. 벌스와 간주의 상이한 무드를 잇는 완벽한 연결 고리로 자리하며 ‘따로 또 같이’의 정수를 완성해내고야 만다.
앞서 소개한 두 곡이 기존의 유산을 재구축한 결과물이라면, ‘Marry’와 ‘BOY’는 서치모스의 이름 안에서는 조우한 적 없었던 노래들이다. 포크 사운드 기반으로 템테이션의 ‘My Girl’을 떠올리게 하는 모타운 사운드와 오타키 에이치나 야마시타 타츠로가 주축이 되었던 나이아가라 레이블 혹은 가야마 유조의 작품이 자연스레 연상되는 사운드 아래, “결혼하자, 같이 살자(結婚しよう 一緒に暮らそう)”라는 가사를 통해 선명한 인생의 한 장면을 담아낸 ‘Marry’는 특히 인상적이다. 전반적으로 욘스의 또 다른 밴드인 헤디건스(Hedigan’s)의 몇몇 곡들이 떠오르기도 하는 동시에, 공백 전후 겪은 여러 경험의 영향으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음악 안에 보다 큰 비중으로 녹아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트랙이다. 동시대 속 찰나의 순간 느껴지는 예민한 정서를 포착해왔던 이들이, 인생의 전기성을 담아낸 곡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팬들에겐 일견 생경한 풍경일 수 있겠다. 이와 같은 낯선 면모를 통해 팀 특유의 아이덴티티가 충실히 보존되어 있음을 재차 확인 가능하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BOY’는 가장 개인적임과 동시에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담긴 노래로 다가온다. 레트로한 로큰롤 리듬을 기저에 두고, 새어 나오는 슬픔을 중간중간 위트로 무마하는 듯한 합주와 이성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토해내는 욘스의 목소리가 맞물려 깊숙한 내면으로 여행을 떠나는 광경이 그려진다. 마치 활동 재개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의식을 행하는 것처럼.
“넘쳐흐른 눈물은 네가 / 하늘을 울리고 울려 퍼지며 쏟아져 내려
(溢れだした涙はお前が / 空を鳴らして響き渡る降りそそぐ)”-‘BOY’중
누군가로 인해 흘린 눈물이 결국 다시금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비가 된다는 것을 이야기해주는 듯한 가사는 아무래도 먼저 떠나간 멤버 스(HSU)를 떠오르게 만든다. 이어 팀을 잠식했던 슬픔과 그리움에 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것이며, 지켜야 할 것들을 더욱 굳건이 지켜 나가겠다는 각오가 새로운 의지와 희망을 주저 없이 그려 나가고 있다. “슬픔은 아직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지만 / 그저 하루를 웃으며 살아가자(Sadness is not gone in my head but / 笑おうただの1日を)”라는 ‘Whole of Flower’의 가사와 자연스레 연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격정적인 연주와 노래의 터널을 거쳐 절정을 향해 나아가는 후반부의 여운은, 멤버들이 단순히 이 곡을 단순히 ‘음악’만으로 대하지 않고 있다는 가장 큰 증거다.
선버스트(Sunburst), 이는 ‘구름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는 광경’을 의미하는 단어다. 그 속에는 어둠을 견뎌낸 끝에 마침내 맞이하는 빛에 대한 간절함이 서려 있다. 공교롭게도 이는 2020년 그들과 함께 공연할 예정이었던 선배 밴드 더 버스데이(The Birthday)의 마지막 정규작 제목이기도 하다. 라이브가 팬데믹으로 무산된 이후 3년 뒤 보컬 치바 유스케 또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상실의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빛은 더욱 절실해지는 법이다.
쉽지 않았을 절망의 회오리 속에서, 서치모스는 그 상실을 단순한 슬픔으로 머물게 하지 않았다. 이별로 인해 느꼈을 공허함을, 각자가 쌓아온 음악적 경험으로 채워 나가며 더욱 단단해진 유대감으로 승화시켰다. ‘Sunburst’는 그렇게 탄생한 18분간의 증명이자, 스스로 투영해낸 햇살 아래 무지개다. 인간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라는 보편적 진실 안에서, 순간의 충동보다는 삶의 희로애락을 보기 시작한 이들의 복귀작은 다시금 음악 씬에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더욱 정교해진 연주, 자유로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음악적 깊이, ‘하나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철학 아래 더욱 심화된 정체성까지. 짧은 러닝타임이 야속하기만 한 이 예고편은, 다시금 그들이 써 내려갈 커리어 또한 예사롭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일종의 스포일러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이미 그들이 펼쳐낸 또 다른 시작의 한복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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