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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원, 배동미(‘씨네21’ 기자),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TOMORROW X TOGETHER YouTube

‘T라 능숙해’(유튜브)
이희원: 한국에서 MBTI 유형은 유행 이후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하게 쓰인다. “너 T야?”라는 말이 유행했듯, MBTI의 네 가지 지표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T(사고형)와 F(감정형)로, 둘을 판별하는 질문들이 여전히 대화의 화두가 되곤 한다. ‘T라 능숙해’는 200년 후 T형 인간이 멸종 위기에 처하자, ‘T형 인간 부활 프로젝트’를 위해 2025년으로 시간 여행을 온 미래 TF팀이 고대의 역사 속에서 찾아낸 ‘T형 인간’인 투모로우바이투게더 태현을 만나 그의 성격적 특징을 관찰하고 검증한다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다. 어린 시절부터 울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준다는 부모님의 말에 “주지 말라 그래.”라고 답했다는 ‘본투비(Born To Be)’ T 성향 태현은 논리가 부족한 가상의 세계관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며 T형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스스로 이전보다 많이 F 성향이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검증 과정에서 이를 빠르게 철회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MBTI 검사에서 T와 F의 비율이 각각 95대 5로 나왔던 태현은 실시간으로 T 검증 질문을 받는다. 만약 멤버 연준이 “연습 너무 열심히 했나? 몸이 좀 아프네.”라고 말하면 뭐라고 대답할 것이냐는 질문에 “원래 춤추면 아파.”라고 답하는 태현은 영락없는 T 유형의 면모를 보여준다. 만화가이자 방송인 김풍이 게스트로 출연한 2화에서는 티라미수 케이크를 만들기에 앞서 함께 ‘T 빙고’를 진행한다. 감정 기복이 거의 없고, 수치와 데이터를 사랑하며, 무의미한 친목을 회피한다는 항목에 태현은 모두 동그라미를 쳤다. ‘비판을 공격으로 안 느낀다.’에 동그라미를 치며 태현은 “피드백 아닌가요? 이건 감사한 거예요. 비판을 해주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옆에 둬야 발전을 합니다.”라고 말한다. 타인의 말을 꼬아 듣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T 유형의 장점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또 태현은 ‘비효율=화남’이라는 항목에 동그라미를 치면서도 “타인에게는 그러지 않아요. 그 사람만의 그게 있겠지.”라며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공감력은 이해력으로 대체할 수 있거든요.”라는 또 다른 ‘T형 인간’ 김풍의 이야기처럼, 결국 MBTI 유형 또한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않을까. 마치 단호하고 논리적일 것만 같던 태현이 휴닝카이를 위해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연준의 솔로 믹스테이프 활동을 위해 활력을 불어넣어준 것처럼. 앞으로 이어질 에피소드를 통해 태현은 ‘T라 미숙해’가 아닌 ‘T라 능숙해’라는 명제를 증명해낼 수 있을까? 

‘비밀일 수밖에’
배동미(‘씨네21’ 기자): 남편과 사별하고 춘천의 한 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정하(장영남)는 건강상 이유로 휴직에 들어간다. 마지막 출근 날, 짐을 챙기고 있는 정하 앞에 캐나다로 유학 간 뒤 그곳에서 살고 있는 아들 진우(류경수)가 불쑥 나타난다. 진우의 의대생 여자친구 제니(스테파니 리)까지 합세해 두 사람은 내년에 결혼하기로 약속했고 이미 제니 부모님에게도 허락을 받았노라 말한다. 진우에게 자신의 병을 감췄던 정하는 아들이 찾아온 것도 당황스러운데 결혼까지 통보받으니 정신이 없다. 영화는 그런 정하 앞에, 아니 관객 앞에 계속해서 새로운 인물들을 데려다 놓는다. 요가 강사이자 정하의 룸메이트 지선(옥지영), 딸 몰래 30년 만에 한국에 입국해 춘천까지 따라온 제니의 부모님 문철(박지일), 하영(박지아)까지. 춘천에서 열리는 마라톤 때문에 호텔과 모텔의 빈방이 모두 동이 나버렸다는데, 정하로선 이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수밖에 없다.

만남은 서로를 향한 호기심을 낳고, 호기심은 질문을 동반하며, 질문으로 촉발된 대화는 만족감보다는 의외의 실망을 불러일으킨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진우 말과 달리 제니 부모님은 결혼을 허락한 적 없으며, 진우는 어학원 일자리를 그만두고 유튜버로 살면서 제니를 내조하려 한다. 게다가 문철과 하영 부부는 진우를 탐탁지 않아 하며, 딸을 의대생으로 키우느라 고생한 자신들에게 예비 사위가 경제적으로 보답하길 은근히 바라고 있다. 김대환 감독은 이처럼 만남과 대화라는 단순한 운동을 통해 인물들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충돌시킨다. 거기다 몇 겹씩 덧대어져 있는 인물들의 비밀들이 하나씩 풀어헤쳐지면 미스터리 스릴러가 따로 없다. 가족이야말로 서로에게 가장 솔직하지 못한 사이일 수 있고, 속내를 털어놓기 가장 어려운 존재일 수 있기에 이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관객은 아슬아슬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마주하는 영화 대부분은 주인공 소수의 이야기에만 집중하곤 한다. 주인공의 사정만 들려주느라 시간이 모자란 듯 주변 캐릭터들은 주인공의 대사에 반응하는 자로서만 기능하는 경우도 꽤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실제 삶은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얽혀 있다. 그런 면에서 김대환 감독의 ‘비밀일 수밖에’는 실제 우리 삶의 리듬과 닮았다. 가족이란 복잡계는 물론이고, 각자의 존재들이 부딪히면서 미워하다 이해하기에 이르는 그 시간들이 우리 생의 어느 계절, 어느 날과 닮았다.

‘KOREAN AMERICAN’ - kimj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한국에서 만들어진’을 넘어 ‘한국적인 것’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2025년. 메이저 팝 시장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매력에 흠뻑 빠진 가운데 언더그라운드 팬들 역시 새 시대의 팝을 한국의 정취로부터 찾고 있다. 그 주인공은 한국계 미국인 프로듀서 킴제이(kimj)다. 투홀리스, 에릭디오에이, 세비, 네이트 시브 등 하이퍼팝의 초신성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정력적으로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그는 산업이 정의 내린 장르 이름에 연연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구축된 초연결 사회의 독특한 감각에 몰두하여 새로운 씬을 창조하는 최신의 음악가 중 한 명이다.

수많은 인터넷 키즈들 가운데 유독 킴제이의 작업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뚜렷한 문화적 정체성에 있다. 무국적 디지털 라이프로부터 창작을 끌어내는 수많은 음악가 가운데 킴제이만큼 민족 정체성을 고유의 무기로 삼는 아티스트는 없다. 킴제이에게 한국은 6살까지 살았던 고향이자 문화적 뿌리, 타고난 운명이자 내면으로부터 발견한 새로운 가능성의 신세계다.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춰 발표한 앨범 ‘KOREAN AMERICAN’은 다작하는 킴제이의 경력 가운데 음악가를 소개하는 본격적인 출사표다. 케샤, 3OH!3, 케이티 페리 등 2000년대 말 빌보드 팝의 규칙과 스크릴렉스의 컴플렉스트로, 2010년대 트랩의 핵심을 체화한 음악이 휘황찬란하고 현란한 한국인의 ‘빨리빨리’ 정신을 타고 흐른다. 더딥, 에피, 엑스트라 스몰과의 작업이 그렇다.

동시에 세계 시민으로의 객관적 시선과 초국적 협업이라는 강점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서프 갱 소속 중국 래퍼 잭제브라, 언더스코어즈, 음루 등 음악가들이 앨범에 이름을 올렸다. ‘기린과 비휴’라는 노래의 영어 제목은 ‘#chinesekorean’이다. 차이니스 아메리칸, 코리안 차이니스라도, 아메리칸 코리안… 왁자지껄한 헥스디와 디지코어, 아니, 특정 장르로 규정할 수 없는 이 아방가르드한 음악의 물결에 모든 편견은 휩쓸려 내려간다.

현실로부터 도피하지만 그 누구보다 거대해지고 싶었던 이들의 아이러니로 즐거웠던 하이퍼팝, 킴제이와 신인류들의 음악은 하이퍼팝이 디지털 공간의 음악을 넘어 현실의 네트워크로 연결되고자 하는 새로운 실험의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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