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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연, 김효진(대중음악 칼럼니스트), 김복숭(작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KBS Kpop YouTube

‘민주의 핑크 캐비닛’ (KBS Kpop)
예시연: ‘은채의 스타일기’를 잇는 단독 웹 예능 ‘민주의 핑크 캐비닛’은 ‘왓츠 인 마이 백 (What’s in my bag)’ 형식을 빌린 콘텐츠다. 게스트의 가방 속 애장품, 일명 “슈퍼 리얼템”을 소개하고, 그중 일부를 다른 게스트와 물물교환한다. 여기에서 매주 무대 밑 아티스트의 “슈퍼 리얼”한 면모를 파헤치는 건 KBS ‘뮤직뱅크’의 39대 은행장 아일릿 민주의 몫이다. 라이브 무대를 위한 건강 관리 제품부터 특별한 의미가 담긴 물건까지, 민주는 매번 애장품에 대해 섬세한 질문을 던져 게스트의 진짜 모습을 끌어낸다. 평소 MBTI 검사에서 ‘I(내향형)’ 성향이 100%라고 밝힌 민주의 성격은 낯을 가리는 게스트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더 편안하게 꺼내놓을 수 있게 돕는다. 예를 들어, 아이브 가을이 ‘뮤직뱅크’ 촬영 중 용기 내어 민주에게 말을 건 일화를 언급하자 민주는 자신과 같은 “ISTJ이시잖아요!”라 말하며 반가워했고, 가을 덕분에 설렜음을 고백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같은 소속사 후배인 CORTIS 마틴이 가방 속 음악 작업을 위한 아이템을 연이어 꺼내놓자 “몇 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어요?”라 물어보며 프로듀싱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물꼬를 틔우기도 한다. 여기에 “9살 때 가사를 쓴다는 개념을 알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한데요?”라는 칭찬을 더해 긴장을 덜어주는 센스도 보여준다.

늘 게스트를 빛내고자 하는 민주도 때론 선배 아티스트로부터 다정함을 건네받기도 한다. 최예나는 민주가 어색함을 깨기 위해 갑자기 손뼉을 치거나 “좋아해요!”라고 기습 고백을 하는 모습 또한 결국 민주만의 매력이라며 지금 그대로 유지하길 바란다는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그리고 ‘뮤직뱅크’ MC 전임자이자 ‘민주의 핑크 캐비닛’ 1화의 게스트로 출연한 르세라핌 홍은채는 첫 방송의 순간이 얼마나 떨리는지 안다며 그에게 공감했고, “민주 님 선물은 누가 챙겨줘요?”라는 생각에 선물을 준비했다는 세심함까지 보여주었다. 훗날, 민주도 첫 ‘뮤직뱅크’ 인터뷰를 마친 CORTIS에게 “저도 진짜 비슷했거든요.”라고 공감한 것처럼, 선배 게스트가 베푼 다정함은 민주를 거쳐 후배 게스트에게로 이어지는 중이다. 어쩌면 ‘민주의 핑크 캐비닛’은 단순 스타의 애장품 소개를 넘어, 민주가 게스트의 시선을 빌려 진짜 ‘나’의 모습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LUCHADOR’ - RAKUNELAMA 
김효진(대중음악 칼럼니스트): 단어 자체만으로도 생소한 ‘루차도르(luchador)’ 스페인어로 ‘자유로운 싸움’이라는 뜻을 가진 프로레슬링 ‘루차 리브레(lucha libre)’를 하는 선수를 뜻한다. 루차도르의 가장 큰 특징은 마스크를 쓴다는 점이다. 이는 그들의 정체성이자 등장만으로 압도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한 도구다. 눈에 띄는 의상과 퍼포먼스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것이 해당 종목의 큰 특징이기 때문이다.

라쿠네라마(RAKUNELAMA)의 ‘LUCHADOR’는 루차도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들의 마스크는 음악이다. 민첩하고 역동적인 기술로 싸우는 루차도르들처럼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구성된 그들의 음악 또한 듣는 이들의 흥미를 끈다. 자유로움의 근원지는 남미 음악이다. 제목 따라 멋진 퍼커션 소리로 귀를 이끄는 ‘Cool Perc’부터 삼바를 함께 추고 싶게 만드는 ‘YARR’, “아싸라비아 콜롬비아”라는 B급 감성의 노랫말이 들리는 ‘B’까지. 트랙이 넘어갈수록 자유로운 축제의 한가운데로 우리를 이끈다. 루차도르에게 가장 큰 치욕은 마스크가 벗겨지는 일이다. 그러나 라쿠네라마의 음악은 벗겨질수록 더 많은 얼굴을 드러내는 가면과 같다. 숨기기보다 드러내고, 가두기보다 풀어내는 힘이 거기에 있다.

‘편지 쓰는 법’ - 문주희 
김복숭(작가): 이번에 소개하는 ‘편지 쓰는 법’은 그 자체가 잊혀져 가는 한 예술 형식에 대한 러브레터와 같다. 우선 이 주제에 관해서라면 작가 문주희가 권위자임은 분명하다. 서울에 위치한 작은 가게 ‘글월’을 열고 운영 중인 그는 단순한 문구점을 넘어 편지라는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그저 아기자기한 문구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필기구와 종이를 들여다보는 순간, 방문객들은 자연스레 종이 위에 글씨를 써 내려가는 명상 같은 행위에 끌려든다. 원한다면 익명으로 편지를 보내 타인의 하루를 밝힐 수도 있다.

문 작가의 책은 그가 직접 겪은 자전적 이야기를 깊이 들려주면서도, 제목이 약속하듯 편지 쓰기에 관한 팁도 아낌없이 담았다. 특히 영감을 어떻게 종이 위에 옮기고 부칠지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이 돋보인다. 18개의 짧은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어떤 장은 실용적이고, 어떤 장은 마음을 들여다보게 할 만큼 사색적이다. 책장을 따라가다 보면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또 오랜 세월 이어져 온 편지라는 예술은 결국 자신을 찾고, 받는 이의 마음을 헤아리며 이해하는 길임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편지 쓰기 문화의 따스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천천히, 설렘을 안고 편지봉투를 열어 한 줄 한 줄 읽어 나가며 아름다운 단어를 선물처럼 받아들이는 그 모든 순간처럼 말이다. 이 친절한 편지 쓰기 안내서를 다 읽고, 이번 달엔 누군가에게 직접 편지를 써 보는 건 어떨까. 어느 날 갑자기 우편함에서 고지서가 아닌 기분 좋은 편지를 발견할 그 사람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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