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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미(CINE21 기자),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얼굴’
배동미(CINE21 기자): 어둠 속에서 한 노인의 목소리가 가만가만 들려온다. “우리 같이 못 보는 사람일수록 아름다움이 뭔지 더 많이 생각해.”, “손 관리를 열심히 해. 이걸로 다 보고 느끼고.” 앞을 못보지만 아름다운 글씨의 도장을 파내는 전각 장인 영규(권해효)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그는 지금 능숙하게 도장을 파면서 언론과 인터뷰 중이다. ‘손끝으로 세상을 보는 남자’, ‘살아 있는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성공한 그는 한국전쟁 이후 가난했던 한국이 어려움을 딛고 경제 발전을 이룩한 것과 동일시되는 인물이다. 시각장애와 아름다움 사이의 역학에 관해 진지한 이야기를 펼치는 영규. 그런 그도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질문이 있다. 바로 죽은 아내 영희(신현빈)에 관한 질문이다. 영규는 그동안 아내가 갓난아이를 두고 집을 나가버려 홀로 아들 동환(박정민)을 키웠다고 말해왔지만, 카메라 앞에서 아내에 관한 질문을 받자 눈에 띄게 당황해한다. 아버지 이야기만 곧이곧대로 믿어온 동환은 아버지 모습에 의아해하던 중 경찰로부터 어머니 시신이 백골로 발견됐다는 연락까지 받는다. 경찰은 살해 가능성을 언급하고 동환은 그가 몰랐던 어머니의 과거가 궁금해진다. 애초 영규를 담고자 했으나 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발견한 방송사 PD 수진(한지현)이 취재에 나서면서 동환과 수진 두 사람은 영희의 과거를 되짚어가기 시작한다.

동환이 만난 어머니의 원가족, 직장 동료들은 망자를 기억할 때 ‘얼굴의 추함'을 꼭 언급한다. 그리고 그들은 바른 말만 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영희를 냉대한 사건들을 털어놓는다. 어머니의 사진 한 장도 보지 못한 동환은 사람들이 말하는 그 얼굴을 몹시 확인하고 싶으면서도 선한 어머니가 겪은 억울한 일에 울분을 느낀다.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다들 누굴 챙길 겨를이 없었으니까. 동환은 과거를 묻어두어야 할까. 어머니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동환의 여정은 부모 세대가 살아온 한국 사회, 즉 경제개발 이외에는 다른 모든 인간적 가치는 뒷전으로 물러났던 시대적 공기와 마주하는 과정이 된다. 영화 ‘얼굴’은 ‘돼지의 왕’, ‘사이비’, ‘부산행’, ‘지옥’, ‘계시록’ 등 애니메이션과 영화, 시리즈에서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에 관해 꾸준히 코멘트를 남긴 연상호 감독의 신작이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관객에게 미스터리 장르의 즐거움을 선사하면서도 비밀이 풀렸을 때 문제가 해결된 듯한 짜릿함 대신 가슴이 저리고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장면을 만들어낸다.

‘DDDD!’ - 다브다
나원영 (대중음악 비평가): 대전에서 만난 두 멤버를 중심으로 2013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인디 록 밴드 다브다는 ‘DDDD!’에서 변신한다. 곡 중후반부에 “파칭-!” 하고 번쩍거리는 효과음에 맞춰서만이 아니라, 변화무쌍하게 흘러가는 5분을 따라 끊임없이 바뀌고 움직이면서. 이들이 첫 정규 음반을 향해 출발했을 즈음에 썼던 리뷰를 되돌아보자면, “시간을 무대이자 도구로써 활용하는” 다브다의 솜씨는 두 번째 정규 음반을 향한 항해를 시작한 ‘DDDD!’에서 더욱 전면화된다. 2분 정도 되는 곡의 앞쪽 절반에서는 우선 변주하는 시간을 도구 삼아 능히 다루는 다브다를 들을 수가 있다. “오늘 같은 날이”를 장단과 강약을 달리하며 되풀이하고, 악기 소리마다 달리 따르는 리듬을 정교하게 짜맞추고, 언제나처럼 타격감이 뛰어난 이승현의 드럼에 퍼커션 합주 구간까지 넣어주는 식으로. 이렇게 박자 감각을 가지고 노는 면모도 물론 다브다답다만, 보컬 김지애가 “이젠 그런 내가 정말 존재했던 걸까 의심스러워”라 중얼거리듯 ‘DDDD!’는 뒤이은 후반부에서 어느새 변해간다. 이번에는 질주하는 시간을 무대 삼아, 두 전기기타가 서로 주고받는 협주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합을 들려주면서.

지난 10년간 밴드의 색채와 서정을 든든히 책임지고 작별하는 기타리스트 이요셉이 작곡에 참여했고, 그 자리에 새로이 합류한 박정웅이 다재다능한 편곡으로 다브다가 쌓아온 유산을 이어간다. 이렇게 두 시간을 연결 짓는 동시에 시간의 변화에도 기꺼이 몸을 맡기는 ‘DDDD!’에서 새삼스레 다시 실감 나는 것이란, 다브다는 언제나 이런 변주에 능숙했다는 사실이다. 변덕스러운 해류와 바람에 맞춰 돛을 조절하는 항해사처럼 음색과 강약을 매 순간 절묘하게 통제하고, 복잡하고 밀도 높은 전개로도 감정선을 충분히 설득하는 이들의 노련한 실력은 이번에도 환한 빛을 발한다. 노거현의 녹음과 믹싱은 지난 EP ‘Yonder’에서도 그랬듯 다브다의 촘촘하게 짜인 음향에 특히나 명도와 채도가 높은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곡이 마침내 대단원에 닿으며 모든 악기가 (정식으로 곡명이 붙기 전의 애칭 마냥) 뚱땅거릴 때 소소리바람처럼 아니면 불놀이처럼 강도 높게 몰아치는 다브다만의 힘은 ‘Polydream’과 ‘One, World, Wound’가 그러듯이 청자를 다시금 무아지경으로 휩쓸어버린다. 바로 이 광활한 장관이야말로 다브다만이 개최할 수 있는 성대한 출항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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