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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디존 인스타그램

디존(Dijon)은 현재 대중음악의 뒤편에 숨은 비밀 무기다. 그를 모르는 사람도 그의 목소리, 그가 쓰고 프로듀싱한 노래 혹은 그의 영향을 받은 음악을 이미 듣고 있다. 단적으로 그는 2025년 인디와 주류 팝의 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앨범 두 장에 자신의 인장을 남겼다. 바로 본 이베어(Bon Iver)의 ‘SABLE, fABLE’과 저스틴 비버의 ‘SWAG’이다.

본 이베어 혹은 저스틴 버논(Justin Vernon)은 2006년 ‘For Emma, Forever Ago’로 데뷔한 이래 인디 씬의 스타 중 하나다. 그는 2019년 앨범 ‘I, I’ 이후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와의 협업이나 공연 활동에 집중했다. ‘SABLE, fABLE’은 그가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본 이베어는 20년 전 포크에서 출발해 점차 실험적 일렉트로닉 장르의 비중을 늘려온 바 있다. 하지만 ‘SABLE, fABLE’에서는 자신의 원류인 포크로 돌아온 다음, 현대적인 R&B와 팝 요소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디존은 앨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여겨지는 ‘Day One (feat. Dijon, Flock Of Dimes)’의 작곡에 참여하고, 목소리도 추가했다. 디존이 본 이베어의 2022년 투어에서 오프닝 공연을 담당한 인연이다. 저스틴 버논은 한 인터뷰에서 공연을 회상하며 말했다. “그때 나는 진심으로 겸허함을 느꼈다. 나는 언제나 투어를 함께하는 아티스트를 즐기지만, 그는 정말 신선했다. 내가 해온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그 순간 우리의 시대가 정점을 지났다고 느꼈다.”

저스틴 비버는 어떤가? ‘SWAG’은 2021년의 대히트작 ‘Justice’ 이후 4년 만의 깜짝 앨범이다. 21개에 달하는 트랙에 걸쳐, R&B를 근간에 두지만 포크를 연상시키는 미니멀한 접근으로, 때론 미완성처럼 보일 정도로 거칠고 신선한 매력을 담았다. 이는 두 달 만에 나온 연작 ‘SWAG II’에서 23개의 트랙으로 다시 한번 재현되었다. 디존은 ‘DAISIES’, ‘YUKON’, ‘BETTER MAN’, ‘LOVE SONG’ 등 프로젝트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트랙에 공헌했다.

두 앨범은 모두 올해 연말 결산에서 반드시 언급될 것이다. 그 자리에서 디존은 다시 한번 등장할 것이다. 두 앨범의 음악적 인상을 결정짓는 DNA, 곧 R&B와 포크의 결합, 스케치에 가까운 거친 질감은 디존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그의 2021년 데뷔 앨범 ‘Absolutely’가 대중적인 반응을 얻지는 못했지만, 많은 동료 창작자들은 그 새로움을 알아보고 자신들의 음악에 반영했다. 그 결과, 본 이베어는 본래의 내성적인 분위기에서 감정적, 장르적으로 확장했다는 평을 받았다. 저스틴 비버는 ‘SWAG’ 시리즈로 그가 얼마나 과감하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지 증명했다. 그는 10대 팝 스타로 출발해 R&B, 힙합, EDM 등 다양한 장르를 도입하며 성인 아티스트로 전환한 역사가 있다. 이 역사의 정점에서 ‘Justice’는 유명 송라이터, 프로듀서가 총동원되어 최정상급 팝 스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SWAG’은 반대로 새로운 일군의 아티스트를 모아 다른 의미에서 이름값을 실감하게 하는 앨범을 만들었다.

그렇게 디존이 재조명 받던 중, 8월 15일, 그의 두 번째 앨범 ‘Baby’가 등장했다. 재미있게도 앞서 언급한 두 앨범에 참여한 아티스트 여럿이 그대로 ‘Baby’에 참여한다. 데뷔 당시부터 꾸준히 작업을 이어온 마이클 고든(Michael Gordon) 또는 맥기(Mk.gee)가 대표적이다. 본 이베어의 후기작에 자주 등장했던 프로듀서 BJ 버튼(BJ Burton)도 있다. 송라이터 중에는 토바이어스 제소 주니어(Tobias Jesso Jr.), 카터 랭(Carter Lang)이 눈에 띈다. 제소 주니어는 지금까지 언급된 앨범 외에 하임(HAIM)의 ‘I quit’, 올리비아 딘의 ‘The Art of Loving’ 등 2025년의 수작에 참여하며 높은 타율을 자랑하고 있다. 카터 랭은 시저(SZA)의 노래 상당수에 참여해온 사람이다.

이는 단순한 협업의 사슬이 아니다. 2025년 번성을 맞은 음향적 생태계를 이루는 집단이다. 다시 말해 ‘Baby’와 두 앨범은 단순히 시간 상의 선후 관계에 놓인 것이 아니라, 음악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얽혀 있다. 여기에 2024년 맥기의 앨범 ‘Two Star & The Dream Police’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맥기와 디존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이 앨범은 2024년 연말리스트 상당수에서 최상위권에 올랐다. 브록햄튼(BROCKHAMPTON)의 핵심 멤버였던 맷 챔피언(Matt Champion)의 2024년 솔로작 ‘Mika’s Laundry’도 있다. 이 앨범도 디존과 함께 헨리 콰피스(Henry Kwapis), 잭 카라셰프스키(Jack Karaszewski) 등 ‘Baby 팀’이 프로듀싱했다. 다시 말해 2025년 이전부터 디존과 그의 네트워크는 영향력을 키워 가며, 점차 주류에 가까운 대형 프로젝트로 발을 디뎠을 뿐이다.

‘Baby’는 이 모든 프로젝트가 공유한 DNA의 가장 개인적이고 희석되지 않은 표현형이라 할 수 있다. 전작 ‘Absolutely’는 이를 위한 소규모의 친밀한 창작이 어떤 모습인지 비주얼을 통하여 직설적으로 보여주었다. 앨범 커버, 앨범의 라이브를 담은 단편영화와 거기에서 파생된 뮤직비디오들은 수록 곡 대부분을 작업한 집을 재현한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Baby’에서도 방법론의 차이는 없다. 여전히 디존은 그의 집에서 앨범을 만들었다. 음악은 거칠고, 때때로 옆방의 문 틈으로 들려오는 듯하다. R&B, 소울에 포크, 록, 전자음, 전성기의 힙합 샘플이 뒤섞인다. 하지만 무성의한 혼돈이 아니라 능숙한 프로덕션의 결과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개러지 록도 아니고, 베드룸 팝도 아니다. 개러지 록의 아마추어리즘은 어울리지 않는다. 베드룸 팝이 개인용 장비로 스튜디오 못지않은 매끈함을 재현하는 미덕과도 거리가 멀다. ‘뉴요커’ 리뷰가 ‘Baby’를 가리켜 “이 앨범의 탁월함은 그 품위 없음에 달려 있다.”고 쓴 이유다.

한편 ‘Baby’는 비주얼이 아니라 그 주제의 일관성으로 차별화된다. 지난 4년 사이 디존은 가정을 이루고 아버지가 되었다. 앨범 제목 ‘Baby’는 사실 그의 아들 이름이고, 앨범은 아내 조애니(Joanie)와 아이에게 헌정되었다. 앨범 커버는 그의 결혼식 파티에서 촬영된 스냅이다. 첫 트랙 ‘Baby!’는 자신의 아이에게 어머니를 어떻게 만났는지 설명하고, 자신의 이름이 왜 ‘Baby’가 되었는지 설명한다. ‘Another Baby!’는 1990년대 R&B 스타일로 또 다른 아기에 대한 노래로 이어진다. 멜로디와 주제에만 집중하면 각 트랙에는 전통적인 R&B, 소울의 멜로디와 사랑의 감정이 담겨 있다. 하지만 ‘Baby!’의 가사 쓰기는 컨트리 혹은 아메리카나의 개인성을 닮아 있다. ‘Another Baby!’는 R&B 장르의 로맨틱한 하위 스타일처럼 보이지만, 그중 ‘둘째’에 대한 노래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주제 측면에서 살짝 어긋나 있다. 때로 이런 균열은 ‘Fire!’나 ‘Rewind’처럼 음향적 왜곡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요컨대 ‘Baby’는 R&B의 기반을 유지하지만, 그 표현은 다양한 방식으로 급진적 변경을 거친다. ‘Absolutely’가 소개한 포크, 인디 록 취향의 변형 필터는 지난 4년 사이 다른 아티스트에게 제공될 정도로 정착되었다. 그리고 ‘Baby’에서는 힙합 샘플, 귀를 간지럽히는 전자음, 스튜디오를 거치는 복잡한 프로덕션이 새롭게 제시되었다. 재료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이론은 일관된다. 따라서 이 앨범은 디존에게 방향 전환, 진화 혹은 회심의 역작 같은 작품이 아니다. 디존이 대체 어떤 아티스트인가에 대한 재확인일 뿐이다. 그의 과거 행보 중 그 무엇도 낡아 보이지 않는 이유다. ‘Baby’도 아주 오랫동안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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