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R&B는 지난 10여 년간 다양하게 분화하고 변화해왔다. 누군가는 팝과의 경계를 과감히 무너뜨리며 장르의 스케일을 크게 확장했고, 누군가는 내밀한 서사와 실험적 프로덕션으로 R&B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혔다. 또 누군가는 장르 혼종의 실험에 천착하면서 R&B의 범위에 대한 논쟁을 가열했고, 누군가는 장르의 원류를 향해 끊임없이 거슬러 올라갔다. 결국 현대 R&B는 과거처럼 특정한 스타일이나 사운드로 정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사랑, 고독, 욕망, 상처 같은 정서를 번역한 사운드적 언어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흐름 속에서 R&B 듀오 디비전(dvsn)은 드레이크(Drake)가 개척한, 이른바 ‘토론토 사운드’의 계보를 이으며 등장했다. 어두운 무드, 우울한 멜로디, 공간감 있는 사운드, 은밀하게 스며드는 보컬 등 토론토 사운드는 이미 하나의 스타일이 된 음악이었지만, 디비전은 이를 더욱 진득하게 밀고 나갔다. 팝의 확장성보다는 R&B 본연의 내밀함에 좀 더 충실한 쪽을 택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인 R&B를 답습한 것은 아니다. 미니멀한 편곡, 솔직한 감정 묘사, 듣는 공간을 활용하는 음향 설계 등을 통해 21세기 R&B를 대변한다.

멤버 다니엘 데일리(Daniel Daley)의 보컬은 공간에 스며들며 공기를 휘감는다. 낮게 속삭일 때는 비밀스러운 고백이 되고 팔세토로 피어오를 때는 숨길 수 없는 감정으로 변한다. 단순한 보컬이 아니라 불안과 욕망이 섞인 속삭임이자 이별과 재회의 경계에 서 있는 내면의 독백처럼 다가온다. 특히 데일리는 사랑을 이상적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대신 그로부터 비롯한 불안정성과 모호함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듀오의 대표 곡 중 하나인 ‘Don’t Choose’는 좋은 사례다. 겉으로는 느긋하고 관능적인 사랑 노래 같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확신에 찬 구애가 아닌 애매함과 불안이 만든 정직한 욕망이 자리한다.
이처럼 애써 숨기지 않는 불완전함이야말로 디비전의 매력이다. 이들의 노래에는 미화된 로맨스보다 관계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 맞닥뜨리는 모순과 비겁함, 욕망이 그대로 담긴다. 그렇게 불완전하고 갈등적인 순간 그러니까 말로 규정하기 어려운 상태를 잘 포착해낸다. 지난 2023년 지역 미디어 ‘나우 토론토(NOW Toronto)’와의 인터뷰를 보면 듀오가 추구하는 음악 세계를 일부 이해할 수 있다. 데일리는 R&B를 사랑하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제는 무엇이든 노래해도 괜찮아. 꼭 사랑에 관한 내용일 필요는 없고, 사랑을 나누고 화해하는 내용일 필요도 없어.” 불륜을 소재 삼은 ‘If I Get Caught’처럼 때론 사랑을 불편할 만큼 현실적인 방식으로 끌어내릴 때가 있음에도 디비전의 노래가 듣는 이를 가까운 거리로 끌어들이는 힘의 배경일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멤버 나인틴 에이티파이브(Nineteen85)의 세밀하게 조율된 프로덕션이 있다. 그는 이미 드레이크의 ‘Hotline Bling’을 비롯한 여러 곡으로 ‘사운드적 공간을 만드는 법’을 증명한 아티스트다. 디비전에서는 그 감각이 한층 더 극단적으로 발휘된다. 과잉된 리듬이나 화려한 악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공허에 가까운 여백, 느슨한 드럼, 깊은 잔향이 지배적이다. 그의 프로덕션은 마치 도시의 공기처럼 움직이며 다니엘 데일리의 보컬과 멜로디를 품는다.
이 같은 두 아티스트가 만나 지금까지 총 4장의 정규 앨범과 1장의 컬래버레이션 앨범-타이 달라 사인(Ty Dolla Sign)과 합작-을 만들어냈다. 첫 앨범 ‘Sept. 5th’(2016)에서 한정된 악기와 최소한의 리듬만으로 밀실 같은 공간을 창조했고, 이어진 ‘Morning After’(2017)에서는 사랑의 황홀과 불안이 동시에 물결쳤다. ‘A Muse In Her Feelings’(2020)에 이르러서는 다양한 게스트와 리듬을 끌어들여 관계의 복잡성과 다채로운 색을 담아냈으며, ‘Working On My Karma’(2022)에서는 사랑 이후에 남겨진 부채감, 죄책감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들을 고백했다. 이 과정에서 ‘Hallucinations’, ‘Too Deep’, ‘Mood’, ‘Don’t Choose’, ‘Between Us’, ‘Use Somebody’, ‘If I Get Caught’ 등 탁월한 곡들도 배출했다.
최초 드레이크의 레이블 OVO 사운드 소속으로 세상에 알려졌던 디비전은 최근 커리어 차원에서 큰 변화를 맞이했다. 저메인 듀프리(Jermaine Dupri)의 소 소 데프(So So Def) 그리고 하이브 아메리카(HYBE America)와 대대적인 앨범 계약을 맺은 것. 특히 1990년대 힙합/R&B를 대표하는 프로듀서 중 한 명인 저메인 듀프리의 소 소 데프와 손잡은 사실은 적잖은 울림을 준다. 디비전의 음악은 큰 틀에서 얼터너티브 R&B에 기반을 두었지만, 1990년대 R&B 특유의 감성과 멜로디 디자인에 대한 애정 역시 느껴졌기 때문이다. 더불어 하이브와의 결합은 단순히 유통 구조의 변화를 넘어 듀오의 감성적 어둠을 글로벌 무대까지 확장하겠다는 선언처럼 다가온다.

그렇다면 이 변화가 디비전의 음악에 어떤 영향을 줄까? 이번에 공개된 새 싱글 ‘Excited’와 ‘Love On You’에서 그 단서가 보인다. 여전히 사랑과 욕망을 주제로 하지만, 사운드가 한층 선명하고 멜로디는 더욱 뚜렷하다. 그 속에서 다니엘 데일리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악기이자 고백의 도구가 된다. ‘Excited’에서는 나인틴 에이티파이브의 절묘한 샘플링 솜씨도 발휘됐다. 네오 소울 듀오 플로에트리(Floetry)의 명곡 ‘Say Yes’(2002) 후렴구를 왜곡한 다음 배치해 곡의 미묘한 무드를 배가했다.
디비전의 둥지가 새롭게 바뀌면서 그들의 음악적 본질까지 크게 달라질까 봐 걱정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은 안심해도 좋을 듯하다. ‘Excited’와 ‘Love On You’를 들어보면 듀오는 솔직하고 내밀한 감정의 기록을 놓치지 않고 있다. 확장과 친밀함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지향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오늘날 R&B는 팝, 힙합, 일렉트로닉의 경계 위에서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다. 그 안에서 디비전은 스타의 화려한 궤적 대신 ‘내밀한 목소리’라는 또 다른 가능성을 증명하는 중이다. 또한 그들이 만든 곡은 현대 R&B가 진화하고 있는 방향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본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랑의 뒷면과 균열을 얼마나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솔직함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디비전의 음악은 대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거짓 없는 언어로 건넬 뿐이다. 이렇게 디비전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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