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쇼타로의 디저트🍨’(유튜브)
오민지: 쇼타로, 디저트, 아이 그리고 강아지. 유튜브 ‘일일칠 - 117’을 통해 선보이는 ‘쇼타로의 디저트’는 어느 여름날 무해한 단어들이 모여 이루어진 조합이다. 자극과 속도의 시대에 이 프로그램은 반대로 흘러간다. 한 에피소드에 단 하나의 디저트와 그날의 일상을 담는다. 화려한 편집이나 자막도 없다. 화면을 채우는 것은 요리할 때 나는 작은 소음, 쇼타로와 동생 고운이 주고받는 조곤조곤한 대화뿐이다. 자극적인 음악과 효과음 대신 조용한 생활 소음과 아이의 웃음소리, 버튼 하나로 무엇이든 해결되는 세상에서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만 하는 베이킹의 과정, 멀티태스킹이 당연해진 시대에서 오직 하나의 레시피에만 집중하는 태도가 전부다. 20여 분의 짧은 시간 동안 ‘쇼타로의 디저트’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익숙했던 것들의 반대편 모습이다. 쇼타로는 동생과 함께 먹을 디저트를 만들기 위해 과일을 손질하고, 믹서에 재료를 넣고, 젤라틴을 얼음물에 담갔다 꺼내고, 재료를 하나씩 냄비에 넣고, 반죽을 굽고, 층층이 쌓아 올린다. 그렇게 조금씩, 차곡차곡 완성된 디저트를 함께 나눠 먹은 뒤, 둘은 불꽃놀이를 하며 서로의 이름을 쓰거나 서로에게 어울리는 머리핀을 골라 꽂아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어느 여름날, 쇼타로와 동생 고운이 함께 디저트를 만들어 먹는다. 안전한 집에서 장난을 치며 먹는 복숭아 멜론 파르페, 잠 못 드는 여름밤의 열기를 식혀주는 하얀 토마토 빙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집에서 긴장을 풀어주는 말차 케이크와 긴 휴일을 맞아 푹자고 일어나서 먹는 사과 타탕 밀푀유까지. ‘쇼타로의 디저트’에 담겨 있는 시원하고 달콤한, 미화된 여름의 맛이다.

‘그저 사고였을 뿐’
배동미(CINE21 기자): 트라우마는 소리, 냄새, 촉감으로 되살아난다. 정비공 바히드는 늦은 밤 정비소를 찾아온 남성의 의족을 착용한 발소리를 듣고 그가 감옥에서 자신을 고문한 정보요원 '외다리 에크발'임을 직감한다. 바히드는 과거 노동 운동에 나섰다가 이란의 체제를 뒤흔들었다며 ‘체제 선전, 선동 및 공모’ 혐의로 수감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치욕을 경험하고 사랑하는 연인까지도 잃었다. 삶이 완전히 망가진 바히드는 삐걱이는 발소리만 듣고도 복수심에 휩싸인다. 남자를 납치해 인적 드문 곳에 묻어버릴 결심을 한다. 하지만 바히드가 노리는 이 남성은 진짜 에크발일까. 납치된 이는 자신의 이름은 라시드이며, 최근에야 사고로 다리를 다쳤고, 사람을 착각한 거라고 절규한다. 바히드는 정확한 복수를 꿈꿀 뿐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고 싶지 않기에,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을 찾아가 이 남자가 에크발이 맞는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만난 사진사 시바는 땀냄새만 맡고도 에크발의 존재를 느끼며, 다른 피해자 하미디는 의족의 촉감과 성한 다리의 흉터를 만져보고는 확신에 차 그를 바로 죽여야 한다고 달려든다. 하지만 이들 모두 감옥에서 눈이 가려진 채 고문을 당했기에, 에크발의 얼굴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선뜻 결단이 서지 않는 사이, 이들은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아도 되는가 사유하기 시작한다.
‘그저 사고였을 뿐’은 이란 사회를 예리한 시선으로 담아온 거장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 속 인물들처럼 혼란스런 삶을 살았던 파나히 감독은 2010년 반정부 시위를 지원하고 체제에 반대하는 프로파간다를 행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6년형을 선고받았다.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한 영화인들, 버락 오바마 같은 정치인들이 이란 당국에 그의 석방을 청원하면서 조건부 석방 처분까지 받았으나, 20년간 영화 제작 금지, 시나리오 집필 금지, 언론 인터뷰 금지, 이란 출국 금지까지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고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저 사고였을 뿐’도 당국 허가를 받지 않은 채 비밀스럽게 완성한 끝에,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고 황금종려상까지 받았다. 국가는 파나히 감독의 영화를 막지만, 역설적으로 세계는 그를 통해 이란 사회를 본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언제고 이란의 현재를 테마로 삼는 시네아스트이고, 관객은 그를 통해 지금 그곳의 풍경을 바라본다. 트라우마가 불쑥 찾아오면 몸서리치게 되는 순간, 그 속에서도 인간적인 삶을 이어가기로 마음먹는 바로 그때, 간간이 웃음이 터지는 오늘의 유머가 그의 손에 의해 꾸민 데 없이 자연스레 엮이면, 이란의 공기가 마법처럼 가까이 다가온다.

‘의문의 발신자: 고등학교 캣피싱 사건’ (넷플릭스)
*해당 다큐멘터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백설희(작가, 칼럼니스트): “이 영상에 나오는 문자 메시지는 모두 실제입니다.” 미시간주의 빌시티에서 고등학생 커플 오언과 로린에게 2020년 10월부터 하루 40~50개씩 욕설과 가스라이팅, 성추행 문자가 쏟아진다. 작은 마을은 순식간에 의심의 안개에 휩싸이고, FBI가 개입하면서 충격적인 범인의 정체가 드러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의문의 발신자: 고등학교 캣피싱 사건’은 이 사건의 전말과 범인의 숨겨진 이야기, 피해자들의 현재를 담고 있다.
감독 스카이 보그먼은 ‘위험한 이웃’으로 주목받은 후 폐쇄된 공간에서의 뒤틀린 가족 관계와 그루밍을 지속적으로 다뤄왔다. 이 사건 역시 로린의 어머니 켄드라가 범인으로 밝혀지며, 그가 딸에게 가했던 통제와 그루밍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언제나 사건 관계자를 직접 등장시키는 보그먼의 연출법은 가해자의 변명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평범한 얼굴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가해자의 모습은 오싹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카메라 앞에서 담담히 증언하는 피해자의 용기가 더욱 선명해지는 효과를 가져온다.
누군가는 피해자 로린이 답답하다 하고, 누군가는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한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로린은 켄드라 아래에서 13년을 자랐고, 그 시간 동안 켄드라는 가족 전체를 거짓말로 통제해왔다. 마지막, “우리는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어요. 친밀함이 있죠.”라고 말하는 켄드라의 얼굴 위로 그가 로린에게 보냈던 악의적 문자를 보여주는 연출을 떠올려보자. 때로는 콘텐츠를 보면서 카메라의 렌즈가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카메라 뒤에 숨은 이가 진정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CORTIS가 보여주는 청춘2025.10.02
- ‘얼굴’, 시대적 공기와 마주하는 여정2025.09.26
- 다정함이 오가는 ‘민주의 핑크 캐비닛’2025.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