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스위프트는 2006년 데뷔 이후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스타였다. 하지만 지난 몇 년은 ‘스타’의 의미가 한층 달랐다. 구체적으로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에 발매한 ‘Folklore’와 ‘Evermore’ 연작 이후 2024년 말 ‘디 에라스 투어’의 종료까지의 약 4년 반이다. 우리는 이때를 테일러 스위프트의 ‘포스트 팬데믹 시대(era)’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이 시대의 테일러 스위프트는 정규 앨범 4장을 발표했다(‘Folklore’, ‘Evermore’, ‘Midnights’,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이하 ‘TTPD’)’). 동시에 초기 앨범 6장의 마스터 권한을 복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재녹음 앨범 ‘Taylor’s Version’ 4장을 냈다(‘Fearless’, ‘Red’, ‘Speak Now’, ‘1989’). 8장의 앨범 모두 빌보드 200 1위로 데뷔했다. 동시에 ‘디 에라스 투어’는 2023년 3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149회 공연으로 글로벌 관객 1,000만 명, 박스오피스 20억 달러 돌파라는 역사적 기록을 세웠다. 그의 상업적 파괴력은 어떤 이벤트로 일시적 정점을 누린 것이 아니라, 매번 더욱 커질 뿐이었다. 단적으로 정규 앨범의 데뷔 주간 판매량을 보자. 2022년 말 ‘디 에라스 투어’ 직전의 ‘Midnights’는 158만 단위, 2024년 4월 ‘TTPD’는 261만 단위로 개인 기록을 매번 경신했다.

그리고 2025년에 휴식과 침묵이 이어졌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은 2024년 12월 12일 ‘디 에라스 투어’ 종료를 기념하는 게시물 이후 5개월 넘게 조용했다. 지난 5월 말 테일러 스위프트가 초기 앨범 6장의 마스터 권한을 매입했다는 소식이 한 시대의 정리처럼 뒤따랐을 뿐이다. 요컨대 그는 2020년대의 독보적인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하면서, 자신이 만든 모든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되찾는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의 다음 행보에 관심이 쏠렸지만, 우리는 8월까지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8월 13일, 테일러 스위프트는 당시 연인 트래비스 켈시와 그의 형 제이슨 켈시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New Heights’에서 12번째 정규 앨범 ‘The Life of a Showgirl’ 소식을 공개했다. 이후 트래비스 켈시와의 약혼 소식 이외에는 인터뷰, 선공개 싱글 혹은 스니펫 같은 추가 힌트를 내놓지 않았다. 트래비스 켈시의 감상평은 제외하고 말이다. 대신 10월 3일, ‘The Life of a Showgirl’ 공개를 전후하여, 홍보 영화 ‘The Official Release Party of a Showgirl’을 미 전역에서 개봉하고, 수많은 TV 쇼에 집중적으로 출연했다. 요컨대 오랜 기다림 끝에 기대를 자극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경로와 타이밍을 통제하여 앨범 자체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 결과는 ‘The Life of a Showgirl’의 역사적인 데뷔다. 본작은 10월 18일 자 빌보드 200 차트에서 400만 단위 성적으로 1위에 올랐다. 스트리밍 등을 제외한 앨범 판매가 347만 단위다. 둘 다 앨범 실적이 전산으로 집계되기 시작한 1991년 이후 역대 최고다. 2015년 아델의 ‘25’가 남긴 데뷔 주간 성적 348만 단위, 앨범 판매 338만 단위를 동시에 새로 썼다. 실물과 디지털을 합쳐 38종에 달하는 다양한 앨범 버전, 선공개 싱글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개별 곡을 아예 판매하지 않은 전략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간 400만 단위라는 숫자는 몇 가지 전략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이는 발매일 단 하루 동안 사전 주문을 포함하여 270만 단위 성적을 올린 것으로 입증된다. 최근 추세를 고려할 때 단출한 12개 트랙만으로 6.8억 회에 이르는 스트리밍도 놀라운 일이다. 참고로 역대 1위 ‘TTPD’가 31개 트랙으로 8.9억 회였다. 12개 트랙 전부가 2025년 주간 스트리밍 기록 1~12위다. 달리 말하면 ‘TTPD’와 ‘디 에라스 투어’는 그의 정점이 아니었고 아직 가속 가능한 동력이 남아 있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The Life of a Showgirl’이라는 앨범 자체다. 이 작품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포스트 팬데믹 시대’와 이어지는 상업적 관성 범위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내용물은 문제의 시대로부터 급격하고 완전한 탈피를 의도한다.
첫째, ‘The Life of a Showgirl’은 2024년 ‘디 에라스 투어’의 유럽 일정 중 주로 스웨덴에서 구상되고 녹음되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 시기를 “가장 즐겁고, 거칠고, 드라마틱한 지점”이었다고 말했다. 이는 수년 만의 대형 공연에서 오는 활기는 물론, 트래비스 켈시와의 공개 연애에서 찾은 만족감에서 비롯했을 것으로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직업적, 개인적 행복은 앨범의 정서를 형성하는 새로운 기둥이 되었고, ‘Folklore’ 이래로 ‘포스트 팬데믹 시기’를 아우른 우울하고 허구적인 주제는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둘째, 주제의 전환은 사운드의 변화를 동반한다. 이는 ‘The Life of a Showgirl’의 정보가 공개된 8월부터 많은 이들이 짐작한 바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팝 전환 시기를 상징하는 ‘Red’, ‘1989’, ‘Reputation’ 시대의 히트 곡을 만들어낸 스웨덴의 맥스 마틴, 셸백이 송라이터, 프로듀서로 복귀했다. 이는 잭 안토노프, 아론 데스너와 함께 만들어낸 인디 포크와 신스 팝 사운드로부터 계산된 이동을 뜻했다.
셋째, ‘The Life of a Showgirl’의 구조는 ‘TTPD’에서 극에 달한 대규모 앨범에 대한 반응을 의식한 전략적 수정으로 보인다. 스트리밍 중심 시장에서 테일러 스위프트가 20개 이상의 트랙 리스트와 디럭스 재발매를 활용하는 유일한 아티스트는 아니었다. 하지만 전작의 31개 트랙은 지나치게 장황하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 반대로 ‘The Life of a Showgirl’은 의도적으로 40분 분량의 12곡을 선택하고, 그 이상의 보너스 트랙은 없음을 일찌감치 선언했다.
넷째, 사운드의 변화는 비주얼 전략으로도 이어졌다. 영국의 패션 사진작가 듀오 머트 앤 마커스(Mert & Marcus)와 협력한 ‘쇼걸’ 키워드의 프로모션 이미지는 그의 경력 중에서도 가장 도발적이고 화려한 시각적 미학으로 이어졌다. 머트 앤 마커스 특유의 무대 연출을 연상시키는 인공미, 강렬한 대비와 채도의 과한 색감은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단색적이고 우울한 이미지를 일신한다. 수십 가지 버전의 앨범은 추가 트랙이 아니라 다양한 비주얼로 차별화되었다. 단 3일간 상영된 영화 ‘The Official Release Party of a Showgirl’은 문제의 스펙터클을 움직이는 이미지로 확장하는 결정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The Life of a Showgirl’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최대 히트작 ‘1989’로 가는 길에 있을까? ‘1989’는 누적 1,400만 단위를 돌파하여 그의 가장 큰 성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과거 앨범 중 무언가 언급해야 한다면, ‘Reputation’이 떠오른다. 2014년 ‘1989’가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 수상을 비롯해 팝 앨범으로서 완벽한 성공을 거둔 이후, 테일러 스위프트 본인은 니키 미나즈, 칸예 웨스트와의 갈등, 걸 스쿼드 논란 등 업계 내의 소음과 개인적인 삶에 대한 대중적 선입견에 휩싸였다. 2017년 ‘Reputation’은 대중의 호의를 되찾기 위한 화해를 시도하는 대신 자신에게 씌워진 악역 페르소나를 적극적으로 채택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라고 믿는 캐릭터의 관점에서 앨범을 썼다. 앨범의 마케팅은 최소화되고 반항적이었다. 이 시기를 설명하는 하나의 문장은 ‘설명은 없을 것이며, 오직 평판(Reputation)만 있을 뿐(There will be no explanation, only Reputation)’이다.
‘The Life of a Showgirl’은 오랜만에 자신의 인생, 그중에서도 특정한 순간을 직접 반영한 노래를 담고 있다. 많은 트랙은 ‘디 에라스 투어’의 성공과 트래비스 켈시와의 행복을 암시한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자신의 명성이 가장 강렬하게 불타오를 때, 보편적이고 허구적인 서사에서 벗어나 가장 자전적인 앨범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두고 팬과 평론가들은 양극화된 평가를 내놓았다. 평균은 나쁘지 않지만, 고점과 악평의 편차가 크다. 지나치게 구어체이거나 심지어 유행어를 남발하는 듯한 가사를 두고 퇴보했다는 언급이 대표적이다. 내용물과 반응 측면에서 ‘The Life of a Showgirl’이 ‘Reputation’을 떠올리게 하는 이유다. 물론 그 결과는 많이 다르다. ‘Reputation’은 여전히 성공적이었지만 이후 핫 100 1위를 내놓지 못한 ‘Lover’ 앨범으로 이어지며 테일러 스위프트가 하향세에 들었다는 당시의 인식이 시작된 계기다.

하지만 ‘The Life of a Showgirl’은 창의적 후퇴로 여겨지는 앨범으로 사상 최대의 성과를 내는 역설의 주인공이다.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압도적 성공이 전통적인 비평적 검증과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했다고 해야 할까? 물론 많은 슈퍼스타가 비슷한 지위에 오른다. 하지만 테일러 스위프트만큼 역사적인 규모로 그 사실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그의 다음 시대는 어디로 흘러가며, 어떤 유산을 남길 것인지. ‘Folklore’와 ‘Evermore’가 그랬던 것처럼, 테일러 스위프트는 스스로를 구원하고 또 다른 도약을 보여줄 것인가? 세상에는 오직 단 한 명, 테일러 스위프트에게만 걸어볼 수 있는 기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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