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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연,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김복숭(작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 M2 X

‘스파게티, 지구를 감다’ (M2 유튜브)
예시연: “불 위에서 태어나, 물속을 지나 접시 위에 닿은 이 선!” 흡사 신화의 도입부와도 같은 소갯말의 주인공은 바로 스파게티다. 전 세계가 바라고, 르세라핌이 응원한다는 ‘세계 스파게티의 날’의 제정 염원 특별 기획, ‘스파게티, 지구를 감다’. TV 교양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들리는 이 프로그램은 Mnet 및 M2에서 방영한 르세라핌의 싱글 ‘SPAGHETTI’ 발매 기념 컴백쇼다. ‘스파게티, 지구를 감다’는 스파게티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예능적 장치를 전면에 내세운 새로운 포맷의 Mnet 컴백쇼다. 첫 번째 코너 ‘플러팅 지옥 레스토랑’에는 최근 화제인 코미디언 엄지윤의 부캐, ‘훈남’ 인플루언서 셰프 엄지훈이 나섰다. 엄지훈(엄지윤)의 레스토랑 ‘갓 디 엄’에 방문한 VJ 김채원과 홍은채, “가게 조명보다 훨씬 빛나는 사람이 왔네.”라며 플러팅하는 직원 가주환(카즈하),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온 허윤진과 플러팅 스킬이 한 수 위인 배달 기사 사쿠라까지. 플러팅이 넘쳐나는 이 콩트 속, 르세라핌은 각자 맡은 배역에 깊이 몰입한 채 능청스러운 연기로 시청자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이어지는 코너에는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우승자 ‘나폴리 맛피아’ 권성준 셰프가 출연해 스파게티 세계관의 밀도를 높인다. 권성준 셰프가 르세라핌을 위해 준비한 ‘마라핌 스파게티’를 맛보는 것도 잠시, 멤버들은 ‘마라핌 스파게티’를 60분 만에 똑같이 재현해야 하는 ‘데칼코마니 키친’ 미션을 부여받는다. 자칫 요리 서바이벌 패러디로만 보일 수 있지만, 요리하는 과정부터 스파게티가 완성되기까지 다섯 명의 퍼스널리티가 솔직하게 드러난다는 점이 흥미롭다. ‘SPAGHETTI’의 “이빨 사이 낀 스파게티”와 “머릿속 낀 SSERAFIM”이라는 라임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이 요리한 다섯 개의 스파게티 또한 후렴구 속 ‘스파게티=르세라핌’이라는 은유의 연장선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사쿠라는 재료 선택 시 치즈를 깜빡한 걸 뒤늦게 알아채자 잠시 좌절하지만, 카즈하로부터 치즈를 얻어내 완성도를 높이고서야 만족할 정도로 열정을 불태운다. 허윤진과 카즈하는 정해진 길을 가는 대신 “따라가지 않습니다. 저는 그냥 제 느낌대로.”, “그냥 제가 갈 길을 갔습니다.”라고 말하며 다량의 마늘과 치즈, 레시피에 없던 토마토 소스를 과감히 넣는다. 사쿠라와 홍은채가 만든 완벽함을 추구하는 스파게티부터 허윤진과 카즈하의 ‘마이웨이’형 스파게티, 사천 음식처럼 자극적인 맛인 김채원의 스파게티까지도 모두 르세라핌인 셈이다. 이처럼 ‘스파게티, 지구를 감다’는 가장 르세라핌다운 매력으로 피어나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를 감겠다는 이들의 유머러스한 선언이다.

Oklou ‘choke enough’ (deluxe edition)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에이브릴 알바레즈, 에이브릴23, 루 두 라곤, 루마르… 프랑스 푸아티에서 클래식 피아노와 첼로를 배운 음악원 학생 메리루 바니나 메이니엘이 수많은 이름을 뒤로하고 오케이루로 정착한 지 올해로 꼭 10년째가 되는 해다. 파리의 신인 DJ, 세가 보데가와 샤이걸 등 전자음악으로 팝의 경계를 탐구하는 음악가들과 교류해온 혁신가. 오케이루의 경력은 2010년대 인터넷에 음악을 투고하던 수많은 언더그라운드 음악인의 서사와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다. 첫 정규 앨범 ‘choke enough’는 그 성장과 생존의 경험을 실존주의적 태도로 붙잡는 앨범이다. 아니, 붙잡으려 애쓰는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인공적으로 제작한 자연의 소리, 신비로운 앰비언트와 전자음악, 초현실적인 동화와 애니메이션, 유럽 지역 민요와 PC 뮤직의 유산을 이어가는 프로듀서들의 노력이 공존하는 앨범은 다양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현실과 디지털 속 살아 있는 것,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황홀한 흐릿함’이라는 ‘피치포크’의 평가와 함께 평단의 지지를 획득한 오케이루가 지난 10월 30일에 발표한 앨범의 디럭스 버전은 그 공백을 다시금 실감케 한다. 오케이루는 이번 디럭스 에디션에 FKA 트윅스와의 협업으로 육체의 갈등과 정서를 묶어내는 ‘Viscus’와 함께 과거 자신이 발표한 노래 세 곡을 재해석해 수록했다. “과거의 인터넷 기록을 비공개로 설정할 수도 있겠죠. 일부는 좋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정상이에요. 성장 과정의 일부죠. 부끄럽지 않아요.” 천진한 젊은 음악가가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고, 가장 고립되었다고 느꼈기에 들어선 인터넷조차 영원하다고 느끼지 않게 되는 순간이 숨 막힐 듯한 현실을 은유하는 오케이루의 앨범에 담겨 있다. 손 뻗어도 잡을 수 없지만 그렇기에 아름다운 시간과 공간의 숲이 있다. 오케이루의 명멸하는 글리치 판타지는 2025년의 대중음악에 서늘한 감각을 남긴다. 절정과 해방을 선사하는 타이니 데스크에서의 어쿠스틱 라이브까지 함께 감상하길. 

‘제임스’ - 퍼시벌 에버렛
김복숭(작가): 마크 트웨인의 고전 ‘허클베리 핀의 모험’ 속 이름 없는 노예를 다시 조명한 퍼시벌 에버렛의 퓰리처상 수상작 ‘제임스’는 ‘다른 시각으로 재해석된 고전 작품들’이라는 문학적 흐름 속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이다. 에버렛이 그려낸 제임스는, 트웨인의 원작에서 ‘짐(Jim)’으로 흔히 불렸던 인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되살린다. 가족의 자유를 되찾기 위한 큰 계획의 시작으로 주인의 집에서 탈출하는 짐. 그의 시점에서 이야기는 펼쳐진다. 이 소설을 21세기의 작품으로 빛나게 하는 반전은, 짐의 순박해 보이는 모습이 사실은 생존을 위한 전략적인 ‘가면’이었다는 점이다. 백인 사회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무지한 척하지만, 사실 짐은 세상에 대한 통찰을 가진 지적이고 사색적인 인물이다. 그의 진짜 모습을 가장 먼저 눈치채는 건 바로 트웨인 원작의 허크. 혼란스럽고 속도감 있게 얽히는 전개는 TV 시리즈 ‘성난 사람들(Beef)’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에버렛의 문장은 예리하면서도 유머가 있다. 액션과 풍자를 오가며, 미국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를 배경으로 인간과 자유, 그리고 공감의 문제를 깊이 파고들었다. 이 작품이 지금 다시 쓰인 이유는, 법적으로 노예제가 폐지된 지 오래지만 여전히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는 현대 사회의 불평등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함일 것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은 독자라면, 이 작품을 역사적 논픽션과 나란히 두고 곱씹어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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