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인감독 김연경’ (MBC)
이은서: 훌륭한 선수는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없을까? 세계 최고의 배구 선수 김연경. 그의 은퇴 후 첫 행보는 감독 도전이다. MBC 예능 프로그램 ‘신인감독 김연경’에서 그는 신생 구단 ‘필승 원더독스’의 감독을 맡아 프로구단 창단을 목표로 경기를 이끈다. 7개 팀과의 경기 중 4패 이상을 당하면 해체되는 것이 프로그램의 룰. 원더독스에는 프로구단에서 방출된 선수와 프로구단 입단을 꿈꾸는 실업팀 선수, 그리고 은퇴한 선수 등 프로 배구 선수를 목표로 뛰는 열네 명이 모였다. ‘신인감독 김연경’은 0년 차 신인감독 김연경이 이들과 함께 언더독에서 원더로 도약하는 과정을 담았다.
흔히 대한민국 4대 스포츠로 축구, 야구, 농구, 배구를 꼽는다. 그중 배구만 유일하게 2부 리그가 없다. 1부 리그에서 부진하면 2부 리그로 내려가 경기력을 키우고 다시 올라올 수 있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배구는 갈 곳이 없어 프로팀에서 방출되거나 은퇴해야 한다. 잠재력 있는 선수들도 뛸 곳이 부족해 선수 생활을 끝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좋은 선수를 육성해 리그 전체의 발전을 도모하기란 어렵다. ‘신인감독 김연경’이 배구 2부 리그의 씨앗이 될 수 있는 팀을 만들고자, 프로구단 창단을 원더독스의 궁극적인 목표로 잡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독으로서 김연경의 리더십은 확고하다. 모든 것은 작전과 전략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약속된 플레이 안에서 경기가 이뤄질 수 있도록 선수 간의 합을 수없이 맞춘다. 훈련 하나하나에 목적을 부여해 선수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설명하고 확인한다. 이처럼 ‘김연경식 배구’에서 당장의 득점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그렇기에 작전과 다른 방향으로 공격하는 인쿠시에게 “어디로 때려야 돼!”라며 화를 내기도 하고, 가까스로 동점이 된 순간에도 윤영인에게 더 강하게 때리라며 그의 소극적인 플레이를 꼬집는다.
'신인감독 김연경'은 단순히 한 선수의 감독 도전기가 아니다. 김연경은 자신의 20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생각하는 배구’의 훈련과 분석 방식을 선수들에게 지도하고 있다. 원더독스는 대학 리그 우승 팀이었던 광주여자대학교와의 경기에서 3대 0으로 셧아웃 승리를 가져간다. 그렇지만 경기가 끝난 후 김연경은 초반에 집중력이 떨어진 부분을 지적하며, 오늘 경기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뒤로 원더독스엔 변화가 일어난다. 훈련 후 선수 주도로 세미나를 진행하고, 복기 결과를 감독과 적극적으로 공유하기 시작한다. 선수들의 태도가 달라지자, 일방적이었던 비디오 미팅은 감독과 선수 간의 상호적인 회의로 바뀌었다. 이후 원더독스는 수원시청 배구단과 정관장 레드스파크스, 그리고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의 경기에서도 승리를 가져가며 7전 5승의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이렇게 각자의 배구를 하던 원더독스 선수들은 마치 하나의 오케스트라처럼 하모니를 맞춰 간다. 김연경이 그토록 보여주고 싶었던 ‘김연경식 배구’의 시대가 시작됐다.
스포티파이 재생목록: David Byrne x Fresh Air (Christmas Playlist)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올해 한국에서도 ‘스톱 메이킹 센스(Stop Making Sense)’의 리마스터 버전이 개봉하면서 밴드 토킹 헤즈(Talking Heads)와 리더 데이비드 번(David Byrne)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기회가 되었다. 1980년대 전성기 이후 밴드가 해체한 이후로도, 데이비드 번은 미국의 뉴웨이브, 아트 팝의 아이콘으로 남았다. 특히 그가 아프리카, 중남미 등 비서구권 음악을 이국적 양념이 아니라 음악적 방법론으로 도입한 태도는 역사적 모범 사례다. 지금도 데이비드 번은 매월 극히 다양한, 국제적 취향을 아우르는 재생목록을 ‘라디오’라는 이름으로 공개한다. 그가 크리스마스 재생목록을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까?
공영 라디오 NPR의 인기 인터뷰 쇼 ‘Fresh Air’가 그 답을 구한 바 있다.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 데이비드 번은 쇼를 위해 1시간 분량의 재생목록을 만들어 공개했다. 그는 ‘너무 진지하지 않을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했지만, 그가 평범한 선택을 할리 없음을 모두 알고 있다. 라틴 캐럴 중 ‘Feliz Navidad’가 익숙하다면, 이 기회에 ‘Mi Burrito Sabanero’를 접해보길 권한다. 아일랜드 전통과 펑크를 결합했던 포그스(The Pogues)의 어딘가 비딱한 뉴욕 이야기는 어떨까? 제임스 브라운이 불렀던 ‘Santa Claus Go Straight to the Ghetto’의 현실적 메시지는 클러렌스 카터의 ‘Back Door Santa’로 이어지고, 이를 샘플링한 런 DMC(Run-D.M.C.)의 ‘Christmas In Hollis’가 뒤늦게 등장한다. 1시간은 짧지만 사브리나 카펜터(Sabrina Carpenter), 사마라 조이(Samara Joy) 같은 오늘날의 재능도 놓치지 않는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제공하는 장르와 분위기로 정돈된 재생목록 바깥에서, 조금은 다른 크리스마스 음악을 원하는 이에게 권한다.
‘하늘의 모든 새들’ - 찰리 제인 앤더스
김복숭(작가): 찰리 제인 앤더스의 장편소설 ‘하늘의 모든 새들’은 두 주인공 퍼트리샤와 로런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퍼트리샤. 새들과 대화할 수 있는 젊은 마녀. 하지만 마법 실력은 아직 제어 불가 상태다. 로런스. 기술에 깊이 빠져 사는 소년. (비록 완벽하진 않지만) 직접 타임머신까지 만들어낼 만큼 손재주가 좋다. 둘 다 특별한 재능을 가졌지만, 세상은 그들을 ‘이상한 아이들’쯤으로 취급한다. 외톨이였던 두 사람은 중학교에서 서로를 발견한다. 그리고 바로 이 기이하고 사랑스러운 조합—판타지와 SF가 절묘하게 뒤섞이는 순간—이야말로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작가 앤더스는 장르의 경계를 넘는 데 그치지 않고 소설의 개념 자체를 확장한다. 작품 초반은 청소년 성장 소설처럼 가볍게 흐르다가, 페이지를 넘길수록 어른들의 이야기로 깊게 내려간다. 퍼트리샤와 로런스는 각자의 능력을 제대로 갈고닦기 위해 기존 교육 시스템을 벗어나야 하고, 그 과정에서 온갖 시행착오를 맛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세상이 붕괴 직전에 몰린 순간, 두 사람은 성인이 되어 다시 재회한다. 문제는 이번엔 ‘둘의 방식’이 충돌한다는 점. 세상을 구하기 위해 과학과 마법이라는 완전히 다른 해답을 쥔 두 사람. 이 다른 길이 서로의 관계에 짙은 긴장감을 드리운다.
이야기는 한마디로 “해리 포터의 기발함과 마블 영화의 대재앙적인 스펙터클이 만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유쾌하고 엉뚱하지만, 그렇다고 가벼운 농담으로만 흘러가진 않는다. 인간을 구하는 일과 지구를 구하는 일, 그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이 소설은 그 묵직한 질문을 끝까지 품고 달린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엔, 세상이 나를 조금 이상하게 본다 해도 ‘나답게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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