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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원,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김복숭(작가)
사진 출처때때때 TTT 유튜브

‘72시간 소개팅’(때때때 TTT)
이희원: “혼자 떠난 여행에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상상 해보셨나요?”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봤을 여행지에서의 운명적인 만남. 수많은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쏟아지는 가운데, 여행을 매개로 한 ‘72시간 소개팅’은 분명 다른 결을 지닌다. 각 에피소드의 남녀는 처음 보는 사람과 낯선 나라로 2박 3일간 여행을 떠나 서로를 알아간다. 문자를 매개로 한 투표도, 정해진 키워드 데이트도, 패널들의 리액션도 없다. 오직 일대일 관계 속에서 내일은 어딜 갈지,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지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들이 오간다. ‘언제 어디서 상대를 만날지 모릅니다.’라는 내레이션처럼 이들의 첫 만남은 공원, 기차, 비행기 등의 여행 경로 위에서 이루어지기에 처음엔 서로를 몰라보는 상황도 일어난다. 여행을 떠나기 전 사전에 교환한 플래너는 낯선 사람들 속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힌트가 된다. 플래너에 직업, 나이 등이 아닌 취향과 취미, 평소에 하는 생각들과 자화상이 담겨 있다는 점 또한 ‘72시간 소개팅’이 추구하는 사랑에 대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서로를 알아보고, 취향과 취미를 물으며 가까워진 두 사람은 마지막 3일 차에 이르러 이 관계를 더 지속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이 관계를 더 이어 나가고 싶은 사람은 약속 장소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바로 공항으로 떠나는 간결한 설정 또한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의 자연스러운 마무리를 담아낸다.

72시간 동안 출연자들은 단순히 ‘연애’라는 키워드에 몰두하는 것을 넘어, 여행에서 만난 동행자처럼 서로를 대하며 점점 본래의 나다운 편안한 모습으로 변해 간다.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시간적 여유가 아니라 심적 여유.”라는 미소의 말처럼, “그동안 조금 저를 억누르면서 사람을 만났던 것 같다.”라는 세진의 속마음처럼, 상대와의 대화는 ‘내가 어떤 기억을 안고 살아왔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72시간 소개팅’은 그렇게 사랑이 상대를 살피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 속에서 피어나는 것임을 보여준다.

Peach Truck Hijackers - ‘Compressed Annoyance’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 학교에서 밴드를 하며 놀던 여성들은 본격적으로 앨범을 내고 싶어졌다. 아는 건 없었다. 밴드도, 관계자도, 베뉴도 잘 몰랐다. 그래서 밴드는 전단지를 돌렸다. “친구를 구합니다.” 그렇게 만난 친구들은 성심성의껏 이 아마추어들을 도와줬다. 작업실이 생겼다. 프로듀서와 레코딩 엔지니어가 생겼다. 밴드는 음반을 내기 위해 텀블벅 후원 페이지를 열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팬들이 174%가 넘는 후원을 보내줬다. 피치트럭하이재커스(Peach Truck Hijackers)는 그렇게 세상에 등장했다. 

‘DIY(Do It Yourself)’ 정신이 등장한 지도 벌써 50년이 지났다. 이제는 아무리 인디펜던트라 해도 모든 걸 다 스스로 하지는 않는다. 피치트럭하이재커스의 방법은 다르다. 일단 친구가 되자. 그리고 서로를 돕자. 1990년대 ‘라이엇 걸(Riot grrrl)’ 무브먼트를 연상케 하는 최근 한국 언더그라운드의 흐름에서 칩 포스트 갱, 향우회, 세일러 허니문과 같은 밴드들이 스스로 돋아나 씬을 일구고 생존의 방식을 만들어 나간다. 

그렇다. ‘생존’이다. 부와 명예를 거머쥐기 위한 의탁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다짐하기 위한 살아남기의 정신이다. 유독 올해 인디 씬에서 삶과 죽음을 노래하는 이들이 많이 등장했던 까닭이다.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과 개러지, 포스트 펑크의 질감을 충실히 재현하는 피치트럭하이재커스의 음악은 거칠고 직설적이다. 거침없이 욕설을 토해내며 우리는 언어를 회복하고,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소통한다. 세이수미의 김병규와 소음발광의 강동수는 이들의 원초적인 감정을 ‘다듬어진 분노’로 매만져 계보를 이어 나간다.

목적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밴드는 자신을 무엇이라 정의할지 모른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말하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분명히 안다. 그것을 가장 잘 풀어낼 수 있기에 음악을 한다. 창작의 아름다움은 이런 곳에서 오지 않았던가. 피치트럭하이재커스의 솔직하고 시끄러운 파티에서 진짜 ‘밴드의 붐’에 대한 희망을 가져본다.

‘옵서버’ - 로버트 란자, 낸시 크레스
김복숭(작가): 주인공은 뛰어난 신경외과 의사, 이미 탄탄한 경력을 쌓아온 캐로이다. 그러나 병원 내 상사의 성추행을 문제 삼았다는 이유로 점점 거세지는 압력에 시달리다 결국 자리를 떠나게 된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뜻밖의 제안이 도착한다. 멀리 떨어진 친척이 운영하는 비밀 연구소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현실이 아니었다면, 캐로가 이 수상쩍은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 친척은 ‘바이오센트리즘’이라는 이론에 기반한 위험한 의학 실험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캐로는 연구소의 물리학자 조지를 만나고 의식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바이오센트리즘의 개념에 대해서도 듣게 된다. 조지는 우리는 우주를 단순히 관찰하는 것을 넘어 개입하고 조정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캐로는 실험 대상자의 뇌에 삽입되는 칩과 다중 우주에 대한 설명을 듣고도, 이 모든 것을 환각쯤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곧 그의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번에 소개한 책 ‘옵서버’는 과학자 로버트 란자와 베테랑 SF 작가 낸시 크레스가 공동 집필한 작품으로, 과학 이론과 스릴 넘치는 허구를 절묘하게 결합한 소설이다. 이 책은 과학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긴장감 있는 전개와 철학적 질문을 함께 던진다. 과학적 내용이 지나치게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원한다면 란자의 논픽션 저서로까지 관심을 자연스럽게 넓혀갈 수 있다는 점 역시 이 작품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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