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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지, 황선업(대중음악 평론가),김복숭(작가)
사진 출처캐릭캐릭 채연이 X

‘캐릭캐릭 채연이 LEECHAEYEON’
오민지: “되고 싶은 나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 애니메이션 ‘캐릭캐릭 체인지’에서 주인공 아무는 자신이 원하는 성격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용기를 소원으로 빈다. 그 소원이 이뤄지며, 다음 날 아침 그녀에게는 세 개의 수호알이 생긴다. 아무는 이제 평범한 학생에서 ‘가디언’이라는 학생회 그룹의 일원이 되고,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는다. 반면, ‘캐릭캐릭 채연이’는 전혀 다른 작법을 택한다. 무대 위에서 늘 특별함을 요구받는 아이돌 이채연은, ‘캐릭캐릭 채연이’에서 그 연령대의 평범한 사람처럼 보인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기 전 그는 채널명과 티저 영상 아이디어를 A4 용지에 손글씨로 적어오고, ‘찐친’들과 모여서 밸런스 게임을 하거나 서로 너무 과하게 꾸몄다며 놀리기도 한다. 아빠와 함께한 등산 데이트에서는 저만치 앞서가는 아빠에게 같이 가자고 외치고는 도토리국수부터 부꾸미까지 먹고 싶었던 모든 메뉴를 시켜서 먹는다. 친구 ‘노또’와 함께하는 호캉스에서는 사람들의 고민 상담을 들어주며 ‘위장 남사친’에게 고백하라고 하거나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인 말들로 자존감이 깎인 신청자를 대신해 주변 사람들에게 “왜 살아? 왜 그러는 거야?”라고 화를 내주기도 한다. 어떨 땐 미술학원 원장님의 아이를 돌보며 정신없이 젖병을 소독하고 이유식을 먹이다가 고무줄 바지를 입은 꾀죄죄한 모습으로 밖에 나선다. 그래서 ‘캐릭캐릭 채연이’의 이채연은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의 참가자 이채연이나 아이즈원 출신의 아이돌 이채원, 솔로 아티스트 이채연과 같은 특별한 수식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지금의 이채연은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좋아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다. 그렇게 ‘캐릭캐릭 채연이’는 인간 이채연을 ‘언록(unlock)’한다.

오드리(OddRe:) - ‘THE GOLDEN PROTOTYPE’
황선업(대중음악 평론가): 아티스트 이름만 슬쩍 보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미라, 오드리 누나로 착각한 이들이라면 잠시만 실망감을 거두어줄 것을 당부드린다. 감각적이면서도 후킹한 EP의 수록 곡들이 미처 발굴되지 못한 취향의 영역으로 당신을 안내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사실 그룹이 지향하는 전자음악과 밴드 뮤직의 융합은 이미 무쿠(muque)나 클랜 퀸(CLAN QUEEN) 같은 이들이 선점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과 데뷔한 지 1년 반 정도를 갓 넘긴 신인을 왜 주목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장황한 설명보다 첫 곡 ‘FEVER TIME’을 먼저 들려줄 일이다. 단숨에 자신들의 소리에 주목하게 만드는 기타 리프를 시작으로 바통을 이어받아 능수능란하게 리듬을 가지고 노는 보컬, 잠시 브리지를 통해 빌드업을 거친 후 일거에 터뜨리는 에너제틱한 후렴구까지. 어느 하나 넘치는 부분 없이 3분 40여 초의 곡을 리드하는 그 재능이 다음 트랙에 대한 기대감으로 아무런 저항 없이 연결된다. 간만에 느껴보는, 마치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흡입력이다.

바운디(Vaundy)나 칠리 빈스.(Chilli Beans.)가 몸 담은 적 있는 음악학원 보이스(音楽塾ヴォイス) 출신이라는 배경을 굳이 언급할 필요 없이, 이 미니 앨범은 최근 만나본 어떠한 하이브리드 팝보다 흥겹고 캐치하며, 탄탄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강한 어택감을 보유한 보컬 아이라(AirA)의 퍼포먼스가 팀의 대중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CRASH OUT!!!’, 뉴잭스윙에 가까운 비트 운영을 통해 밴드 뮤직과 댄스 뮤직의 이분법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東京ゴッドストリートボーイズ’는 작품 안에서도 비교적 직관적인 매력을 어필하는 트랙들이다. 그런가 하면 트로피컬 팝 기조의 어쿠스틱 기타로 시작해, 묵직한 저음 신시사이저를 얹어 이색적인 공간감을 확장시켜 나가는 변칙적인 구성의 ‘shiori’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이와 같은 변화무쌍한 일면은 창작 전반을 담당 중인 멤버 SOI ANFIVER의 지분이 상당하다 할 수 있을 터. 체계적인 숏폼 전략으로 ‘FEVER TIME’이 틱톡발 바이럴을 탄 데다가 ‘SUMMER SONIC 2025’ 출연까지 완수한 시점이기에, 이 팀에 대한 ‘저점 매수’의 순간은 바로 지금이라 확신한다.

‘부디, 크리스마스’ - 코니 윌리스
김복숭(작가): 추운 크리스마스 연휴, 따뜻한 방에서 좋은 책을 품에 안고 웅크려 읽는 기쁨을 한 번 맛보고 나면, 그 작은 연례 의식을 쉽게 놓기 어렵다. 늘 익숙한 것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오래된 캐럴로 가득한 연말 플레이리스트에 살짝 힙합 홀리데이 곡을 끼워 넣듯,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도 그만한 기념 가치가 있으니까. 오늘 소개할 책 ‘부디, 크리스마스’는 Y2K 이전에 출간된 컬렉션이 한층 더 풍성하게 돌아온 작품집으로, 크리스마스를 중심으로 한 여러 단편(단편이라기엔 꽤 길어 놀랄 수도 있다)을 담고 있다. 

향수를 자극하는 1990년대 기술부터 시크릿 산타, 고전 크리스마스 영화에 이르기까지 오래된 크리스마스 문화의 결을 따라가면서도, 안드로이드, 외계인, 유령, 거기에 말하는 동물까지 등장시키는 이야기들은 결국 미래를 향한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따뜻하며, 종종 재치까지 넘치는 이 이야기들은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온 크리스마스 문화에 특별한 변주를 더한다. 분명 ‘크리스마스다운’ 정서가 살아 있으면서도 어딘가 색다르고 톡톡 튀는 재미가 있다.

크리스마스의 기원부터 인공지능까지 가로지르는 SF적 상상력 속에서, 작가 코니 윌리스의 문체는 특히 한 편의 이야기를 통해 크리스마스 문화가 얼마나 같은 모습을 지켜왔는지, 또 동시에 얼마나 달라져 왔는지를 들려준다. 오랜 전통으로 가득한 이 계절, 매년 이 책을 다시 꺼내 읽는 작은 습관을 더한다면 그야말로 완벽하고 달콤한 크리스마스 케이크 한 조각 같은 순간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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