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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업(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Vaundy ART Work Studio X

기억을 되짚어보면, 데뷔 곡 ‘東京フラッシュ’는 어떠한 전조도 없이 일본 음악 씬을 강타한 운석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가볍게 스케치한 기타 리프를 중심으로 리듬과 선율을 빈틈없이 배치해 완성한 멜로우함은, 신인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치밀했다. 도회적인 정서는 당시 시티 팝 리바이벌의 흐름과 맞물리며 주목을 모았고, 뮤직비디오는 2개월 만에 조회 수 100만 회를 넘어섰다. 이윽고 스포티파이는 가능성 있는 신예를 미리 점찍는 ‘Early Noise 2020’에 바운디의 이름을 포함시켰다. 놀라운 점은 따로 있다. 이 당시의 퍼포먼스가 그의 잠재력에 비하면 극히 일부였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명확히 깨닫고 있다는 사실이다.

활동 개시로부터 6년, 지금의 바운디는 누구도 넘보기 힘든 팝스타의 자리에 도달해 있다. 빌보드 재팬 기준 1억 회 재생 곡 중 솔로 아티스트 최다 기록(17곡)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怪獣の花唄’를 통해 오로지 세 팀만의 훈장이던 10억 회 이상 플레이 보유 리스트의 네 번째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현재 유튜브와 스트리밍을 합산한 총 재생 횟수는 100억 회를 넘어선 상태다.

R&B, 힙합, 록, 신스팝 등 일정 장르에 매몰됨 없이 ‘바운디’라는 브랜드가 통용되는 독자성 강한 트랙들을 꾸준히 발표 중이며, 아트워크와 뮤직비디오 감독을 아우르는 멀티 크리에이터로서의 존재감 역시 궤도에 올랐다. 작년 처음으로 개최된 ‘뮤직 어워즈 재팬(MUSIC AWARDS JAPAN)’에서 두 제너럴 필드를 포함한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일본에서 그를 국가대표 아티스트로 공인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장르리스’로 대표되는 음악적 방향성은 그의 커리어를 뒷받침하는 일종의 전략이다. 노래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타이테(歌い手)로 활동하며 다양한 창법을 익혔고, DTM(Desktop Music)을 통해 특정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제작 환경을 마주했다. 여기에 니혼대학 예술학부 디자인학과에서의 경험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음악이든, 영상이든, 그림이든 모든 것을 ‘디자인’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데생을 이해하기 위해 그 안에 있는 선 하나하나, 빛이 들어와서 생기는 그림자의 메커니즘을 뜯어봐야 하듯, 결국 포맷을 제대로 공부하고 길을 생각한 후 자신의 감각을 주입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사운드를 강박적으로 설계하는 밴드 사카낙션을 가장 좋아하는 팀으로 꼽은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바운디에게 ‘포맷’은 곧 ‘레퍼런스’이며, 이것들을 자신의 방식대로 끼워 맞추는 과정을 통해 오리지널을 만들어 간다. 그는 자신이 영향받은 음악들을 굳이 숨기지 않으며, 이러한 측면은 2집 앨범 ‘replica’에 메인 테마로 반영되어 있다. ‘美電球’에는 사카모토 신타로의 느슨한 편곡을, ‘replica’에는 데이비드 보위와 오아시스의 UK 록 감성을, ‘黒子’에는 너바나의 거친 에너지를 담아내고 있다. 이처럼 원전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요소를 더해 ‘최신판 레플리카’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그의 팝 제작론이다. 이 원칙엔 자신의 곡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린토시테시구레의 TK를 초빙해 노이지하고 입체적인 기타를 얹어 변화를 꾀한 ‘逆光 - replica -’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세상의 모든 좋은 작품은, 그 이상의 것이 태어나기 위해 존재한다는 그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직설적인 근거다.

타이업은 그에게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요소다. 해당 작업 방식으로 인한 오리지널리티의 훼손을 염려하는 목소리와 관계없이, 자신 안에 있는 요소를 골라 일정한 틀 안에 넣어보는 과정으로 인식하며 또 다른 미학을 파생시킨다. 여기엔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 그리고 ‘영상과 음악은 종속되는 것이 아닌 공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 배경으로 자리한다.

그가 제작한 타이업 트랙에서 유독 작품과의 강한 연결 고리가 감지되는 이유다. ‘스파이 패밀리’의 ‘トドメの一撃’,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지구 교향곡’의 ‘タイムパラドックス’, ‘사카모토 데이즈’의 ‘走れSAKAMOTO’ 등을 접하며 느끼는 공통점은 ‘주제가로서 완벽히 기능한다.’는 것이다. 작품의 요소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방식은 잼 프로젝트(JAM Project)와 같은 ‘애니송’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팝 뮤직’으로서의 독립적인 영역을 부여하고자 하는 손길 또한 묵직하게 실려 있다. “음악이 그저 BGM처럼 전달되어도 좋다.”는 발언은, 총체적인 창작물의 관점에서 타이업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바운디는 대표적인 다작 아티스트다. 특히 2025년은 매월 싱글을 선보이며 어느 때보다 대중과의 거리감을 좁힌 한 해였다. 동시에 그 안에서 변화 또한 꾀하고 있다. ‘replica’에서 ‘내가 원하는 자신’과 ‘대중이 원하는 자신’을 두 챕터로 나누었다면, 지금은 둘 간의 접점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최근 작업물 중 이것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드러나 있는 곡은 단연 ‘僕にはどうしてわかるんだろう’다. 리드미컬한 드러밍 중심의 벌스와 웅장한 현악 세션의 후렴이 실험적으로 맞부딪히는 가운데, 캐치한 선율이 가창 측면에서의 강점을 부각한다. 직접 감독한 뮤직비디오도 빼놓을 수 없다. 중반부터 영상의 소리가 개입하며 주도권이 바뀌고, 후반부 UFO가 등장하는 스펙터클한 연출을 통해 음악의 기능이 완전히 전복되는 경험을 유도한다. 영상과 음악 중 어느 하나가 수단일 수 없다는 그의 철학이 명확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바운디의 음악은 인식하는 것보다 느끼는 것을 중시한다. 읽고 해석하는 것이 아닌, 듣는 순간 바로 알 수 있는 결과물이 그의 이상향이다. 이는 그가 무드를 중시하는 플레이리스트 문화를 향유했으며, 국경이 무의미해진 SNS 시대를 살아왔고, 장르 구분이 필요 없는 우타이테 씬에 몸담았음을 보여준다.

구독 서비스 속 모든 국가의 콘텐츠가 온라인 진열대에 놓여 있는 지금, ‘멋있는 걸 만들면 대중은 선택하게 되어 있다.’는 그의 의식은, 당연하게도 동세대 음악가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리스너의 고정관념을 벗어나 다양한 장르를 통해 승부할 수 있음을, 영상과 비주얼의 영향력이 커진 지금 모든 것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둘 수 있는 멀티 아티스트가 되어야 함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바운디는 2월부터 솔로 아티스트 최연소 4대 돔 투어에 돌입할 예정이다. 그에게 라이브는 스튜디오 작업과는 또 다른 가능성을 내포한다. 새로운 조건을 세팅해 새로운 답을 얻고 관객을 설득하는 치열한 엔지니어링의 현장이며, 자신을 넘어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할 수 있음을 직관적으로 체험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매번 새로운 접근 방식을 통해 라이브 속 창조성을 갱신하고자 하는 그의 움직임이야말로, 한국 팬들의 내한 공연 요청이 나날이 커지는 이유일 것이다. ‘최고의 마니아가 최고의 예술가’라는 명제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바운디. 조만간 한국에서도 ‘일본 음악의 지금’을 상징하는 그의 전력질주를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음악’ 자체가 생활이라는 그에게 있어, 한국의 대중들 또한 그에게 ‘일상’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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