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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권(음악평론가)
사진 출처A$AP Rocky 페이스북

에이셉 라키(A$AP Rocky)의 지난 몇 년에는 다사다난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새 음악 소식 대신 재판 일정이 먼저 전해졌고, 투어 포스터보다 법정 출석 사진이 더 빠르게 퍼졌다. 스웨덴에서의 싸움과 구금, 총기 연루 폭행 혐의에 대한 법적 공방(다행히 두 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패션계와의 협업 그리고 리아나(Rihanna)와의 관계와 아버지라는 새로운 역할까지. 그저 랩스타 한 명의 커리어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시간이었다. 

꽤 오랫동안 사람들은 라키가 어떤 음악을 만들고 있는지보다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더 궁금해했다. 그 공백과 소음 사이에서 마침내 등장한 작품이 ‘Don’t Be Dumb’이다. 전작 ‘Testing’ 이후 무려 8년 만이다. 제목부터 묘하게 직설적이다. 복잡한 상황 설명도 거창한 슬로건도 없다. 그저 짧은 한 문장뿐, ‘멍청하게 굴지 말 것’. 마치 그동안의 혼란과 과잉된 시선을 지나온 자신에게 던지는 건조한 메모처럼 들린다.

라키는 데뷔 때부터 전통적인 고백형 래퍼와는 거리가 멀었다. 자신의 상처를 길게 늘어놓기보다 분위기와 이미지를 설계하는 데 능한 아티스트였다. 예컨대 뉴욕 할렘의 거리 문화 위에 휴스턴식 느긋한 사운드를 얹고, 하이 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을 뒤섞어 하나의 미학으로 만들었다. 그의 음악은 언제나 추상적인 장면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러한 음악적 재능과 개성 덕분에 힙합 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자기 출신을 증명하는 동시에 스타일을 구축하는 래퍼, 진정성을 외치기보다는 쿨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아티스트. 누군가는 이를 피상적이라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동시대 문화의 작동 방식을 가장 정확히 체화한 태도이기도 했다. 오늘날의 랩스타는 서사 못지않게 이미지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라키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빠르게 이해한 인물처럼 보였다.  

특히 그가 음악을 만들 땐 지역색이나 트렌드에 얽매이지 않는다. 멋있으면 무엇이든 가져와서 앨범을 위한 요소로 활용했다. 마치 옷을 고르듯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옷을 과감하게 겹쳐 입은 다음 자기 스타일로 만들어버린다. 그렇게 사운드를 조합하고 질감을 맞추며, 전체 분위기를 설계하는 라키는 랩 스타일리스트이자 유능한 건축가다. 

‘Don’t Be Dumb’에서도 그는 유행하는 사운드를 무작정 복제하지 않는다. 차트를 채우는 공격적인 808 드럼이나 평범한 랩싱잉, 혹은 과잉된 후렴구 대신 사이키델릭한 무드와 과감한 장르 실험에 집중했다. 소리는 선명하게 치고 올라오기보다 천천히 번지고, 화려한 사건들로 얼룩진 그의 최근 이력과는 대조적으로 몇몇 곡을 제외하면 음악은 오히려 차분하고 건조하다. 특히 프로덕션과 가사 모두 라키 특유의 ‘태도 중심 미학’을 공유하지만, 접근 방식은 제각각이다. 공격, 냉소, 실험, 고백, 유희가 각각 다른 온도로 배치된다. 

배우 위노나 라이더(Winona Ryder)와 영화음악가 대니 엘프만(Danny Elfman)이 출연한 뮤직비디오로 화제를 모은 ‘PUNK ROCKY’는 앨범에서 가장 이질적인 곡이다. 라키는 이 곡에서 힙합의 규칙 바깥으로 자신을 밀어낸다. 비트 대신 기타 리프가 전면에 서고, 드럼도 록 밴드에 가까운 질감으로 마감되었다. 랩이 나오긴 하지만 보컬, 연주, 사운드 전반에서 사이키델릭 록 그 자체다. 라키는 오래전부터 록 문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그래서 이 곡은 그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난 결과처럼 들린다. 

그런가 하면 도이치(Doechii)와 함께한 ‘ROBBERY’는 재즈와 랩이 관능적으로 만나는 지점이다. 힙합에서 재즈 랩은 익숙한 하위 장르다. 그러나 이 곡은 기존의 보편적인 장르 문법과 다른 길을 갔다. 재즈를 샘플링하거나 연주해서 힙합 비트와 결합시킨 방식이 아니라 피아노 코드, 베이스 라인, 드럼 등 재즈 음악 자체에 랩으로 뛰어들었다. 음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고 박자 또한 유연하게 변화하는 가운데 라키는 느긋하게 랩을 밀어 넣고 도이치가 그사이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사랑과 욕망, 서로를 빼앗고 휘두르는 관계를 은유적으로 풀어낸 이 곡에서의 ‘강도행각’은 그야말로 감정의 약탈에 가깝다. 

느려진 앨범의 속도와 감정의 여백을 느낄 수 있는 두 곡, ‘WHISKEY (RELEASE ME)’와 ‘PLAYA’도 빼놓을 수 없다. 몽환적인 무드와 클라우드 랩으로 대표되는 라키의 초기 스타일이 묻어나서 반가운 곡들이다. ‘WHISKEY (RELEASE ME)’에서는 몽글몽글하게 퍼지는 신스 패드와 느슨한 리듬 안에서 술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을, 재즈 기타리스트 리 릿나워(Lee Ritenour)의 ‘Is It You?’(1981)를 샘플링한 ‘PLAYA’에서는 1980년대 펑크(Funk) 요소와 트랩을 버무린 비트 위로 화려한 삶과 허세를 풀어놓는다. 

한편 ‘STOLE YA FLOW’는 앨범에서 가장 문제적인 곡이다. 드레이크(Drake)를 저격했다는 추측을 부른 2024년 싱글 ‘HIGHJACK (Right Back)’과 비슷한 주제를 이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라키는 이번에도 해당 가사가 드레이크를 겨냥한 것이라고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이미 많은 매체와 팬들은 디스곡임을 확신하는 분위기다. 사운드 자체부터 매우 위협적이다. 낮게 깔린 808 베이스와 거칠게 왜곡된 신스가 먼저 귀를 압박하고, 드럼은 시종일관 직선적으로 밀어붙인다. 그리고 라키는 친구에서 적이 되어버린 상대를 향해 꾸짖는다. “네가 내 플로우를 훔쳤어.”

이처럼 라키의 다양한 면모와 자유분방한 실험으로 가득 찬 앨범을 따라가다 보면, 이 프로젝트가 힙합 앨범의 문법으로만 설명하긴 어렵다는 느낌이 선명해진다. ‘Don’t Be Dumb’을 둘러싼 이미지와 사운드는 한 편의 기괴한 판타지 영화 또한 떠올리게 한다. 그 낯선 감각의 중심에는 뜻밖의 이름 두 개가 놓여 있다. 바로 팀 버튼(Tim Burton)과 대니 엘프만이다.

현실과 악몽의 경계에 선 것 같은 영상을 만들어온 영화감독, 그리고 그 세계에 기묘한 숨결을 불어넣어온 작곡가. 라키는 평소 추앙하던 팀 버튼의 모순되고 비틀린 동화 세계를 커버 아트워크에, 그러한 버튼의 영화 동반자이자 음악 페르소나인 대니 엘프만을 작곡에 초대하고, 자신의 영화적 상상력을 결합하여 ‘Don’t Be Dumb’의 이질적이며 불안정한 세상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 세계 안에서 힙합은 더 이상 장르가 아니라 사운드트랙이 된다.

오늘날의 힙합은 점점 더 빠르게 소비된다. 스트리밍 환경은 짧고 즉각적인 자극을 요구하고, 많은 곡이 알고리즘 친화적으로 설계된다. 비슷한 템포와 후렴구, 비슷한 감정선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메인스트림 힙합은 공식처럼 생산되고 있다. 그래서 실패는 줄어들지만, 개성도 함께 희미해진다.

라키는 이 흐름을 굳이 정면으로 거스르지 않았다. 대신 옆으로 비켜선다. 귀를 단번에 잡아끄는 폭발보다는 무드를 유지하고, 설명이 아닌 여백을 남기며, 공감보다는 분위기, 서사보다는 태도가 앞선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응집력이 부족한 작품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특징이야말로 ‘Don’t Be Dumb’을 쉽게 흘려보내기 어려운 이유다. 거창한 복귀 선언 대신 짧게 남긴 태도(‘멍청하게 굴지 말 것’) 하나가 지금의 에이셉 라키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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