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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권(음악평론가)
사진 출처도자 캣 인스타그램

도자 캣(Doja Cat)의 커리어는 언제나 예상 밖의 궤적을 그려왔다.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린 장난스러운 실험 같은 곡에서 출발해 인터넷 밈을 타고 퍼진 ‘MOOO!’로 대중의 웃음을 끌어냈고, 이어서 팝과 힙합, R&B의 결을 섞어내며 세계 무대의 전면으로 나섰다. 그의 음악은 늘 유행을 따라잡으면서도 동시에 역행하는 듯했다. 또한 트렌드에 몸을 담그면서도 그것을 자신만의 무대로 바꿔내는 힘을 지녔다. 펑키한 디스코 리듬과 몽환적인 보컬이 뒤섞인 ‘Say So’(2019)는 그런 도자 캣의 장점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Say So’를 통해 주류 팝의 정점에 선 이후, 그의 음악 여정은 끊임없는 변신과 충돌 그리고 자기 서사의 재정립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2021년에 발표한 ‘Planet Her’는 대중이 가장 사랑한 도자 캣의 이미지가 담긴 작품이었다. 광범위한 장르 혼합과 협업, 매혹적인 멜로디가 돋보인 이 앨범으로 그의 스타덤은 더욱 견고해졌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팝스타로만 소비되는 현실이 불만스러웠기 때문이다. 

곧 소셜 미디어에서의 도발적인 발언과 팬들과의 충돌이 일어났고, 이는 스스로 ‘팝스타’라는 라벨을 벗겨내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Scarlet’(2023)은 바로 그 갈등을 담은 앨범이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대중이 가장 사랑한 자신의 이미지를 찢어버리고 래퍼로서의 근본을 드러냈다. 화려하게 포장한 멜로디와 친숙한 후렴 대신 트랩, 붐뱁, 얼터너티브 힙합 프로덕션과 랩으로 앨범을 채웠다. 레이블과 대중의 기대보다 자신의 예술적 충동을 우선시한 결과에 일부는 당혹스러워했고, 평단은 분열했다. ‘Scarlet’은 여성 래퍼로서의 입지를 의심해온 이들에게 보내는 날 선 대답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이렇듯 격렬한 탈피의 순간을 선사했던 도자 캣이 새 앨범 ‘Vie’에서는 다시금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에 집중했다. 지난 7월 ‘Scarlet’보다 “팝 중심적”일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Vie’에는 팝의 풍미가 가득하다. 다만 1980년대 사운드에 기반을 두었다. 당대 유행한 신스팝의 전자적 반짝임과 디스코 리듬 그리고 오늘날의 팝 감각이 교차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음악 풍경이 교차하고, 때로는 옛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복고적인 결을 띤다. 

디스코팝, 펑크(Funk), 팝랩이 결합한 리드 싱글 ‘Jealous Type’은 대표적이다. 매끄러운 그루브 위에 얇게 깔린 신스 패드, 리드미컬하게 튕기는 베이스 라인, 단순하지만 날카로운 스네어와 킥의 배치가 곡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도자는 사랑과 질투가 뒤엉켜 만들어내는 감정의 불규칙한 파동을 보컬로 체현한다. 특히 후반부에 잠시 스쳐가는 보컬 애드리브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모던 펑크(Modern Funk)와 랩이 어우러진 ‘Cards’, 신스팝의 청량한 무드로 충만한 ‘Stranger’, 관능적인 펑크 그루브를 타고 시저(SZA)와 함께 구애의 노래를 부르는 ‘Take Me Dancing’ 등의 곡도 이번 앨범의 음악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가장 핵심적인 프로덕션 파트너는 잭 안토노프(Jack Antonoff)다. 록 밴드 출신이지만 팝뿐만 아니라 힙합까지 넘나들며 굵직한 발자취를 남기는 중인 그는 도자 캣이 보다 팝적이며 감성적인 음악을 탐구하도록 조력했다. 둘의 첫 협업은 꽤 인상적이다. ‘Aaahh Men!’ 같은 곡에서는 1980년대 드라마 ‘전격 Z작전’(영어 원제는 ‘Knight Rider’)의 주제곡(‘Theme From Knight Rider’)을 샘플링하여 극적이고 역동적인 ‘펑크 + 힙합’ 사운드를 들려주기도 한다.

안토노프가 중심을 잡은 가운데 여러 공동 프로듀서가 배경음악을 깔아주면 도자는 그 위에서 춤추듯 감정을 꺼내놓는다. '관계, 로맨스, 육체적·정신적 사랑에 대하여. 도자는 ‘Vie’를 작업하면서 일주일에 두 번씩 정신 건강 상담을 받았다고 한다. 이 치료가 앨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인간의 경험과 우리의 뇌가 무의식적, 의식적으로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배웠고, 그 결과 감정을 덜 억압하며 표현하기 두렵던 부분도 음악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 예컨대 앨범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인 ‘러브 바밍(Love Bombing: 관계 초기에 과도한 애정, 칭찬, 관심, 선물 등을 집중적으로 쏟아부어 상대를 빠르게 매료시키고 통제하려는 심리적 조작 행위)’이라는 양상은 그가 직간접 경험을 통해 탐구한 것이다. 

‘Vie’에서 그는 종종 사랑과 선택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쉽게 질투를 느끼며, 관계에서 비롯한 불안감과 씨름하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그는 스타의 화려한 이미지 뒤에 있는 한 인간의 얼굴을 드러낸다. 도자의 보컬도 음악이 전하는 감성에 따라 때로는 황량하고, 때로는 관능적이며, 때로는 서늘한 고백처럼 변화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무거운 앨범은 아니다. 쓸쓸함, 불안, 질투 등의 감정이 터져 나오는 이면으로 사랑의 기쁨과 삶에서의 즐거움이 밴 곡들이 절묘하게 분위기의 균형을 맞춘다. 

사랑이란 불확실성 위에 몸을 던지는 행위다. 그래서 고통을 수반할 때도 있지만, 이를 기꺼이 감내할 만큼 황홀한 경험을 선사한다. ‘Vie’는 그러한 사랑의 울퉁불퉁한 질감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앨범이다. 그 속에는 그가 바라는 사랑의 방식도 반영되어 있다. 그는 이 같은 주제를 흥미로운 음악으로 표현해냈다. 마치 인생이 항상 그렇게 심각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복고의 향수와 현재의 향기가 공존하는 곡을 한아름 품은 채, 감정과 스타일 사이의 줄다리기 속에서 도자 캣은 다시 한번 자신만의 목소리를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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