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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권(음악평론가)
사진 출처GQ

영국 힙합은 미국 힙합을 참고하지만, 결코 그 그림자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매년 개성 있고 독창적인 음악가들이 영국 힙합 씬을 차별화하며 풍요롭게 만든다. 이러한 영국 힙합의 정수를 느끼고 싶다면 가장 먼저 들어봐야 할 아티스트는 바로 데이브(Dave)다. 그는 ‘영국 힙합의 지적 심장’과도 같은 존재다.  

2010년대 말부터 영국 힙합의 판도를 바꿔온 데이브의 위상은 수상 이력만으로도 분명하다. 그의 이름은 머큐리 프라이즈, 브릿 어워드, 아이버 노벨로 어워드(Ivor Novello Awards/*주: 웨일스 출신의 연예인 아이버 노벨 로의 이름을 딴 시상식으로 작사, 작곡 부문에 수여한다.) 등 수많은 권위 있는 무대에서 호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트로피보다 데이브가 이룬 더욱 큰 성취는 음악계에 ‘진실한 언어’를 다시 유행시킨 것이다. 그는 음악을 매개로 우리를 런던 남부의 어둡고 축축한 골목으로 데려간다. 그 길 위엔 청춘의 분노와 불안, 가족의 상처 그리고 사회의 냉혹한 구조가 뒤엉켜 있다. 그래서 그의 노래를 듣는다는 건, 그가 살아온 세계를 통과하는 행위와도 같다. 

데이브가 2021년에 발표한 ‘Heart Attack’이란 곡을 처음 들었던 순간이 떠오른다. 처연함이 잔뜩 밴 기타 리프와 피아노, 간헐적으로 놓이는 드럼이 어우러져 가슴 시린 무드를 조성한 프로덕션, 그 절제된 편곡 속에서 감정의 파고를 조각하는 탁월한 랩, 러닝타임 9분 55초에 이르는 곡이 끝나자 잠시 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온몸을 휘감은 여운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6년에 나온 ‘Panic Attack’의 정서적 후속작이기도 한 ‘Heart Attack’은 그해 가장 드라마틱한 곡이자 최고의 힙합 음악 중 하나였다. “데이브는 어떻게 영국 힙합을 대표하는 아티스트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에는 이 한 곡만으로도 답할 수 있다. 그만큼 굉장한 곡이다. 음악으로서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탁월하다. 데이브는 이민자로서의 희생, 정체성, 뿌리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인종차별, 범죄, 빈곤, 런던의 이중성 등을 폭로하고 비판하면서 감정의 변곡선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이 곡을 감상하는 건 단순한 청취 경험을 넘어선다. 그의 랩이 진행될수록 그저 한 아티스트의 서사를 듣는 데 그치기보다는 데이브가 속한 공동체 전체의 숨 막히는 현실을 목격하는 느낌이 든다. 특히 음악이 완전히 사라지고 랩만으로 채워지다가 곡이 마무리될 즈음 등장하는 그의 어머니, 줄리엣의 오열 섞인 독백을 마주할 땐 마음 깊은 곳이 무너져내리는 듯했다. 바로 이런 부분이 데이브의 음악이 지닌 강력한 힘이다. 

데이브는 이번에 발표한 세 번째 정규 앨범 ‘The Boy Who Played the Harp’에서 더욱 내면적인 음악 세계로 나아간다. 그의 랩은 여전히 날카롭지만, 이번엔 그 칼날을 세상에 겨누지 않는다. 대신 그 칼끝을 자신의 내면으로 돌렸다. 전작인 ‘Psychodrama’(2019)와 ‘We’re All Alone In This Together’(2021)에서 이미 내면과 사회적 목소리를 병행해왔지만, 이번 앨범에선 지금까지 겪어온 명성, 책임, 정체성의 교차로에서 더 깊은 자각과 질문을 던진다. 

앨범 제목부터 상징적이다. 성경에서 악령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사울 왕을 위로하기 위해 젊은 목동 다윗이 하프를 연주했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만큼 신앙과 운명이라는 주제가 앨범 전체를 관통한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 데이브는 성공 뒤에 남겨진 공허함, 실패에 대한 두려움, 자신의 뿌리에 대한 고민 등 현실적인 문제를 끊임없이 다룬다. 특히 ‘하프를 연주한 소년’은 다윗을 가리키지만, 한편으로는 ‘현재의 자리에 오르기 전 단지 음악을 사랑하는 소년이었다.’는 그의 회귀 선언처럼 다가온다. 

앨범의 첫 곡 ‘History’는 데이브의 새로운 출발점이다. 이전에도 종종 협업해온 싱어송라이터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와 함께 만들었다. 데이브는 첫 구절부터 신의 계획을 언급할 만큼 자신을 신화화했지만, 그 신화는 영웅담이 아니라 내면의 투쟁에 가깝다. 장중하게 내려앉는 피아노의 잔향 위에서 그는 여전히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말하는지 묻고, 친구들과 마음속에 그려왔던 꿈과 그들이 남런던에서 만들어낸 역사를 이야기한다. 

바로 이어지는 ‘175 Months’는 앨범의 성향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곡 중 하나다. 데이브는 어머니의 신앙과 기독교가 자신의 성장에 끼친 영향부터 도덕성, 신앙, 죄책감, 트라우마 등을 매우 감정적인 언어와 훌륭한 은유를 섞어 고백한다. 끊임없이 신경을 건드리는 보컬 샘플과 불규칙하게 때려지는 드럼이 엮인 프로덕션은 그가 과거에 행한 (종교적) 선택과 지금의 자아가 충돌하는 순간을 절묘하게 사운드로 구현해낸다. 

‘Selfish’는 앨범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제임스 블레이크의 보컬과 피아노가 만들어낸 서늘한 무드 안에 과거 연인 혹은 관계 속에서의 배신과 자기반성 그리고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담겨 있다. 데이브는 곡 내내 화려한 성공 속에서도 스스로를 의심하며, 자신의 ‘도덕적 무게’를 짊어지려 하는 태도를 내비친다. 이렇듯 새 앨범은 데이브가 던지는 질문과 성찰의 연속이다. 그 대상은 주로 자기 자신이지만, 때론 선배 래퍼이기도, 때론 세상의 남자들이기도 하다. 예컨대 ‘Chapter 16’에서는 영국 그라임의 거장 카노(Kano)와 대화하는 형식을 빌려 자신이 세대의 상속자로서 느끼는 무게를 토로하고 조언을 구한다. 명예와 부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후배에게 어떤 지침을 남겨야 하는지 등등. 종교적 은유 아래 개인적인 주제를 치밀한 구성으로 담아냈다. 

그런가 하면 ‘Fairchild’에서는 그가 아는 여성이 겪은 여러 차례의 성희롱과 학대 사건을 회고하며 세상에 만연한 여성 혐오를 겨눈다. 데이브는 지난 2019년에도 ‘Lesley’란 곡을 통해 이 같은 주제를 다룬 바 있다. 이번에는 관찰자와 피해 여성의 입장을 넘나들면서 다양한 관점으로 랩을 전개했다. 무엇보다 다른 남성들을 비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행동과 태도 또한 깊게 성찰한다. 마치 시대의 진술서에 가까운 곡이다. 사회적인 주제를 바라보고 다루는 그의 노련한 솜씨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마지막 곡이자 타이틀 곡인 ‘The Boy Who Played the Harp’에 다다르면 주제의 범위가 더욱 장대해진다. 데이브의 고민과 자문의 깊이 또한 최고조에 이른다. 제2차 세계대전, 아프리카 시민권 운동, 카르발라 전투, 심지어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 등 정말 다양한 상황 속에 자신을 배치한 뒤 그동안 해왔던 삶의 선택들과 자신의 도덕성을 시험하고 검증한다. 내적 갈등, 조상의 유산 그리고 사회적 논평을 아우르는 이 곡의 가사는 앨범에서 가장 큰 스케일이 돋보인다. 그야말로 데이브의 압도적인 재능을 엿볼 수 있는 곡이다.    

물론 이처럼 데이브가 쌓아 올린 놀라운 서사와 사유적 가사의 가치는 완성도 높은 음악이 뒷받침되었기에 빛을 발한다. 피아노, 하프, 스트링 그리고 최소한의 드럼으로 구성한 프로덕션에서는 절제의 미학이 돋보이고, 그 잔잔한 리듬 위에 목소리를 얹은 랩에서는 감정의 여운이 피어오른다. 데이브의 랩은 전보다 차분해졌지만, 그 어느 때보다 멀리 닿을 것만 같다.

‘The Boy Who Played the Harp’는 오늘날 데이브가 영국 힙합 씬에서 가장 중요한 목소리로 여겨지는 이유를 대변하는 작품이다. 올해 반드시 들어봐야 할 최고의 힙합 앨범 중 한 장이기도 하다. 다만 그 정수를 온전히 느끼려면, 매우 정성스러운 해석의 과정을 수반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유하고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다윗이 하프를 연주하며 사울 왕의 고통을 어루만졌듯 데이브는 음악을 통해 세상을 치유하고, 맞서며, 영감을 불어넣는 메신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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