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일본음악 씬을 통틀어 ‘데뷔 1년 차에 해볼 건 다 해봤다.’는 말은 아무래도 이 팀에게 가장 어울리는 것 같다. 빌보드 재팬 핫 100 1위로 첫 진입함과 동시에 일본 댄스&보컬 그룹 최단 기간 1억 스트리밍을 돌파한 메이저 데뷔 싱글 ‘ROSE’, 여성 그룹 최초로 해당 차트 1, 2위를 동시 석권한 ‘Blue Jeans’와 ‘BAD LOVE’, 여기에 유서 깊은 일본 레코드 대상의 최우수 신인상과 그해 최고 인기 가수가 총집합하는 ‘홍백가합전’ 출연까지. 불과 1년 전만 해도 절실하게 ‘구원을 좇던’ 이 일곱 명의 표류자, HANA는 초기부터 이들을 지도했던 안무가 미카엘(MiQael)의 말처럼 누군가를 ‘구원하는 존재’로의 삶을 새로이 그려내고 있다.

이들의 출발점은 ‘거절’이었다. 걸그룹 제작을 모색하던 기획사 BMSG와 대표 스카이-하이는 10~20대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아티스트 챤미나와 손잡고 2024년 오디션 프로그램 ‘노 노 걸스(No No Girls)’의 론칭을 알렸다. 여기엔 타 유사 포맷과의 명확한 차별점이 있었다. 바로 “키, 몸무게, 나이는 필요 없습니다. 단지 당신의 목소리와 인생을 보여주세요.”라는 파격적인 슬로건이었다. 자신의 외모, 체형, 목소리 등에 대해 “No”라는 말을 들어왔던 이들, 혹은 스스로를 향해 “안 된다.”고 가혹하게 채찍질해온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유니크한 지향점은, 주저하던 이들에게 전에 없던 용기를 불어넣었다. 전 세계에서 몰린 응모 수는 모두 7,000여 건. 이는 세상의 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부정당하고 있던 재능의 수이기도 했다.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특히 흥미로웠던 지점은 ‘실력 검증’이나 ‘경쟁’이 중심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여러 곳을 전전하며 타인의 평가에 자존감이 짓눌려 있던 치카, 한국 기획사 연습생 시절 완벽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을 가혹하게 대했던 지수, ‘프로듀스 101 재팬 더 걸스(PRODUCE 101 JAPAN THE GIRLS)’ 최종 20위에 머무르며 데뷔 문턱에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던 모모카, 엄격한 자기 검열과 소극적인 성격 탓에 나아가야 할 타이밍을 놓치곤 하는 나오코 등. 자신에게 가산점은커녕 마이너스만 부여하는 이들에게, ‘심사’라는 명목으로 부여된 과제는 자신과 마주 보고 화해할 계기를 부여하며 더욱 강력한 ‘나다움’을 장착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오디션의 방향성이 명확히 드러났던 부분이라면 역시 4차 창작 미션이었다. 트랙만을 부여받아 처음부터 끝까지 창작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이곳은 주어진 것을 정확히 해내기보다 자신만이 낼 수 있는 강점을 스스로 탐색하고 연마하는 것이 목표임을 분명히 했다. 이와 함께 하나의 완성작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타인’이 나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비교를 부정하지 않되, 그것을 자기혐오로 귀결시키지 않는 태도. 경쟁을 관계로 전환하고 상대를 ‘또 다른 나’로 받아들이는 순간, ‘셀프 러브’는 비로소 타인까지 포괄하는 확장된 개념으로 완성된다. 챤미나가 멤버들에게 “네가 너 자신을 믿지 못하겠다면, 나를 믿어.”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많은 이들의 마음을 파고든 이 보편적 언어는, 최종 심사 라이브에서 동시 접속자 수 56만 명을 불러모을 정도로 뜨겁고 큰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데뷔 이후의 행보는 자신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했던 오디션의 방향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의 디스코그래피를 관통하는 특징은 역설적이게도 일관된 장르의 부재. 라틴풍의 ‘ROSE’와 ‘Burning Flower’, 애수 어린 모던 록의 감성을 담은 ‘Blue Jeans’, 트렌디한 팝의 경쾌함을 담아낸 ‘My Body’, 러닝타임 전부를 랩으로 채워낸 ‘NONSTOP’은 모두 각기 다른 좌표를 찍는다. 여전히 도전의 연장선상에 있는 느낌이다. 완급 조절은 자신들의 사전에 없다는 듯, 매 순간 한계에 도전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이어온 성장의 궤적을 확장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또한 이들은 일관된 가이드에서 벗어나 각자의 결에 맞는 보컬 운용을 택하고 있다. 기본 데모를 기반으로 이 곡에서 ‘본인만이 할 수 있는 표현, 역할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표출한다는 의미다. ‘BAD LOVE’는 가창 측면에서 이러한 부분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예시다. 후렴구 전반, 특히 “Cause I’m just a kid I’m just kid” 소절을 멤버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베리에이션을 주는 대목에서 그룹이 지닌 자유로움 기반의 장점이 드러난다.

노랫말을 대하는 태도 역시 트랙의 몰입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코하루는 한 인터뷰에서 “(Burning Flower의) ‘I’m the hottest one’이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 가사를 제대로 부를 수 있는 자신이 되기 위해 내가 지금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봤다.”고 언급한 바 있다. 주어진 프레이즈에 어떤 마음을 동기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진정성으로 환원되어 잊고 있던 감정을 선명히 깨워낸다. 부정적인 자기 인식 속에서도 끝끝내 자신을 향한 신뢰를 사수하는 ‘Cold Night’ 속 감지되는 묵직한 설득력 역시, 각자의 삶을 진지하게 겹쳐내고 있기에 가능한 결과물이다.
음악 시장 속에서도 이들의 성공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NiziU나 KATSEYE처럼 국내 기획사가 현지 시장을 겨냥해 만든 걸그룹의 등장, 해외 레이블과 자본의 지원을 받는 로제의 ‘APT.’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Golden’ 등 국적과 제작 주체가 뒤섞인 사례가 늘어나면서 K-팝의 개념이 모호해지고 있는 요즘이다. 이런 흐름에서 그들은 또 하나의 중간 지대를 형성한다. 다국적 구성과 오디션 프로그램 기반의 팀 결성, 치밀하고 타이트한 곡 구성과 높은 난이도의 칼군무 등 이들은 다분히 K-팝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 다만 다양성이라는 일본 시장의 문화적 맥락이 더해지지 않았다면 특유의 독자성은 성립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지원자들의 각기 다른 배경을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소중히 겹쳐 구축해낸 보편성은, 국적이나 언어를 넘어 가치와 서사로 연결되는 음악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2월 말 HANA가 선보인, 그들의 팀명과 동명의 첫 정규 앨범은 숨가빴던 여정 뒤 새로운 시작을 가리키는 이정표로 자리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재차 개인의 확신이 흔들릴 때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No”를 마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1년 동안 우리는 이미 목격했다. 비교를 자기혐오가 아닌 성장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 스스로를 못 믿겠다면 옆에 선 누군가를 믿으면 된다는 것,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말이다. 이 제언은 누군가 형식적으로 가볍게 건넨 위로가 아닌, 이 일곱 개의 방황이 맞부딪혀 쟁취해낸 밝디밝은 청사진이다.
그 서사는 일곱 명만의 것이 아니다. 세상의 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No”를 들어야 했던 이들에게도, 그럼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이들에게도 유효한 메시지다. 부정당한 곳에서 시작했더라도, 그것을 딛고 서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의 긍정이 될 수 있음을, 구원을 좇던 표류자가 구원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한다. 이처럼 비교와 경쟁의 시대 속 ‘서로를 지키고 보완하는’ 연대의 힘을 믿는 HANA의 음악은, 지금 이 순간 또 다른 누군가의 출발점이 되어 오직 그들만의 향기를 퍼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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