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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 찰리 XCX 유튜브

2024년 12월, 찰리 XCX는 영화감독 에메랄드 페넬의 문자를 받는다. 두 사람은 이전에 만난 적이 있지만, 특별한 친분은 없었다. 에메랄드 페넬은 영화 ‘폭풍의 언덕’의 대본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음악적으로 표현할 만한 것이 있는지 묻고, 영화 사운드트랙에 쓰일 노래 1곡 정도를 기대했다. 하지만 찰리 XCX가 “앨범을 만들면 어때?”라고 답하며, ‘brat’의 후속작이 될 ‘Wuthering Heights’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2024년 ‘brat’은 단순한 히트 앨범이 아니라 문화 현상이었다. 덕분에 찰리 XCX는 세상 모든 축제와 파티의 주인공이자, 가장 바쁜 팝스타가 되었다. 그런 그가 왜 12개 트랙이 담긴 사운드트랙 작업을 자처했을까? 이에 관하여 찰리 XCX는 본인이 직접 설명하기로 했다. 2025년 11월 그는 ‘서브스택 뉴스레터’를 개설했다. 첫 번째 글 ‘꿈속에서 제자리걸음 하기(Running on the spot in a dream)’에서 그는 ‘brat’ 이후 겪은 창작자로서의 피로감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수년간 붙들고 있던 아이디어에서 마지막 한 방울을 짜내고, 더 나아가고 싶지만 동시에 자신이 고갈되었다고 느끼는 고통을 토로했다. 바로 그때 찰리 XCX는 ‘폭풍의 언덕’에서 새로운 세계를 찾았다. 그의 표현을 옮기면 그것은 거칠고, 야생적이고, 성적이며, 고딕적이고, 영국식이고, 고통스럽고, 실제의 온전한 문장과 구두점, 문법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담배나 선글라스가 필요 없었다.

이제 반대편을 보자. 에메랄드 페넬의 각본은 어떻게 찰리 XCX에게 영감을 주었을까? 그는 대성공을 거둔 장편 데뷔작 ‘프라미싱 영 우먼’과 맹렬한 찬반을 부른 ‘솔트번’으로 젊은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에메랄드 페넬은 ‘폭풍의 언덕’을 고증에 충실한 시대극으로 만들 생각이 없었고, “10대 소녀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정을 재현”하는 것이 의도라고 밝혔다. 영화는 원작 후반부의 복수극 서사를 삭제하고, 대신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치명적이고 초월적인 로맨스에 집중한다. 여기에 에메랄드 페넬 특유의 도발적 비주얼이 더해질 것은 예상할 수 있다. 평범한 오케스트라 편곡은 그의 전복적 의도를 무력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 대신 멜로 드라마와 현대적 파괴성을 연결할 수 있는 음악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찰리 XCX의 감상은 에메랄드 페넬이 제대로 된 음악가를 찾았다는 신호다.

2026년 2월 13일, 영화와 앨범이 동시에 공개되었다. 찰리 XCX는 모든 사람이 그의 새 앨범을 기다리는 순간 예상을 넘어서는 전환을 선보인다. ‘Wuthering Heights’는 하이퍼팝이나 클럽을 위한 맥시멀리즘이 아니다. 찰리 XCX는 존 케일이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위해 제시했던 음향 규칙으로서 ‘우아하고 야만적인(elegant and brutal)’ 미학을 따른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찰리 XCX의 오랜 동료 핀 킨(Finn Keane)은 오토튠 보컬의 멜랑콜리, 웅웅거리는 드론 같은 현악기, 인더스트리얼 장르의 피드백이 충돌하는 사운드를 구축한다.

앨범에서 처음 공개된, 1번 트랙 ‘House’는 선언적이다. 이 곡은 상당 부분 존 케일의 독백으로 채워진다. 팽팽하고 날카로운 현악을 배경으로 그는 자신이 만든 세계에 스스로를 가둔 영원한 죄수로 분한다. 그 뒤로 찰리 XCX의 오토튠을 거친 왜곡된 목소리가 비명을 지른다. “이 집에서 죽을 것 같아(I think I'm gonna die in this house)”. 이 선택은 스트리밍 알고리즘보다 영화적 긴장감을 우선한다. ‘Wall of Sound’는 제목 그대로의 위력을 발휘한다. ‘Eyes of the World’는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던 스카이 페레이라가 참여했다. 그의 거친 보컬과 침울한 분위기는 찰리 XCX의 현대적 금속성과 만난다. 자기 파괴적 충동이 사회의 억압적인 시선에서 해방되기를 원하는 갈망이 만나는 것처럼.

사운드트랙이라는 외피가 창작적 자유로 이어졌으리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다. ‘슬레이트’ 리뷰가 지적했듯이 찰리 XCX는 ‘폭풍의 언덕’ 각본에 매료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brat’ 이후의 방향 전환에 유용함을 알아봤을 것이다. 파티 걸 페르소나는 무너져 가는 해안가 저택의 촛불이 켜진 음울한 분위기로 교체되었다. ‘brat’의 현대적 레퍼런스를 배제한 앨범은 아티스트가 스스로 완성한 상업적 틀을 기꺼이 파괴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감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앨범이 단지 ‘다르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Wuthering Heights’는 ‘brat’보다 ‘brat’에 앞선 초기 작품들과 비교할 때 매력적인 접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앨범은 2013년 데뷔 앨범 ‘True Romance’의 정신적 후속작 역할을 한다. 찰리 XCX 본인도 두 앨범이 자매와 같다고 언급한 바 있다. ‘True Romance’는 어두운 고딕-팝 미학, 진지한 멜로 드라마, 무드 있는 신시사이저 편곡으로 찬사를 받았다. 그로부터 십수 년 뒤에 나온 사운드트랙은 데뷔작의 우울한 갈망과 전위적 팝 감수성을 되살리되, 그것을 크게 성숙시킨다. ‘True Romance’는 인터넷 문화와 로-파이 전자음악을 통해 실연을 탐구하는 젊은 아티스트의 작업이었다. ‘Wuthering Heights’는 디지털로 합성된 우울함을 라이브 현악 4중주와 전설적인 피처링 아티스트의 참여가 만들어내는 저택의 삐걱임으로 바꿨다. 이는 어린 시절의 고딕 멜랑콜리가 성장기의 지나가는 단계가 아니라, 영화적 스케일로 비로소 꽃을 피울 수 있었던 찰리 XCX의 예술적 근본 요소임을 증명한다.

이는 ‘Wuthering Heights’가 영화에 종속되는 것을 넘어 독립적인 작품으로 더 잘 작동하는 앨범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에메랄드 페넬의 영화에는 각본에 덧붙여 호화로운 시각적 향연이 펼쳐진다.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하이 패션이 등장하고, 캐서린의 침실 벽은 그의 피부를 연상시키는 질감으로 뒤덮여 있다. 찰리 XCX의 음악은 현대적 스펙터클의 일부가 되거나, 거기에서 비롯하는 논란에서 빠져나와 원작의 독창성과 비극성에 직접 동화되어 있다. 더 나아가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관계에 집중하는 영화의 의도를 ‘우아하고 야만적인’ 방식으로 스스로 완성한다. 그것은 현악 편곡처럼 아름답고, 동시에 인더스트리얼 사운드처럼 고통스럽고 파괴적이다.

이제 우리는 2025년 내내 찰리 XCX가 ‘brat’ 시대를 천천히, 하지만 단호하고 확실하게 끝내 온 여정의 뒤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찰리 XCX는 자신의 창작력이 스트로보 조명이 터지는 클럽만 아니라, 문학적 비극 속에서도 강력하게 빛날 수 있다는 확신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사이 ‘brat’은 부식하고 닳고 불타 버렸다. 찰리 XCX는 다음 스테이지로 갈 준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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