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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Noah Dillon

로살리아(Rosalía)의 2017년 발표한 데뷔 앨범 ‘Los Ángeles’, 2018년 ‘El Mal Querer’, 2022년 ‘Motomami’를 잠시 돌아보자. 지난 10년간 신인 아티스트가 선보인 최고의 1-2-3 펀치 혹은 ‘삼위일체’라는 확신이 아깝지 않다. 대중음악 바깥으로 범위를 넓혀야 할지 고민될 뿐이다. 아마 조던 필(Jordan Peele)이라면 이에 대해 할 말이 있을 것이다.

‘Los Ángeles’는 로살리아의 음악적 뿌리다. 앨범은 전적으로 로살리아의 보컬과 라울 레프리(Raül Refree)의 기타 연주로 채워져 있다. 로살리아는 13살 때 플라멩코에 매료되어 노래를 시작했고, 카탈루냐 음악 대학(ESMUC)에서 1년에 한 명만 입학하는 플라멩코 노래(Cante Flamenco) 전공자로 수학했다. 팝 스타가 되지 않았더라도, 그는 여전히 훌륭한 동시대의 플라멩코 가수(cantaora)로 남았을 것이다. ‘Los Ángeles’는 죽음이라는 주제로 실험적 포크 음악과 공명한다.

‘El Mal Querer’는 로살리아의 ESMUC 졸업 프로젝트로 시작되었다. 야심찬 졸업 논문은 플라멩코가 그 영혼을 잃지 않고도 현대 팝 음악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무인도의 외로운 성과로 남지도 않았다. ‘라틴 그래미 어워즈’는 올해의 앨범을 바쳤고, ‘롤링스톤’은 2020년 역대 앨범 500선을 업데이트하며 315위에 올렸다. 스페인어 앨범 중 가장 높은 순위이고, 비영어권 전체를 봐도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게츠/지우베르투(Stan Getz & João Gilberto) 다음으로 40년 이상을 건너뛴다.

‘Motomami’의 로살리아는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기에 자유롭다. 앨범에는 더 이상 ‘Los Ángeles’의 일관된 주제 혹은 ‘El Mal Querer’와 같이 옛 소설에서 빌어온 이야기가 필요 없다. 레게톤, 재즈, 바차타, 발라드를 오가며 무의미한 가사를 쏟아낸다. 설계도 같은 ‘전통’에서 출발한 젊은 아티스트는 신성한 드라마로 ‘건축’을 완성한 다음 그 위에 ‘그래피티’를 쏟아부었다.

로살리아는 새 앨범 ‘LUX’를 내며 선언했다. ‘애플뮤직’ 인터뷰를 보자. “‘Motomami’는 ‘미니멀리스트’였다. ‘LUX’는 ‘맥시멀리즘’이다.” 장르적 파편과 과잉의 이미지로 넘쳐 보이는 ‘Motomami’가 미니멀하다고? 사실이다. 아마 이것이 ‘LUX’의 문을 열기에 좋은 시작일 것이다. 선공개 곡이자 앨범 발매 이후 현재까지도 유일한 싱글이라고 할 수 있는 ‘Berghain’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몇 가지 명시적인 특징을 알아봤다. 첫째, 노래 전반에 쓰인 오케스트라 사운드. 둘째, 오페라의 창법과 아리아의 작법이 스며든 송라이팅. 셋째, 독일어, 스페인어, 영어가 뒤섞인 가사. 넷째, 아방가르드 팝의 상징적인 존재인 비요크(Björk)와 이브 튜머(Yves Tumor)의 피처링. 이후 앨범 ‘LUX’가 나왔을 때 확실해졌다. ‘Berghain’은 ‘LUX’가 ‘Motomami’와 다르다는 선언일 뿐만 아니라, 앨범을 소개하는 가장 편안한 트랙이었다.

앨범의 중심을 이루는 아이디어는 가톨릭, 불교, 힌두교, 수피교, 유대교 전통을 아우르는 전 세계의 여성 성인, 신비가, 예언자들의 삶에 대한 깊은 탐구에 있다. ‘애플뮤직’ 인터뷰에서 말하길 “그들이 수녀이자 시인이었다는 점이 몹시 흥미로웠다. 그래서 그들에 대해 알아봐야겠다고, 그들이 실제 쓴 것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로살리아는 1년에 걸쳐 성인전(hagiography)을 읽고, 그들이 사용한 언어를 알아보고, 가사를 썼다.

‘LUX’에는 스페인어와 영어를 넘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우크라이나어, 아랍어, 히브리어, 라틴어, 일본어 등 13개 언어가 등장한다. 이는 ‘언어적 관광’ 혹은 의미와 무관한 음향적 선택이 아니다. 대부분은 노래에 영감을 준 성인의 국적, 역사적 사실, 종교적 맥락과 연관이 있다. 예를 들어 ‘Porcelana’의 일본어 가사는 17세기의 선종 비구니 료넨 겐소(了然元総)의 전설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미모로 유명했으나 그로 인해 다른 승려들을 산만하게 할 것을 우려한 주지승이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에 불에 달군 인두로 자신의 얼굴을 망가뜨렸다고 알려져 있다. ‘Mio Cristo Piange Diamanti’의 이탈리아어 가사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와 성녀 클라라의 정신적 관계, 그리고 세속적 달콤함을 포기한 희생에 대한 찬탄을 담는다.

로살리아는 ‘수녀이자 시인’이었던 성인들에 대한 탐구를 현대 예술가의 삶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그에게 음악이란 계시와 같은 신비적 체험이며, 현실의 고통에도 절대적으로 신을 구하는 마음과 닮았고, 그 신은 완전한 복종과 희생을 요구한다. 로살리아는 앨범 공개에 앞서 서브스택에 ‘Una escalera hasta Dios (하늘로 가는 계단)’이라는 글을 올린다. 그는 “노래는 중력에 대항하는 가장 아름다운 운동”이며, “수직성에 대한 러브 레터, 신에게 이르는 사다리”라고 썼다. 사진을 함께 올린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는 현대 음악 수도원의 성녀이자 로살리아의 롤모델일 것이다.

이제 ‘LUX’는 쉬운 길을 갈 수 없음을 알 것이다. 이 앨범은 알고리즘과 도파민으로 상징되는 수동적 감상의 반대편, ‘안티-이지 리스닝’이다. 이 앨범의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노래를 듣기 좋게 만드는 초콜릿 코팅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이 클래식 음악을 건너뛰게 만드는 복잡함에 가깝다. 다니엘 비야르나손(Daníel Bjarnason)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 편곡에 참여한 또 다른 현대 음악가 앙헬리카 네그론(Angélica Negrón)과 캐롤라인 쇼(Caroline Shaw)는 오케스트라가 앨범 전체에 걸친 구조적 핵심이 되도록 했다. 여기에 카니예 웨스트의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등을 함께 만든 노아 골드스타인(Noah Goldstein)의 프로듀싱, 실험적 전자음악가 베네티언 스네리스(Venetian Snares)의 드럼 프로그래밍은 혼란스러운 리듬 요소로 불안감을 부여한다. 앨범 안에는 루프가 전혀 없다. 의식적인 선택이다. 반복되는 구절이 있더라도 다시 한번 불렀다. A에서 B로 건너뛰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를 공간처럼 지나가고 몰입한다. 결국 우리는 AI가 재현할 수 없는 음악의 인간성을 목격한다. ‘Berghain’의 비디오에서 오케스트라의 침입은 블루스크린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 의례에 성스러운 의상이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앨범 커버부터 음악을 듣기 전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로살리아는 수녀를 연상시키는 머리 장식과 의상을 입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옷은 구속복처럼 보인다. ‘Berghain’ 비디오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의 패션 아카이브를 충실히 발굴한다. 특히 초반부에 스쳐지나는 알렉산더 맥퀸의 ‘묵주 힐’은 특유의 으스스한 분위기와 신앙적 뉘앙스로 종교적 상징, 여성의 신성화를 탐구하는 앨범의 주제에 강렬한 이미지를 더한다.

이토록 무수한 야심으로 채워 넣은 앨범은 어떻게 되었을까? ‘LUX’는 발매 하루 만에 스포티파이 스트리밍 4,210만 회로 ‘Motomami’의 기록 1,600만 회를 두 배 이상 넘어서고, 캐롤 G의 스페인어권 여성 아티스트 기록을 깼다. 빌보드 200에서는 4위로 데뷔하며 ‘Motomami’의 33위 기록을 크게 경신했다. ‘LUX’는 올해 가장 광범위한 호평을 받았다. 평론 집계 사이트 메타크리틱 97점으로 2025년 최고이고, 역대 4위에 해당한다. 벌써부터 내후년 그래미 어워드의 유력한 ‘올해의 앨범’ 후보로 여겨진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13개 언어로 된 길고 복잡한 노래가 담긴 앨범이 이룩한 성과다. 로살리아는 대중음악에서 ‘과잉’의 정의를 다시 밝힌다. ‘LUX’는 라틴어로 빛을 뜻한다. 로살리아는 따뜻한 햇살 같은 것이 아니라 무심히 기적과 소멸을 행하는 압도적인 존재를 상상했을 것이다. 영화 ‘선샤인’의 눈이 멀 것 같은 빛이다. 테드 창의 소설 ‘지옥은 신의 부재’가 묘사한 천사의 강림이 그와 같을 것이다. 어떤 음악은 우리를 아주 먼 곳까지 데려간다. 때때로 좀 지나쳐서 그것을 듣기 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로살리아는 마리아 칼라스를 따라 성녀로 시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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