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르세라핌, 아일릿, KATSEYE의 테크노
K-팝에서 테크노가 서사로 번역되다
Credit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쏘스뮤직, 빌리프랩, HYBE x Geffen

K-팝에서 ‘테크노’라는 키워드가 요즘처럼 자주 보인 시절을 찾으려면 ‘세기말’ 혹은 이정현의 시대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물론 당시의 테크노는 엄밀한 의미의 장르 용어도 아니었다. 미래지향적 댄스 음악 혹은 특정한 춤 동작으로 대변되는 유행의 일부였다. 2010년대 초에는 빅룸 스타일과 DJ 페스티벌로 기억되는 ‘EDM’이 그 자리를 잠시 물려받았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 테크노가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결이 조금 다르다. 모호하고 단편적인 이미지로 소비되거나, 때로 희화화를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니라, K-팝이라는 글로벌 장르의 구성 요소 중 하나로 무대의 중심에 선다.

작년 7월 블랙핑크의 ‘뛰어(JUMP)’가 신호였다면, 최근 KATSEYE의 ‘PINKY UP’, 르세라핌의 ‘CELEBRATION’, 아일릿의 ‘It’s Me’ 등으로 이어진 흐름은 물결을 이룬다. 이는 몇 년간 클럽 또는 전자음악이 주류 팝의 중심 서사로 편입된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단적으로 지난 3년 동안 그래미 어워드의 베스트 댄스/일렉트로닉 앨범 부문을 돌아보자. 2023년 비욘세의 ‘RENAISSANCE’는 소수자 커뮤니티가 개척한 언더그라운드 댄스 씬을 기념한다는 역사적 의미는 물론, 대부분 장르 아티스트가 차지하던 댄스/일렉트로닉 카테고리에서 팝 슈퍼스타가 상을 받는 인정으로 이어졌다. 2024년 찰리 XCX의 ‘BRAT’은 발매 전후 1년에 걸쳐 문화적 사건이 되었고, 하이퍼팝으로 대변되는 기계적, 공격적 사운드가 비평과 상업 양면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2025년 FKA 트윅스의 ‘EUSEXUA’는 대중음악계가 실험적 시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시험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레이디 가가는 ‘MAYHEM’으로 부활했다.

하지만 해외 팝 씬의 유행 만으로 올해 K-팝의 테크노 흐름을 설명할 수 없다. 여기에는 넘쳐 들어온 유입만이 아니라 능동적인 선택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IMS 전자음악 비즈니스 리포트’는 동 장르 업계를 다루는 가장 포괄적이고 역사 깊은 보고서다. 최근 발표된 2025/6년 버전에서 눈에 띄는 대목 중 하나는 세부 장르별 인기 차트다. 2025년 글로벌 전자음악 시장 규모가 사상 최대인 151억 달러 규모에 이르렀다는 거시 지표 못지않게 미시적 취향의 이동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핵심 추세는 여전하다. 감상적인 면모를 갖춘 하우스 계열이 여전히 상위권을 지배하는 동안, ‘피크/드라이빙’으로 표현되는 정통 테크노는 2019년 1위에서 2025년 5위로 하향하고 있다. 그런데 ‘로/딥/힙노틱’으로 표시되는 빠르고 공격적인 성향의 테크노가 2025년 1, 4분기에 10위로 처음 등장했다. 더 거칠고 날것의 테크노에 대한 수요가 틈새시장이 아니라 주류 취향을 노리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KATSEYE의 ‘PINKY UP’, 르세라핌의 ‘CELEBRATION’, 아일릿의 ‘It’s Me’의 중요한 공통점은 테크노라는 키워드보다 그 속도에 있다. BPM 150 이상의 속도는 미국 팝계보다 유럽, 특히 테크노 강국 독일의 DJ들이 대중적 랩과 보컬을 빌려 오면서도 포기 않았던 핵심 가치다. 미국의 클럽 팝이 BPM 130 이하의 하우스 그루브에 머물며 듣기 좋은 댄스를 지향했다면, 유럽의 하드 테크노 계열은 BPM 150을 넘나들며 몸을 끌어올리는 속도를 고수했다. 세 곡이 택한 것은 전자의 쾌적함이 아니라 후자의 압박이다. 속도는 측정 가능한 수치가 아니라 미학적 선택이다. 그래서 묻게 된다. 왜 K-팝은 테크노가 안정적으로 군림하던 시기가 아니라, 하필 하드 테크노가 막 부상하는 순간에 그것을 채택하는가?

우선 오늘의 K-팝에게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K-팝은 이제 정점에 오른 사운드에 대한 추격과 번안이 아니라 아직 언덕 너머에 있는 변곡점을 포착해 선점과 주도를 겨냥할 수 있다. 하드 테크노의 부상은 새로운 파도가 온다는 선명한 징조다. 끊임없는 스타일의 변화는 K-팝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다.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를 퍼포먼스로 납득시키는 것은 그 특기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움트는 새로운 흐름과 대중적 취향을 연결하는 데에 이보다 적합한 장르는 없다.

이 현상이 무분별한 수입 혹은 범람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다. ‘IMS 전자음악 비즈니스 리포트’는 2025년 가장 빠르게 성장한 전자음악 시장으로 인도네시아 브레이크비트, 베트남 비나하우스 그리고 한국 시장을 1~3위로 언급했다. 한국 시장을 동남아 지역 장르처럼 단일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세 시장을 거칠게 요약하면 로컬 클럽에서 성장해 주류 대중음악, 그리고 틱톡과 결합한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요컨대 아시아의 전자음악은 더 이상 서구 트렌드의 수입국이 아니라, 성장 동력의 일부다. 틱톡에서 테크노 관련 해시태그가 주류 카테고리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했다는 언급과 함께 보면, 거칠고 빠른 취향이 춤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숏폼 포맷에서 매력을 발휘하는 유기적 그림이 드러난다. K-팝이 이 흐름을 외면한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르세라핌은 ‘나는 두렵지 않고, 역경을 통해 더 강해진다.’는 서사를 꾸준히 이어왔다. 동시에 ‘CRAZY’의 핑크팬더리스, 데이비드 게타 리믹스 등 장르와의 연결을 다져왔다. 이들에게 ‘댄스 사운드’와 ‘자기 긍정’은 데뷔부터 축적된 정체성이지, 2026년에 갑자기 빌려온 옷이 아니다. ‘CELEBRATION’이 장르적으로 가장 진지한 편에 서는 것은 놀랍지 않다. 두렵지 않아 강한 것을 넘어, 두려움을 알기에 더 강한 ‘FEARLESS 2.0’ 선언은 흉터를 끌어안는다. 남들과 다른 외형 탓에 스스로 숨은 크리처를 멤버들이 쫓고, 끝내 마주한 순간 자신들 역시 흉터를 가진 존재였음을 드러낸다. 완벽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 서로를 발견하는 결말은 결핍을 지닌 이들을 위한 파티로 끝맺는다. 하드 스타일은 감상에 앞서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만드는 장르이고, 소수자 연대 찬가가 도달할 종착지로 완벽한 그릇이다. ‘CELEBRATION’은 요란할 수밖에 없다. ‘BOOMPALA’가 축제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KATSEYE가 선보인 ‘Touch’와 ‘Gnarly’ 등의 하이퍼팝 문법은 음원보다 무대에서 더 빛을 발했고, 이들이 글로벌 걸그룹으로서 자신들을 차별화하고 빠르게 성장한 배경이다. ‘PINKY UP은 무대로 증명하는 이들의 가치에 충실하다. 이 노래는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직전에 공개되어 기대를 응축했다. 그리고 사하라 스테이지의 6만 명 관중 앞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하이퍼팝 질감으로 시작한 노래는 코러스에서 킥을 쏟아낸다. 이 곡은 듣는 것이 아니라 뛰는 것이다. 약간의 절제가 느껴지는 마지막 질주는 공연이라면 얼마든지 연장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일릿의 ‘It’s Me’는 가장 팝적이다. 하지만 댄스 팝 장르에서 연극적 요소를 과장하다가 흔히 등장하는 그로테스크한 정서를 빼고, ‘더 이상 귀엽지 않다고’ 우기는 귀여움을 집어 넣는다. 시각적으로 강렬한 이미지에서 비롯하는 위악적 미학은 이미 사랑받고 있음을 아는 능청으로 대체되었다. 팬덤의 언어(“Who’s your bias? I’m your bias”)를 그대로 가져와 비트는 선택이 영리한 이유다. 질주하는 비트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는 대조적인 틀이 되고, 스스로 주인공이 되지는 않는다. ‘GRWM (Get Ready With Me)’의 드럼앤베이스가 장르만 다를 뿐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 다른 어떤 팀이 아니라 아일릿에게 가능한 무엇이 있다는 뜻이다.

요컨대 장르적 DNA는 귀결이 아니라, 차이가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세 팀은 각각 ‘연대의 송가’, ‘페스티벌 앤섬’, ‘영악하지만 투명함’이라는 전혀 다른 정서에 도착한다. 그래서 마지막 질문은 각자의 테크노가 자기 서사에 충실한지, 그 빠른 속도를 각자의 정체성으로 적절히 번역하는지 묻는 것이다. 세 곡은 각자의 자리에 정확히 도착해 있다. 지금 K-팝은 장르의 표정을 빌려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부상하는 순간에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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