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음반산업협회(RIAA)에 따르면, 2020년 미국 음악 시장에서 실물 음반의 비중은 9%로 초라하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보면, LP의 약진이 보인다. 2020년 LP의 매출은 6억 달러를 넘어, 1986년 이래 처음으로 CD 매출보다 커졌다. 영국의 LP 시장도 1990년대 초 수준을 회복했다. 그리고 시장의 일부처럼 보였던 현상은 지난 6월 12일자 빌보드 차트까지 영향을 미쳤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evermore’가 지난주 74위에서 1위로, 5개월 만에 ‘빌보드 200’ 차트 1위로 돌아왔다. 앨범 판매가 19만 2,000장으로 지난 주보다 84배 급증했는데, 그중 LP만 10만 2,000장이다. 이는 역사상 LP의 주간 판매 최고 기록이다. 작년 12월 앨범 발매 당시부터 선주문을 받았고, 지난 5월 말 시장에 풀리면서 한꺼번에 판매 기록이 반영되었다. 비슷한 일이 다른 규모에서도 벌어진다. 같은 주 파라모어는 2007년 앨범 ‘Riot!’의 LP 재발매로 7,000장을 팔아서 ‘톱 앨범 세일스’ 8위에 올랐다.
 

스트리밍이 음반 시장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한다는 말은, 달리 표현하면 음반 시장의 한계가 스트리밍 시장의 크기로 정해진다는 뜻이다. LP 시장은 아티스트와 음반 회사 모두에게 그 한계를 넘어서는 기회를 준다. 테일러 스위프트와 같은 강력한 팬 베이스는 다양한 버전의 LP 한정판에 가치를 부여한다. 음반 가게만 아니라 모든 온ㆍ오프라인 소매점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된다. 이 시장에서 빨간색은 페라리가 아니라, 타깃이다.
 

‘바이닐 미, 플리즈’는 LP 재발매 전문 레이블이며, 동시에 매달 1장의 LP를 구독 서비스로 제공한다. 이들은 현재 8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LP 시장은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시작하여, 40대 이상과 20대 초반으로 확대 중이다. 코로나19와 록다운이 LP 시장에 확장성과 속도를 더한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 시장은 지난 몇 년간 입지를 다져왔고, LP의 매력 포인트도 새롭게 발견된 것은 아니다. 실물이 손에 잡힌다는 부분에서 LP는 크기와 디자인 측면에서 CD를 압도한다. 어차피 CD 플레이어도 없는데, 이왕이면 더 크고 예쁜 것이 낫다.


TRIVIA

LP의 인기

LP 시장은 이미 다양한 버전을 동시에 내어 놓는 것에 익숙하다. 색상, 마블 문양, 투명도 등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evermore’는 각기 다른 커버 사진과 LP 디자인을 8가지 이상 내놓았다. 좀 더 적극적으로 물리적 경험을 제공하고자 하는 아티스트들도 있다. 라임세이어스는 동봉된 크레용으로 어린이 놀이 책처럼 자신만의 앨범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카마시 워싱턴은 LP 4장짜리 앨범 패키지에 5번째 음반을 숨겨놓았다. 앨범 패키지를 뜯어내야 찾을 수 있다.

글.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 전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