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대표작 ‘토이 스토리’ 시리즈가 등장한 지 어느덧 30년이 넘었다. 그사이 어린이들의 놀이 문화 패러다임도 여러 번 바뀌었다. 인형과 로봇의 시대가 저물고, 컴퓨터와 게임이 아이들의 새로운 놀이 도구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그럼에도 여전히 ‘토이 스토리’ 시리즈가 전하는 메시지가 벌써 다섯 번째 우리 마음을 뒤흔드는 이유는 뭘까?
지난 6월 전 세계에 개봉한 ‘토이 스토리 5’는 현재 7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거두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275만 관객을 돌파하며 여전히 흥행 중이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언제나 비범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며 삶의 깨달음을 안겨주는 픽사 애니메이션이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고 돌아왔는지, ‘토이스토리5’의 매력을 소개한다.
장난감 vs. 테크
1995년 작 ‘토이 스토리’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첫 번째 장편영화이자, 최초의 컴퓨터 3D 애니메이션 영화다. 평단과 대중을 모두 만족시킨 성공을 거두자, 이후 픽사는 시리즈를 거듭 제작했고 2010년에 공개된 3편은 영화 역사상 가장 완성도 높은 3부작 중 하나라는 극찬까지 받았다. 그런데 그사이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며 아이들의 놀이 문화가 컴퓨터와 게임 중심으로 변화했고, ‘토이 스토리’ 제작진은 장난감을 둘러싼 변화하는 시대상을 자연스럽게 각본에 담아냈다.
5편을 보기에 앞서 지난 시리즈의 장대한 여정을 잠깐 되짚어보자. 이야기의 시작은 언제나 장난감들의 멸종 위기였다. 소년 앤디의 최애 봉제 인형 카우보이 우디는 어느 날 앤디가 최첨단 플라스틱 피규어 버즈 라이트이어를 새로운 생일선물로 받게 되자 굉장한 위기를 느낀다. 앤디에게 버림받을까 봐 동료 장난감들을 질투하던 우디는 온갖 모험을 거치면서 오히려 버즈와 둘도 없는 절친이 되었다.
이후 우디와 버즈는 자신들의 주인인 앤디가 성장하면서 장난감을 멀리하게 되는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3편에서 이들은 대학 진학을 앞둔 앤디가 집을 떠나면서 보니라는 이웃집 소녀에게 장난감을 물려줄 수 있도록 도왔다. 4편의 우디는 장난감들이 누군가로부터 더 이상 버림받지 않는 삶을 선택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여줬다. 우디 덕분에 이제 장난감들은 아이들의 방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렇다면 5편에서는 어떤 위기가 장난감들의 일상을 뒤흔들게 될까? 바로 아이들의 일상생활 패턴을 뒤바꿔놓은 21세기 스마트 테크 기기의 등장이라는 소재를 갖고 돌아왔다.
오래된 장난감 대 새로운 캐릭터의 갈등 구도 자체는 새롭지 않다. 1편에서 겪었던 낡은 장난감 우디와 신제품 버즈 사이의 갈등, 2편에서 수집가의 사랑을 갈망하는 늙은 카우보이 봉제 인형과의 대립, 그리고 3편에서 주인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향기 나는 인형 랏소와의 싸움까지, ‘토이 스토리’ 시리즈는 언제나 반복적으로 이런 갈등 구조를 활용했다. 4편에서는 불안한 심리를 가진 캐릭터 포키를 악역 대신 내세웠지만, 각각의 영화가 추구하던 갈등 구도 자체가 극적으로 바뀐 건 아니었다.
그런데 5편의 위기는 이전 시리즈의 위기 양상과는 추구미가 다르다. 보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자 하는 낡은 장난감들이 신문물 릴리패드를 질투하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의 장난감 주인공들은 진짜 위기는 테크놀로지 기기로 대표되는 릴리패드가 아니라 보니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보니가 친구들과 관계 맺지 못한 채로 방에서 역할극에 빠져 나이 들게 된다면, 장난감 입장에서는 오래 사랑받을 수 있어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보니를 위한 길이 아니다. 그때부터 영화는 방향을 전환해 보니와 같은 취향을 지닌 친구 찾아주기 미션이 펼쳐진다.
여러분은 이 대목에서 무엇을 알아차렸는지 궁금하다. 픽사의 제작진이 부모의 마음으로 5편의 스토리를 기획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놀이의 본질은 무엇일까? 어른이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물려줘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값비싼 장난감을 많이 소장하는 것이 놀이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 아이들끼리 서로 대면하여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바로 ‘토이 스토리’ 시리즈가 추구하는 장난감의 본질, 나아가 진짜 놀이의 형태임을 이번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장난감의 세대 교체, 픽사의 세대 교체
이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는 캐릭터는 바로 제시다. 이전 시리즈에서는 항상 우디와 버즈가 전면에 나서 사건을 해결했다. 과거 시리즈를 꿰고 있는 관객이라면 이번 영화에서 제시가 버즈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리더의 위치에 오른 모습을 너무나 반길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3편의 명장면 중 하나를 다시 떠올려보자. 설정이 리셋되어 스페인어 버전으로 바뀐 버즈가 쓰레기 하치장에서 제시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목숨을 걸고 지켜내던 장면은 ‘토이 시리즈’ 사상 가장 로맨틱한 명장면이었다.
제작진은 이 설정을 놓치지 않았고 이번 5편에서 이를 제대로 활용한다. 새로운 여성 리더 제시에게 한없는 사랑을 쏟아붓는 버즈는 너무 사랑스럽다. 또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제시의 과거사도 밝혀진다. 제시를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주인 에밀리의 사연을 통해 제작진은 장난감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장난감은 단지 유희의 수단으로 머물지 않고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구 같은 존재라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장난감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제작진의 연출 의도가 느껴진다.
이번 5편의 주제곡을 직접 작곡하며 참여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 ‘I Knew It, I Knew You’가 바로 제시의 마음을 상상하며 만들어진 곡이다. 과거의 지나가버린 인연과의 한때를 노래하고 있지만, 그리움보다는 내일을 노래하는 곡이다. 과거의 인연이 지금의 우리를 얼마나 좋은 사람으로 성장시켜줬는지, 그 인연의 가치를 알아봤던 시절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노래한다. 제시는 과거의 주인 에밀리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늘 마음 한구석에 담아두고 있었다. 시리즈 내내 밝게 행동해온 제시가 실은 마음속 깊은 그림자를 숨기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환기하면 슬퍼지기도 하지만, 에밀리의 진심을 알게 된 제시가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되는 장면에서는 오히려 가슴이 뭉클해진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바로 그 순간의 제시의 감정을 노래한다.
우디와 버즈의 관계에서 제시로, 장난감 세계의 주인공만 세대 교체가 된 것이 아니다. 연출진도 성공적인 세대 교체를 이뤘다. 1편의 기획부터 줄곧 참여했던 앤드류 스탠튼 감독과 함께 공동 연출을 맡은 케나 해리스 감독은 2018년 픽사에 스토리 아티스트로 입사해 ‘루카’에서 스토리보드 리드를, ‘인사이드 아웃 2’에서는 스토리 슈퍼바이저를 맡았다. 칼아츠를 졸업한 인재로, ‘토이 스토리 5’의 공동 연출 감독이라는 큰 자리를 맡기까지 차근차근 성장해왔다. 픽사 영화의 연출을 맡는 30대 젊은 감독의 출현이 너무나 반갑다.
‘토이 스토리 5’는 이전 시리즈가 늘 그랬듯 시대의 고민을 안고 있는 영화다. 이제 현실에서 아이들이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은 지구 바깥의 악당이 아니라 그들 손에 쥐어진 스마트 스크린이다. 어른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줘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스크린 타임'의 제한이 정답일까? 이제 대면해 말을 건네는 것보다 온라인 채팅이 편한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줘야 할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토이 스토리 5’는 놀라운 깨달음을 안겨주는 이 시대 최고의 장난감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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