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음반 차트에서 J-팝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일상이 되었다. 2026년 지금,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 타이업(タイアップ)은 물론 숏폼 등지에서 챌린지로 유명해진 노래들은 물론, 불쑥 알고리즘을 타고 유튜브 메인 페이지에 나타난 음악까지 다양한 결의 J-팝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각기 다른 방식과 매력으로 자신들만의 리스너들을 확보한 J-팝 아티스트 여섯 팀을 골라봤다. 이미 익숙한 이름도 있고, 처음 들어보는 이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담할 수 있다. 지금 이들의 음악은 J-팝의 새로운 지형을 그려내고 있는 만큼, 절대 당신의 귀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에메(Aimer)
에메는 현재 J-팝 아티스트들이 팬층을 넓혀가는 과정을 정석적으로 밟아온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다. 2011년 에메의 메이저 데뷔 곡 ‘六等星の夜’는 애니메이션 ‘NO.6’ 엔딩 곡으로 발탁되며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2015년에 발매한 여덟 번째 싱글 ‘Brave Shine’은 TV 애니메이션 ‘페이트 / 스테이 나이트 [언리미티드 블레이드 워크스] 2기’ 오프닝에 발탁되어 그해 10월 일본 애니메이션 잡지 ‘뉴타입’에서 주최하는 ‘뉴타입 애니메이션 어워드 2014-2015’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이런 애니메이션 타이업 효과를 톡톡히 누렸던 에메는 2021년 ‘残響散歌’로 정점을 찍는다.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환락의 거리편’의 오프닝이었던 ‘残響散歌’는 수없이 숏폼 및 애니메이션 클립 영상에서 재생되며 큰 인기를 얻었다. 그 결과 공식 유튜브 영상의 조회 수는 8월 19일 기준 약 3억 300만 회를, 2022년 2월 ‘더 퍼스트 테이크(THE FIRST TAKE)’에서 공개한 라이브 영상 역시 5,783만 회를 기록 중이다. 2022년 빌보드 재팬 핫 100에서 연간 종합 1위를 달성했고, 일본레코드협회로부터 트리플 플래티넘 인증(75만)까지 받으며 에메는 서브컬처 쪽 수요층을 넘어 대중까지 사로잡으며 명실상부한 싱어송라이터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7월 에메는 특유의 허스키한 보컬이 돋보이는 디지털 싱글 ‘Live to Survive’를 발표했다. 인기 라이트노벨 ‘소드 아트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콘솔 게임 ‘Echoes of Aincrad’의 주제가다. 이처럼 에메는 스스로가 가장 자신 있는 영역에서 자신만의 위치를 공고히 다져가고 있는 중이다.

프레데릭(フレデリック)
밴드 프레데릭은 얼핏 보면 2020년에 알고리즘의 수혜를 받아 큰 인기를 누리게 된 케이스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크나큰 오해다. 이 밴드는 2009년부터 인디 활동을 해왔기에 꽤나 잔뼈가 굵다. 심지어 대표 곡인 ‘オドループ’조차도 메이저 데뷔 곡이 6년 만에 애니메이션 ‘야마다와 7명의 마녀’ 오프닝 곡으로 채택되는 등 대중에게 뒤늦게 도달한 사례다.
‘オドループ’가 이렇게까지 히트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무표정한 얼굴로 의미를 알 수 없는 포즈를 취한 두 여성이 서 있는 섬네일이 강하게 시선을 잡아끈다. 궁금증이 생겨 클릭해보면, 제목처럼 춤을 출 수밖에(“踊る”) 없게 만드는 밴드 사운드가 바로 치고 들어온다. 쉼 없이 질주하는 프레이즈와 달리 영상 속의 모든 이가 무표정한 표정으로 노래하고,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이 기묘한 대비를 이룬다. 여기에 반복적인, 그러나 지루하지 않은 멜로디와 가사가 더해져 듣는 이의 귀를 잡아끈다. ‘루프(ループ, loop)’처럼 말이다. 바로 이 지점이 맞아떨어져 ‘オドループ’는 틱톡 HOT SONG 위클리 랭킹에서 1위를 차지하고 2026년 5월에는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2억 회를 돌파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말하자면 ‘オドループ’는 히트할 만한 바이럴 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던 셈이다.
재미있게도 2016년 ‘우타넷’과의 인터뷰에서 멤버 코지는 자신들의 ‘반복’이라는 요소에 대해 “요즘은 정보량이 많아서 온갖 것들이 그저 흘러가 버리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우리만의 메시지를 반복해 노래하는 게 우리 나름의 전달 방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2026년 현재까지 이어지는 그들의 신념인 동시에 지금 시대의 리스너들이 원하는 것을 꿰뚫는 지점이다. 이 신념이 존재하는 한, 프레데릭은 새로운 곡으로 다시 우리의 알고리즘에 불쑥 나타날지도 모른다.

다오코(DAOKO)
‘打上花火’는 요네즈 켄시의 이름을 널리 알린 노래로 흔히 얘기되곤 하지만, 다오코에게도 새로운 국면을 제시해준 곡이기도 하다. 다오코는 이때를 기점으로 아티스트로서의 자신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2012년, 당시 중 3이던 다오코는 니코니코 동화에 업로드된 보컬로이드의 곡을 랩으로 재해석하는 이른바 '니코 랩’을 올리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몽환적인 코러스와 읊조리는 듯한 래핑, 감성적인 가사를 엮어낸 자신만의 뚜렷한 세계관을 뽐내는 다오코는 고교 졸업과 동시에 메이저 데뷔를 이뤄냈다. 이후에는 ‘さみしいかみさま’, 토푸비츠(tofubeats)의 곡을 편곡한 ‘水星’, ‘かけてあげる’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2020년대 중반의 다오코는 색다른 길로 들어선다. 예명 DAOKO를 인디 시절의 Daoko로 되돌린 그는 독립하여 자신의 기획사 ‘테후테후’를 설립한 뒤 셀프 프로듀싱한 앨범 ‘Slash-&-Burn’을 2024년에 야심차게 발매한다. 그런가 하면 1년 뒤 반다이 남코 뮤직 라이브의 새 레이블 ‘UNIERA’로 이적하며 인터뷰에서 “10대 때 좋아했던 오타쿠 컬처가 재유행하면서 팝 분야로 복귀하겠다는 인식이 겹쳤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렇듯 시대의 흐름에 맞춰 J-팝의 지형을 횡단하며 본인만이 그릴 수 있는 궤적을 그려가고 있는 다오코는, 사실 누구보다도 가장 이 시대에 어울리는 J-팝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이카(ユイカ)
짝사랑 감성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 유이카. 앞서 다뤘던 에메와는 다르게 그는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 한순간에 큰 주목을 받게 된 케이스다. 유이카는 2020년부터 틱톡에서 직접 기타 연주를 하며 다른 노래를 커버하는 영상을 올리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 건 2021년 유튜브에 자신이 작사, 작곡한 ‘好きだから。’를 업로드하면서부터였다. 바이럴을 타고 꾸준히 인기를 끈 ‘好きだから。’는 8월 19일 기준 약 2억 회의 조회 수를 달성했다(리릭 비디오 버전 1.3억 회, 렌(れん) 피처링 버전 5,878만 회, 리-레코딩 뮤직비디오 760만 회 재생).
한국에서는 2022년쯤부터 여러 스트리머들이 커버하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멤버 범규는 2024년 5월에 이 노래를 커버한 버전을 공식 유튜브에 업로드했고, 아이즈원 출신 배우 강혜원 역시 일본 팬미팅에서 해당 곡의 커버를 선보였다. 유이카는 국내의 이런 인기도에 호응하여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 내한 공연을 열기도 했다.
유이카의 유행을 타지 않는 청아한 음색과 감성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가사는 Z세대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여 ‘짝사랑 플레이리스트’ 등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지난 6월 13일에는 유이카의 유튜브 구독자 수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 이처럼 폭발적인 바이럴 인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디스코그래피를 탄탄히 쌓아 올리고 있는 유이카. 그는 지금 시대 한국 대중음악 씬에서 J-팝이 자리 잡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좋은 예다.

오렌지렌지(ORANGE RANGE)
올해로 결성 25주년을 맞은 오렌지렌지는 여기서 언급되는 아티스트가 지나왔던 과정을 전부 경험 중인, 드문 예다. 그들의 커리어에는 J-팝 유통 방식의 변천사가 그대로 담겨 있다.
2001년 결성되고 2003년에 메이저 데뷔를 한 오렌지렌지는 적극적인 타이업 공세를 펼쳤다. 무엇보다 그들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노래는 2004년에 개봉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주제가 ‘花’였다. 당시 오렌지렌지는 이 곡으로 오리콘 차트 4주 연속 1위, 52주간 차트인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다만 이후로는 기세가 한풀 꺾여, 꾸준히 음반을 발매하긴 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2025년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2025년. 오렌지렌지의 이름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2008년에 발표했던 과거의 곡 ‘おしゃれ番長 feat.ソイソース’가 틱톡에서 바이럴을 타기 시작하며 3억 뷰를 달성한 것. 이를 캐치한 그들은 유명 개그 콤비인 마유리카(マユリカ)를 필두로 2007년에 발매했던 ‘イケナイ太陽’의 뮤직비디오를 레이와(令和) 버전으로 새로이 제작했다. 헤이세이(平成, 1989~2019)의 시대 요소 72개를 담은 이 뮤직비디오는 7월 2일에 공개되자마자 유튜브 급상승 동영상 1위 자리를 차지했고, 이 영향으로 그들은 19년 만에 ‘홍백가합전’에 출전했다.
멤버 야마토는 ‘빌보드 재팬’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저희가 나름대로 해왔던 건 변하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흐름에 편승해보고 ‘이게 바이럴이 된다는 건가?’라고 지금 체감하는 중이지만, 앞으로도 변함없이 할 일, 해야 할 일을 해나갈 생각입니다.” ‘花’의 기세가 잠잠해진 후에도 활발히 활동했던 것처럼, 오렌지렌지는 이번 바이럴 히트 뒤에도 항상 자신들이 자신 있게 승부해오던 곡의 색깔을 버리지 않고 그들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데코니나(DECO*27)
마지막까지 이 아티스트를 넣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현재의 J-팝을 말하라면 보컬로이드 씬과 그 씬을 주도하는 DECO*27(데코니나)를 제외하고 이야기할 수 없다. 무려 2008년에 니코니코 동화에 ‘僕みたいな君、君みたいな僕。 (feat. 初音ミク)’를 투고하며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데코니나는 약 18년에 걸쳐 꾸준하게 곡을 발표해왔다. 본인에 따르면 2013년에 지난 5년간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은퇴를 생각한 적도 있었다지만, 그 결심을 철회한 뒤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보컬로이드 프로듀서 중 한 명이다.
니코니코 동화 시절 데코니나의 대표 곡 ‘弱虫モンブラン feat. GUMI’나 ‘モザイクロール feat. GUMI’, ‘妄想税 feat. 初音ミク’처럼 서정적인 분위기를 내는 곡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활동 영역을 차츰 니코니코 동화에서 유튜브로 옮기면서부터는 더 빠른 BPM과 함께 훨씬 실험적이고 풍부한 사운드를 사용하며 가사에 다양하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 노래를 주로 제작하고 있다. 유튜브 시대의 데코니나를 대표하는 곡 ‘ラビットホール feat. 初音ミク’나 ‘ヴァンパイア feat. 初音ミク’, ‘モニタリング feat. 初音ミク’가 그 좋은 예다. 이와 관련해 데코니나는 지난 3월의 인터뷰에서 “라이브를 상정하여, 이런 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제작한 곡들”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데코니나는 짧은 시간 안에 숏폼을 스와이프하는 손가락을 잡아챌 수 있도록 후킹 포인트를 적극 차용한 곡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소위 ‘도파민’을 자극해, 데코니나는 보컬로이드에 대해 전혀 모르던 젠지 세대를 서브컬처 세계로 자연스럽게 유입시키며 J-팝의 저변을 한층 더 넓히는 역할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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