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 시즌 4
김리은: 영원히 유예할 수 있는 성장은 없다.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이하 ‘차쥐뿔’)을 시작했던 당시 만 열아홉이었던 이영지는 어느덧 스물넷이 됐다. 한때 유튜브의 주된 유행이었던 음주 콘셉트의 토크쇼 역시 이제는 크게 새롭지 않은 보편적인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움을 보여줘야 하는 시점에, ‘차쥐뿔’ 시즌 4는 오히려 촬영 장소를 이영지의 10대 시절 기억이 오롯이 쌓인 할머니의 집으로 옮겼다. 게스트들은 자연스럽게 이영지뿐 아니라 촬영을 위해 호캉스를 떠난 할머니를 위한 선물을 사오고, 델몬트 주스 병에 담긴 보리차와 자개장을 보며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할머니에게 친근함을 표한다. 방송이 아닌 사석을 지켜보는 듯한 ‘차쥐뿔’의 판타지는 시즌 4에서 이영지의 가장 내밀한 시간이 쌓인 공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장됐다.
대부분의 게스트보다 어린 나이임에도 토크를 능숙하게 주도하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정확한 언어로 짚어내는 이영지의 역량은 언제나 ‘차쥐뿔’을 지탱하는 동력이었다. 실제 내향적인 그가 어색함을 풀기 위해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거나 서슴없이 춤을 추고, 상대방에 대해 미리 쌓은 이해를 대화 속에 은근히 녹여내는 것은 출연자를 향한 깊은 배려기도 했다. 그러나 이영지가 게스트를 들여다보는 만큼, 어느 순간 게스트 역시 그런 이영지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이준영은 취한 이영지를 걱정해 자신이 취했다며 숙취해소제를 함께 먹자고 제안하고, 세븐틴의 민규와 디에잇은 이영지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그를 진심으로 칭찬한다.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던 한소희는 20대로 돌아가면 무엇을 할 것이냐는 이영지의 질문에 “조금 더 나를 위해서 살지 않을까?”라고 답한 뒤, “그니까 너는 너를 위해 살아.”라고 덧붙인다. 일찍부터 타인을 들여다보는 데 익숙해진 이영지의 단단함에서 위로받은 이들이, 어느새 그 단단함을 다시 품어주는 순간들이다.
영원한 스물넷은 없듯 ‘차쥐뿔’ 역시 시즌 4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They don’t know me like I know you / But I wish you the best(내가 그들을 아는 만큼 그들이 날 알 순 없겠지만 / 언제나 당신의 최선을 바랄게요)” 프로그램을 생각하며 직접 쓴 노래 가사처럼 늘 세상을 넉넉하게 품고, 누군가를 맞이하기 위해 밥상을 차리던 소녀는 이제 “이 프로그램 하면서 친구가 정말 많이 생겼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아름다운 시절을 붙잡아두는 대신 충분히 사랑한 뒤 떠나보내는 것 역시 성장이라면, 이제 우리는 이미 지나간 ‘차쥐뿔’을 돌려보며 이영지의 다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영원히 유예할 수 있는 성장은 없으니까.

‘철들 무렵’
남선우(‘씨네21’ 기자): 정승오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철들 무렵’을 보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검색이다. 작품에 등장한 아이 이름과 감독의 데뷔작 ‘이장’ 속 아이 이름이 같은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머지않아 내 기억이 옳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두 남자아이의 이름은 ‘동민’으로 같았다. 검색까지 해야 했던 이유는 두 인물 모두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그들을 부러 의식하지 않아도 극을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철들 무렵’의 중심에는 암 투병 중인 노인과 그의 딸이, ‘이장’의 중심에는 아버지 묘를 옮기려는 5남매가 있다. 그렇다면 동민이는 누구냐고? ‘철들 무렵’에서는 아픈 노인의 종손자, ‘이장’에서는 맏딸의 아들이다. 이렇게만 적어 놓고 봐도 두 작품 사이의 연결 고리는 희미하다.
그렇다고 해서 동명인의 존재를 우연이라고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두 어린이에게 각각 부여된 어떤 장면이 무척 닮아서다. ‘이장’의 동민도, ‘철들 무렵’의 동민도, 어른들의 소란으로부터 멀어져 있을 때 자기 앞에 놓인 식물을 골똘히 응시하는 순간이 있다. 자연이라는 대전제로 묶이지만, 일정한 돌봄 없이는 생생히 살아 있기 힘든 것들을 말이다. 정승오 감독 세계에서는 혈연이 꼭 그러하다. 그래서 두 동민은 사건의 소극적인 연루자인 동시에 감독의 분신처럼도 느껴진다. ‘이장’에서도, ‘철들 무렵’에서도, 가족에게서 자유롭지 못해 가상의 가족을 통해서라도 문제를 성찰하려는 이의 의지가 엿보인다. 추석 무렵은 그런 의지를 가져보기 좋은 시점이다. 대작의 향연이 펼쳐지는 명절 극장가에서 잠시 동민이와 스쳐 지나가 보기를 권한다.

Oan Kim & The Dirty Jazz - ‘Infinity Shakes’
김효진(대중음악 칼럼니스트): 한국과 프랑스 혼혈, 음악가이자 사진가, 그리고 영화감독. 오안 킴(Oan Kim)의 다면적인 정체성은 ‘Dirty Jazz’로 존재한다. 재즈, 인디 록, 포크, 컨템퍼러리한 요소들, 그리고 잡음까지. 그의 음악에는 서로 다른 요소가 뒤섞이며 공존한다. 어떤 요소를 선택해 다른 요소를 지우기보다 각자의 성질을 그대로 간직한다. 서로 다른 요소들의 대비 사이에서 긴장, 흔들림, 진동 같은 것들이 발생한다.
‘Infinity Shakes’ 속 수록 곡 대부분은 ‘인디 록’의 질감을 지녔지만, 각자의 시작점은 다르다. 재즈일 수도, 인디 록일 수도 있고, 클래식이나 인도 음악일 수도 있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중 아리아 ‘Habanera(L’amour est un oiseau rebelle)’를 살짝 비틀어 재해석하거나, 인도 음악의 영향을 받은 ‘Infinity Shakes’에서는 악기의 울림으로 영적인 공간감을 설계한다. ‘Garbage Truck’에서는 토킹 헤즈(Talking Heads)와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를 떠올리게 하는 록 사운드가 이어지고, ‘This Life of Mine’에서는 새벽처럼 밝은 기타 선율과 심장박동처럼 뛰는 드럼 비트, 삶의 떨림을 표현하는 듯한 색소폰이 겹쳐진다. 이처럼 서로 다른 출발점과 질감을 그대로 품은 날것의 사운드는 결국 우리 각자가 지나온 시간과 선택이 쌓여 만들어진 ‘삶’을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는 삶을 ‘선택의 연속’이라 말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선택은 우리에게 단단한 기반을 마련해주지 않는다. 하나를 택한 뒤에도 삶은 여전히 흔들리고 불안하다. 그렇다면 삶이란 선택을 통해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는 과정이라기보다, 나를 이루는 서로 다른 것들이 사라지지 않은 채 함께 흔들리며 존재하는 일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Infinity Shakes’는 그 흔들림 속에 놓인 삶의 모습을 음악으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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